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장관 임명에 반발해 삭발한 이언주 의원
이언주 의원은 “더불어민주당 내 운동권은 이제는 권력자이고 국회의원인데 정신은 여전히 그 옛날 학생운동 시절에 머물러 있었다”며 “내가 보기에는 잘못된 경우도 많았는데 자신들이 옳다는 것에 너무나 사로잡혀 있었다. 조국 사태는 그 단면”이라고 말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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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구 논설위원 |
《지난달 9일 문재인 대통령이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을 강행하자 야권에서는 삭발 릴레이가 이어졌다. 그 물꼬를 가장 먼저 튼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더불어민주당 출신인 이언주 의원(47)이다. 민주당 재선 의원(19, 20대)이던 그는 2017년 4월 대선을 한 달여 남기고 탈당한 뒤 국민의당, 바른미래당을 거쳐 현재 무소속이다. 속된 말로 참았으면 여당 의원으로서 편했을 텐데 그는 민주당에서 무엇을 보았기에 뛰쳐나왔고, 삭발까지 한 걸까. 지난달 30일 국회의원회관에서 만난 그는 “운동권의 위선을 견딜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공교롭게 오늘 인터뷰 전에 문 대통령을 내란선동으로 고발하고 왔다.
“지난달 28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열린 ‘제7차 검찰개혁 촛불문화제’ 이틀 전에 문 대통령이 검찰 개혁 메시지를 발표했는데, 이로 인해 주최 측이 200만 명이라고 주장할 정도로 참가자가 급증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이 검찰청 벽을 향해 레이저빔을 쏘며 집단의 위력으로 국가기관의 기능을 방해했다.” (그게 내란선동의 요건이 되나.) “살아있는 권력이 친위대 수만 명을 동원해 검찰의 기능을 마비시키려고 국헌을 어지럽혔다. 시위는 할 수 있다. 하지만 통상적인 집회·시위는 약자가 자신의 목소리를 알리기 위한 것이다. 서초동 집회는 그런 차원을 넘어 국가기관인 검찰의 수사를 방해하려는 목적이 너무나 분명하다. 대통령은 그걸 선동했고…. 민주당 이해찬 대표와 이인영 원내대표도 검찰에 대한 협박으로 정당한 공무집행을 방해한 혐의로 고발했다.”
※우리 형법은 내란을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한 폭동(제87조)으로, 국헌문란은 헌법이나 법률에 정한 절차에 의하지 않고 헌법 또는 법률의 기능을 소멸시키는 행위(제91조)로 규정하고 있다.
―정치적 입장 차이 때문에 너무 과하게 보는 것은 아닌가.
“아니다. 오히려 사람들이 이 상황을 너무 가볍게 보고 있다. 권력이 친위부대를 시위에 나서게 하기 시작하면 이게 바로 중국 문화혁명의 홍위병이 만들어지고, 나라가 파시즘으로 가는 길이다. 문 대통령은 ‘검찰이 아무런 간섭을 받지 않고 수사하고 있는데도 검찰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고 했다. 이게 친위 시위를 선동한 게 아니면 뭔가. 대통령이라면 오히려 그런 시위를 말려야 하는 것 아닌가. 국회, 법원 등 주요 시설의 100m 안에서는 집회·시위를 할 수 없다. 그런 것도 다 무너졌다. 대통령이 그래서는 안 된다.”
―진보는 다를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고 했다. 민주당에 있을 때 뭘 봤기에….
“위선…, 그 위선을 너무 많이 봤다. 소속 지방자치단체장들은 아무런 죄의식이나 양심의 가책 없이 혈세로 자기 패거리들을 취직시키고…. 지자체에는 일용직 계약직 등 일자리가 많다. 그런 것도 다 자기 선거랑 관련 있는 사람들에게 준다. 그냥 다 선거 조직이다. 검찰 개혁 방안이라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이유도 듣고 나서 정말 기가 막혔다.”
―뭐라고 하던가.
“나도 검찰 개혁은 찬성한다. 하지만 공수처 설치는 진정한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통령이 (공수처장을) 임명하지 않으면 모를까.” (자신들에게 임명권이 없는 공수처를 만들 리가 있겠나.) “그렇겠지. 대통령이 공수처장을 임명하면 공수처가 집권세력에 꼼짝 못하고 줄을 설 수밖에 없지 않나. 그게 국민이 원하는 검찰 개혁 모습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아닌 것 같아서 만약 내가 틀렸다면 논리적으로 설명을 해달라고 했다.” (누구한테? 당에서 높은 사람인가.) “그렇지, 높은…. 그랬더니 한동안 억지 주장만 하다가 나중에는 ‘야, 우리가 집권할 거잖아. 이제 그만해’라고 하더라. 아… 정나미가 떨어졌다.”
―민주당에서는 북한 인권 문제를 말하는 것도 일종의 금기 같던데….
“얘기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얘기하는 자체를 굉장히 싫어한다. 아주 불편해하고…. 진보라면 속으로야 어떻든 자유와 인권, 이런 걸 말해야 하는 거 아닌가.” (왜 그런지 안 물어봤나.) “물어봤다. 토론도 많이 했고. 내가 원내대변인도 하고, 말을 좀 잘해서 당에서 TV 등 밖에 많이 내보냈다. 근데 내가 수긍이 돼야 무슨 말이라도 할 것 아닌가. 북한 인권 문제는 너무 괴로워서 안 나가려고 피하기도 했다.”
―왜 안 된다고 하던가.
“에휴, 그러니까… 북한 인권은 북한 주민들이 잘 먹고 잘살면 나아지는데, 그러려면 우리가 북한에 더 많이 지원해 줘야 한다는 거다.” (그게 뭔 소리인가.) “북한 인권 문제를 지적하면 북한 정권의 비위를 상하게 만들고, 그러면 남북관계가 안 좋아져 북한 사람들을 도와줄 길이 봉쇄된다는 논리였다.” (인권이 이런저런 이유가 있으면 말 안 해도 되는 가치인가.) “억지스럽고… 뭔가 주객이 전도된 거다. 그런 일이 많아지다 보니 당 안에서 좌충우돌하는 건 그만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운동권에 대해 전혀 모르고 들어간 건가.
“처음에 민주당에 들어갔을 때는 그들이 좀 멋있어 보였다. 뭔가 기득권에 분노하고 치받으면서 사회정의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 같은…. 잘 몰랐을 때지. 그런데 지나면서 보니까 운동권들의 특별한 문화가 있었다. 굉장히 획일적이고, 집단주의적인…. 자신들이 정한 것을 벗어나면 굉장히 잘못된 것처럼 대하고…. 자신들이 옳다는 것에 너무나 사로잡혀 있었다. 논리나 사실로 설명이 안 되는 게 너무 많았다. 조국 사태에서 극명하게 보고 있지 않나. 당 안에서 뭘 좀 변화시켜 보자는 생각도 많이 했는데 비운동권이 민주당 안에서 살아남기란 쉽지 않았다. 어떤 면에서 민주당에서 비운동권은 일종의 장식품 같았다.”
지난달 10일 국회 본청 앞에서 머리를 깎고 있는 이언주 의원. 변호사 출신인 그는 2012년 총선 경기 광명을 지역구에서 당선돼 정계에 입문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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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의원으로서 삭발이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솔직히 당신이 머리 깎는다고 조 장관이 사퇴할 리는 없지 않나.
“답답하니까…. 조국 사태는 좌우의 문제가 아니라 양심의 문제다. 그걸 진영논리로 만들어서 자기편 사람들을 몽땅 비양심적인 전선에 몰아넣는 저 행위에 분개했다. 그게 과연 지도자로서 할 일인가. 내게는 충격이었다. 그냥 ‘와, 저럴 수가…’ 외에는 달리 표현할 말도 없었다. 어느 정도는 (운동권의 모습을) 알았기 때문에 탈당했지만 훨씬 더 뻔뻔스러웠다. 그리고 그런 저들이 무섭다고 생각했다.” (더 강한 방법은 생각해 보지 않았나.) “단식도 생각은 했다. 하지만 사퇴까지 가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데, 내가 아는 운동권들의 스타일로 보면 아마 끝까지 갈 거다. 누구 하나 굶어 죽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잘못하면 (조 장관은) 대법원 확정 판결 때까지 버틸 수 있다고 본다. 누가 구속돼도 아마 탄압받는다며 투쟁할 거다.”
―당신을 시작으로 삭발 릴레이가 이어졌는데 자유한국당이 이어가면서 좀 희화화됐다.
“국민이 보기에 그동안 누려왔던 사람들이 머리를 깎는다고 하니까…. 국민들은 문재인 정권을 심판하고 싶어 한다. 또 자격이 되는 곳에 힘을 몰아줄 생각도 있다. 문제는 한국당이 반성이나 쇄신은 안 하고 되레 ‘우리가 (문재인 정권을) 심판하겠다’는 어이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거다. 국민이 보기에 어이가 없으니 희화화될 수밖에…. 내가 한국당에 안 가는 이유도 그런 거다.” (그래도 당신이 한국당에 갈 거라는 말은 계속 나온다. 가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현실이 있는데…. 협력하지 않고 어떻게 문재인 정권을 심판할 수 있나. 협력은 해야 하는데 한국당을 쳐다보면, ‘당신들도 똑같은 거 아니야’ 하는 생각이 들고…, 너무 괴롭다. 그래서 제발 반성과 쇄신을 좀 하라고 말은 하는데….”
―왜 반성과 쇄신을 안 한다던가.
“할 거라고 하더라. 기다려 보라고….” (몇 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그 사람들은 아직도 뭘 얘기하면 친박·비박 탓을 한다. 내가 볼 땐 비슷한데…. 탄핵이란 엄청난 사태가 벌어졌는데 막판에 뒷발로 문 차고 나왔다고 책임이 없어지는 게 아니지 않나. 좀 덜할 수는 있겠지만….”
―당신도 친문 지지자들의 문자폭탄을 만만치 않게 받았을 것 같은데….
“하하하. 많이 받았다.” (주 내용이 뭔가.) “그냥 쌍욕이 많다. 대부분.” (왜 그러냐고 물어본 적은 없나.) “굳이 누군지 알고 싶지도 않고, 한두 명이면 얘기도 해볼 텐데 이게 조직적으로 오니까…. 예를 들어 그들이 듣기 싫어하는 말을 내가 오전 10시에 했다면, 정상적인 항의라면 시간 차이를 두고 드문드문 와야 하지 않나. 인지하는 시차가 있으니까. 그런데 하루 종일 조용하다가 밤 10시 ‘땡’ 하면 부르르하면서 몇만 통이 온다. 기계를 돌렸을 수도 있고…. 그러다가 일정 시간이 지나면 딱 그친다. 일종의 집단 린치이고 협박인데, 자기들이 원하는 행위로 유도하려고 하는 거지. 내가 침묵을 하든 생각을 바꾸든….”
―조국 사태로 나라가 두 동강이 났다. 서로 끝까지, 갈 데까지 갈 수는 없지 않나.
“(보수 쪽에서는) ‘청와대로 쳐들어가자’ 이런 말도 나오던데, 그런 말은 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정말 나라가 끝장나니까. 프랑스혁명도 이후 60여 년간 혁명과 반혁명이 이어지며 엄청난 사람들이 죽는 후유증에 시달렸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촛불시위 당시에 난 민주당 소속이었는데도 사실 막판에는 좀 겁이 났다. 사람들에게서 어떤 광기에 사로잡힌 모습도 봤고…. 나를 포함해서, 정치인들도 사람들을 선동했다. 탄핵 반대쪽도 마찬가지였고…. 정말 극단적으로 가기 전에 정신 차려야 한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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