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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도로공사가 관광지까지 만드는 격?”…인터넷사업자들 통신사에 부글부글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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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이동통신사와 콘텐트제공사업자(CP)간의 망 이용료 갈등이 점입가경이다. 4일 열린 방송통신위원회에 대한 국정감사에 이어 7일 개최된 공정거래위원회 국감에서도 국내 CP들의 망 사용료가 도마 위에 올랐다. 유동수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이날 글로벌 CP가 국내 CP보다 현저히 적은 망 사용료를 내거나, 전혀 망 사용료를 내고 있지 않다며 공정위가 개입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놨다.

국내 온라인동영상 서비스(OTT) 스타트업인 왓챠 플레이의 박태훈 대표도 방통위 국감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4K(800만 화소급 초고화질) 기술을 갖고 있음에도 과도한 망 사용료 때문에 서비스를 못 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CP가 이통사에 대한 불만을 공개적으로 표출하고 나선 배경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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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박태훈 왓차 대표(위)가 망 사용료 역차별에 대해 호소하고 있다. 아래는 존리 구글코리아 대표.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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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 꼼수” vs “공개 환영”



표면적인 이유는 국내 CP가 부담하는 망 사용료 증가다. 더구나 이통사와 CP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수치가 완전히 반대여서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이통 3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국내 주요 10개 CP의 망 이용 대가를 자료로 제출했는데, 이에 따르면 매년 망 이용료가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국내 CP가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한 CP의 망 이용 비용은 2016년 대비 지난해 최대 2.4배가 늘었다.

이렇게 엇갈린 데이터가 나오자 김성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주요 10개 CP에는 구글과 넷플릭스 등 망 이용료를 안 내는 곳과 옥수수ㆍ지니뮤직 등 망 이용료를 적게 내는 이통사 계열사도 들어가 있다”며 “그런 곳까지 다 넣어서 평균을 내면 (망 이용료가)줄어드는데 그런 식으로 장난치면 안된다”고 지적했다.

노웅래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도 이통사에 “특정 10개 CP사 말고, 스타트업과 중소 CP의 평균 단가를 정확히 알려달라”고 요구했다. 노 위원장은 이달 중 망 이용 실태 공개를 의무화하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이에 대해 이통사 측은 “오히려 CP들이 주장하는 망 이용 대가 증가세 통계가 근거를 알 수 없는 일방적인 주장”이라며 “망 이용 실태 공개를 의무화하는 법안이 생기면 공정 경쟁 환경 구축에 도움이 될 거라 우리도 환영하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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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가장 오래 이용하는 앱은.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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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자로 바뀐 이통사



이런 표면적인 이유 외에 이통사에 대한 CP들의 불만도 쌓여 있는 상황이다. 통신 사업자인 이통사들이 본연의 사업 영역에서 CP들의 사업 영역으로 사업을 확대하면서 국내 CP들의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업계에선 카카오의 최대 경쟁자가 SK텔레콤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둘의 사업 영역이 겹치고 있다. 모빌리티, 내비게이션, 음악 다운로드 서비스, 인공지능 플랫폼, 해외 무료 전화, 메신저 등이다. 최근 SK텔레콤이 지상파 방송 3사와 손잡고 OTT 서비스인 ‘웨이브’를 출시하면서 국내 CP와의 갈등이 증폭됐다. 국내 한 CP 관계자는 “도로공사(이통사)가 관광지(CP의 콘텐트)때문에 소비자들에게 톨게이트 비용(통신 요금)을 받는 건데, 이젠 관광지가 돈이 되니 관광지까지 도로공사가 짓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넷기업협회도 국내외 CP 공동 입장문을 통해 “망 비용 때문에 가상현실ㆍ증강현실 서비스를 할 수 있는 건 통신사와 통신사 계열의 기업 뿐”이라며 “통신사가 망 비용을 내부화 하는 우월적 지위로 콘텐트 산업에 진출하게 되면 산업 경쟁력이 저하된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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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과 한상혁 신임 방송통신위원장 등이 지난 16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1928아트센터에서 열린 온라인동영상스트리밍서비스(OTT) 웨이브 출범식에서 출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웨이브는 지상파 3사가 설립한 콘텐츠연합플랫폼의 OTT '푹'(POOQ)과 SK텔레콤의 OTT '옥수수' 서비스를 통합해 출범하는 새로운 서비스로 오는 18일부터 서비스를 시작한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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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CP엔 못받으면서 왜 우리한테만



인터넷 사업자들이 이렇게 나오는건 이통사와 정부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 깔려 있어서다. 국내 CP는 해외 CP에게 제대로 받지 못하는 망 이용 대가를 국내 CP들에게서 충당한다고 주장한다. 통신업계에 따르면 해외 CP에게 제대로 된 망 이용료를 받지 못하는 데 이유가 있다. 이통사가 캐시 서버 등을 국내에 설치하지 않을 경우, 국내 소비자가 해외 콘텐트에 접속하기 위해선 해저 케이블 등을 이용해 국제망에 접속해야 한다. 이통사로선 이 비용이 더 들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일부 해외 CP의 캐시 서버를 무상으로 설치ㆍ운영해 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국내 CP 관계자는 “이통사가 당장 돈이 되지 않는 국제망 투자를 등한시해서 벌어진 일인데, 과도하게 국내 망에 의존하면서 비용 부담은 국내 CP에게만 전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반해 이통사 측은 “글로벌 CP가 전체 통신 트래픽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데 모든 트래픽을 수용하는 투자를 진행하는 것은 불가능”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국내 CP는 해외 CP와 함께 정부가 추진하는 ‘망 이용 계약 가이드라인’도 반대한다. 결국 가이드라인을 지켜야 하는 국내 CP들에게만 규제가 강화될 것이란 전망 때문이다. 인터넷기업협회 측은 “정부는 역차별 해소를 명분으로 망 이용 계약의 가이드라인을 만들겠다고 하지만, 이는 오히려 국내 CP에게 부과되어 온 부당한 망 이용 대가를 정당화하고 고착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반해 이통사 측은 “통신사와 해외 CP 간 동등한 협상이 사실상 어려운 만큼 가이드라인을 통해 시장의 불균형을 해소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경진 기자 kjin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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