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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8 (월)

‘처우 개선의 역설’… 해고 내몰린 다문화 지도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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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강연(왼쪽 두번째) 전국다문화가정방문교육지도사협회 대표를 비롯한 다문화가정방문교육지도사들이 지난 4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정년유예를 요구하며 피켓을 들고 있다. 신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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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에게 폭행을 당하던 이주여성이 이혼을 원해서 제가 진술도 하고 재판까지 참석했어요. 저 말고는 도와줄 사람이 없으니까 업무시간에 상관없이 나선 거죠.”

최종희(62)씨는 올해 12년째 다문화가족방문교육지도사(이하 지도사)로 활동하고 있다. 지도사들은 여성가족부의 다문화가족 방문교육사업에 따라 직접 결혼이민여성을 방문해 한국어 교육과 부모교육, 아동의 정서ㆍ인지발달교육을 하는 선생님이다. 이들은 주 2회 두 시간씩 10개월간 3~4개 가정을 방문하지만, 혈혈단신 한국에 온 이주여성에게는 ‘친정엄마’ 같은 존재다. 다문화아동이 아플 때 병원에 동행해 통역을 해주거나 가정폭력으로 집을 나온 이주여성을 자신의 집에서 보호하는 일도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7일 전국다문화가족방문교육지도사협회(이하 지도사협회)에 따르면 최씨를 비롯 전국의 지도사 약 4명 중 1명은 12월 이후 직장을 잃게 된다. ‘정년 없는 직종’이었던 지도사들에게 정년이 적용되면서다.

채용 당시만 해도 없었던 정년 규정이 생긴 사연은 이렇다. 이들은 사회복지시설의 일종인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소속이다. 규정에 따르면 이곳 종사자들의 인건비 지원 상한은 만 60세까지다. 다만 지도사들은 ‘55세 이상 고령자’ 등 취약계층을 위한 재정지원일자리사업으로 분류돼 나이에 상관없이 인건비가 지원돼왔다. 하지만 지난해 말 사업 방침이 변경되면서 지도사들의 인건비 상한도 만 60세가 됐다. 이미 그 나이가 넘은 지도사 414명(전체 1,776명 중 23.3%)이 내년엔 재계약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들의 해고 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처우개선 노력에서 시작됐다. 지난해 지도사들은 10개월짜리 ‘쪼개기’ 계약 등 열악한 노동환경을 바꾸기 위해 목소리를 높여왔다. 이에 여가부는 지난해부터 이들을 1년 계약직으로 전환했는데, 이 과정에서 ‘1년 미만 한시적 일자리’만 지원하는 재정지원일자리사업에서 제외됐다. 처우개선 조치가 오히려 ‘당연해고’라는 역풍으로 돌아온 것이다. 여가부 관계자는 “지도사들의 불안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예산을 확보해 마련한 조치였다”며 “지난해 사업 변경시 이미 1년간 정년 적용을 유예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도사들은 “지난해 70세도 채용되는 등 나이제한이 없었기 때문에 최소 5년의 추가 정년 유예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갑작스러운 해고로 고령자들의 경력단절이 불가피한데다, 방문교육 서비스의 질도 떨어질 거란 우려다. 9년차인 구은선(54) 지도사는 “겉으로 볼 때 우리는 월 80만원 받는 단순 계약직이지만, 이 일을 하기 위해서는 한국어교원자격증 및 사회복지사, 보육교사 등 여러 자격증을 따야 하고 매년 재계약 시험도 보며 노력한다”며 “무엇보다 열악한 상황의 다문화 가정을 방문해 친정엄마처럼 보살펴야 하는데 갑자기 채용된 젊은 사람이 이 일을 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여가부 측은 “근거규정이 없어 추가 정년 유예는 어렵고 다른 가능한 방법이 있을지 찾고 있다”는 입장이다.

다문화가정 비중이 매년 늘고 있지만 이들을 향한 차별이나 가정폭력 문제도 지속되고 있다. 그만큼 정부의 사회통합 투자가 절실하지만 정작 담당자들의 고용안전조차 요원한 셈이다. 강연 지도사협회 대표는 “적절한 시기에 다문화아동의 적응을 지원하지 않으면 학교생활은 물론 사회진출에서도 뒤쳐질 위험이 크다”며 “정말 다문화가족을 위한다면 지도사들을 해고할 게 아니라 이들의 현장 경험과 전문성을 활용할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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