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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쇼핑이요? 펀딩합니다” 패션 유통 채널로 부상한 크라우드 펀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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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 수량 이상 주문 받아 제작…선(先) 주문으로 재고 없이 가격 낮춰
스타트업엔 자금 조달 통로로, 중견기업엔 마케팅 채널로 주목

조선비즈

신세계인터내셔날의 플립이 펀딩 중인 구스 다운 점퍼./와디즈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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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으로 유명한 MBC 김태호 PD는 지난 8월 새 예능 프로그램 ‘같이 펀딩’을 선보였다.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가치 있는 일을 함께하자는 내용이다. 첫 번째로 배우 유준상의 태극기함은 지난달 진행된 3차 펀딩에서 목표치의 12256%인 9억9887만원을 모았다. 제작진은 11월 중순부터 순차적으로 태극기함을 배송할 예정이다.

크라우드 펀딩이란 대중을 뜻하는 크라우드(Crowd)와 자금 조달을 의미하는 펀딩(Funding)을 조합한 용어로 대중으로부터 콘텐츠 제작 비용을 모으는 것을 말한다. 처음엔 개인 간 자금 대출 형태로 등장했지만, 최근에는 태극기함처럼 생산 자금을 모아 제품을 만들어 파는 보상형 펀딩이 확산하고 있다.

가장 적극적인 분야는 패션계다. 크라우드 펀딩업체 와디즈의 올 상반기(1~6월) 패션·잡화 펀딩 건수는 960여 건, 펀딩 금액은 80억원으로 작년보다 577% 신장했다. 에이징CCC의 양가죽 재킷(15만9000원~16만9000원)의 경우 세 차례에 걸친 펀딩으로 19억1634만원을 모았다. 와디즈 관계자는 "패션이 차지하는 비중이 30%로 가장 많다"며 "기존에 출시되지 않은 제품을 선보이는 게 원칙인데, 신상품에 열광하는 밀레니얼·Z세대가 호응을 보내고 있다"라고 했다.

패션·뷰티 전문 크라우드 펀딩업체 하고(Hago)도 펀딩 건수가 지난해 353건에서 올해 900건으로 급증했다. 자체 제작한 가죽 가방 ‘하고 백’의 경우 2017년 처음 출시한 이래 지금까지 5000개 넘게 팔렸다. 백화점에서 파는 동일한 품질의 가방보다 가격을 2배 이상 낮춘 것이 주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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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세 차례 펀딩으로 19억원 이상을 모은 에이징CCC의 가죽 재킷의 펀딩 페이지./와디즈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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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우드 펀딩은 펀딩이 성공해야 제작에 들어가기 때문에 1~2달을 기다려야 상품을 받을 수 있다. 유행 주기가 짧은 패션 시장에서 ‘느린 쇼핑’인 펀딩이 확산하는 이유는 왜일까. 직장인 김다은 씨는 "믿을 만한 제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살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제작과정과 제품 사양 등을 상세히 보여주고, 직거래 방식으로 가격도 시중보다 저렴하다는 것이다. 하고의 경우 원가와 마진까지 공개해 신뢰를 얻었다.

소비를 통해 신규 브랜드(디자이너)의 성장을 도울 수 있어 의미 있다는 평도 있다. 실제로 펀딩하는 사람들은 ‘산다’가 아니라 ‘후원한다’고 표현한다. 또 스스로를 ‘서포터’라 부른다. 일정 금액 이상이 모여야 제품을 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상원 씨는 "같은 돈을 써도 후원하는 개념이기 때문에 죄책감보다 뿌듯함이 느껴진다"고 했다.

최근에는 대기업과 중견 기업들도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선(先) 판매 방식으로 불필요한 재고를 줄일 수 있는 데다, 신사업의 시장성을 시험할 수 있어서다.

신세계인터내셔날(031430)사내 벤처팀이 운영하는 브랜드 ‘플립’은 지난해 15만원대 구스다운 재킷을 선보여 5062%의 펀딩율을 달성한 데 이어, 올해도 이 상품을 보완해 펀딩을 진행 중이다. 신세계인터내셔날 관계자는 "플립은 소비자들의 아이디어를 모아 만드는 크라우드 소싱 브랜드다. 소비자와 함께 생산했으니, 판매도 소비자와 직접 만나서 하기 위해 펀딩을 선택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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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25차 펀딩이 진행 중인 하고의 버킷 백, 생산 원가를 모두 공개해 신뢰를 얻었다./하고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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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 부츠 락피쉬로 유명한 에이유커머스는 망치로 때려도, 차가 지나가도 끄떡없는 브릭워크 신발을 선보여 목표액의 1685%을 달성했다. 회사 측은 "펀딩을 통해 신규 브랜드를 적극적으로 소개할 기회를 얻었다"고 했다.

하지만 크라우드 펀딩은 특정 제품을 집중 판매하는 프로젝트 형식이기 때문에 사업 규모를 확대하긴 어렵다. 패션업체 한 관계자는 "브랜드를 홍보하고 고객의 요구를 알아보는 테스트 베드로 활용하고 있다"고 했다.

일부 영세업체는펀딩을 받아놓고 제작을 못 해 배송이 지연되거나 제품 하자가 발생하기도 한다. 와디즈 측은 "펀딩 진행자(메이커)에 평점을 매기는 신뢰 지수를 도입하고, 분할 정산 제도를 만들어 참여자를 보호하고 있다"며 "지금까지 1만 개 이상의 보상형 펀딩을 진행했는데, 문제가 발생한 건수는 1% 미만"이라고 설명했다.

김은영 기자(keys@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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