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영 사회부 차장 |
“이렇게 좋은 걸 안 쓰면 바보죠.”
인천 연수구에 사는 40대 주부 김모 씨는 지역화폐인 ‘연수e음’ 예찬론자다. 한 달에 사용액 50만 원까지는 10%, 100만 원까지는 6%를 캐시백으로 돌려받는다. 월 한도가 없던 초기에 비하면 아쉽지만 여전히 다른 카드에 비해 혜택이 좋다. 김 씨는 “학원, 미용실, 커피숍 등에서 많이 사용한다”며 “1년이면 거의 100만 원을 돌려받고, 지역경제에 도움도 된다니 뿌듯하다”고 말했다.
올해 들어 전국에서 ‘지역화폐’가 대박을 터뜨렸다. 올해 2조3000억 원이 발행될 것으로 예상돼 3년 만에 규모가 20배로 늘었다. 지방자치단체끼리 발행액, 할인율을 두고 경쟁도 치열하다. 취지도 좋다. 지역의 돈이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고 지역 내 소비를 촉진해 소상공인과 골목상권을 살리자는 ‘착한 소비’다.
모두에게 좋은 사업인데 의외로 반발도 있다. 내년 2500억 원 규모로 지역화폐를 발행하려던 대전시의 계획은 지난달 시의회에서 제동이 걸렸다. 이미 원도심인 대덕구에서 발행하고 있는데 시 전체의 지역화폐가 나오면 경제력이 강한 신도시권으로 소비가 쏠릴 것이라는 우려다. 특정 단체에 사업을 몰아주려 한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내년에 1조 원 규모로 발행할 계획인 부산에서도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깜깜이’ 논란이 나오는 건 지역화폐 발행을 전적으로 관(官)이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역화폐’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칼자루를 쥔 건 정부다. 지난해 말 정부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을 위해 2022년까지 지역사랑상품권(지역화폐)을 8조 원 발행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지역화폐 발행액의 4%를 국비로 지원한다. 지자체가 액면가보다 저렴하게 지역화폐를 판매하면 차액을 국비로 일부 보전한다. 올 한 해만 920억 원에 이른다.
지자체들은 혜택이 줄기 전에 정부 예산을 따내기 위해 앞다퉈 발행을 서두른다. 지자체장의 방향이 정해지면 전문 대행사업자를 통해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흥행을 위해 파격적인 할인 혜택을 내세운다. ‘100억 돌파’ ‘200억 돌파’ 등의 실적은 지자체장의 치적이 된다.
혈세가 들어가지만 제대로 된 재정 추계도 없었다. 부산은 정부의 내년 지역화폐 발행 규모 접수가 임박하자 발행 목표를 1조 원으로 늘렸다. 일단 지른 것이다. 1조7000억 원 흥행에 성공한 인천에선 이미 탈이 났다. 월 한도 없이 10%, 11%씩 주던 캐시백으로 재정 부담이 가중되자 일부 구가 혜택을 급하게 줄이거나 부랴부랴 추가경정예산으로 메웠다.
지금의 지역화폐는 사실상 정부가 제공하는 할인쿠폰이다. 유럽 미국 일본 등에서 지역화폐가 주민 참여의 공동체 운동 성격인 것과 차이가 크다. 언젠가 정부 지원이 끊기면 열기가 신기루처럼 사라질 수도 있다.
지역사회의 참여를 통해 인센티브가 줄어들더라도 자립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사회적 기업이 자율적으로 운영하고 시가 지원하는 영국 브리스틀시, 민관 합동 발행위원회를 통해 함께 고민하는 경기 시흥시 사례 등을 참고할 만하다. 공동체에 재능 기부 등을 하면 지역화폐로 보상하는 방법 등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미끼로 유혹하는 개업 효과는 오래가지 않는다.
김재영 사회부 차장 redfo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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