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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7 (금)

[최훈 칼럼] ‘트로이의 목마’ 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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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찬반에 ‘한하늘 두나라’ 대치

방치하면 국가 앞날은 트로이 꼴

‘조국 퇴진’‘검찰개혁’ 접점 찾고

분열막을 최종책임 대통령의 몫

중앙일보

최훈 논설주간


침공한 그리스의 대군에 맞서 10년 여 항전해 온 트로이가 무너진 건 채 하루가 되지 않았다. 그리스의 계략은 치밀했다. 안에서 성문을 열 50여 명의 무장 병력이 숨겨진 대형 목마를 트로이 성문 앞에 버려 놓았다. 철수한 듯한 군사들은 트로이 앞바다 섬의 숨겨진 선단에 가득 차 있었다. 역사적 교훈의 지점은 위장 목마를 눈앞에 두고 펼쳐진 트로이 사람들 간의 찬반 논쟁이다. 『독선과 아집의 역사』(바바라 터크먼)는 이 장면을 상세히 소환했다.

목마는 간계(奸計)의 도구이자 위선(僞善)의 상징이었다. 트로이 사람들에게 말은 신성한 동물이었다. 목마의 바깥엔 “그리스인이 이것을 아테네 신에게 바치나니 부디 고국으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도록 가호를 빕니다”란 글이 새겨졌다. 트로이의 일부 장로들은 “신에게 바친다는 글귀를 믿자”며 성 안의 아테네 신전으로 들이자고 외쳤다. 다른 장로들은 “신에게 바치는 것으로 꾸민 이 목마를 도끼로 부숴 뭐가 들었는지 보자”고 맞섰다. 그러자 군중에서도 “신성한 상(像)이 틀림없다” “당장 때려 부숴라”는 외침과 흥분이 엇갈렸다.

결정은 프리아모스 트로이 왕의 몫이었다. 신성한 봉물을 모독할까 ‘우상(偶像)’이 두려웠던 그는 결국 목마를 성안으로 들이라 손들어 주었다. 성문 입구에서 목마를 끌어들이던 말들이 네 차례 멈췄다. 목마의 뱃속에선 네 차례 무기 울리는 소리가 들린다. 떨어지면 성이 함락된다는 예언이 있던 성문 위의 가로석 마저 큰 목마를 억지로 들이면서 무너진다. 하지만, 왕의 선택에 굴종한 트로이 백성들은 다음날 새벽에 맞을 멸망도 모른 채 목마를 전진시켜야 했다.

신화 속 비극이 지금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재연되는 조짐이다. 논쟁을 촉발시킨 조국은 어찌 보면 우리 사회의 가장 일그러진 자화상(自畵像)이다. 그와 일가는 부동산, 펀드, 명문대, 사학재단 등 자본주의와 산업화의 양지(陽地)에서 부와 세속적 지위, 자산을 축적했다. 동시에 젊은 시절 고초를 겪은 민주화 세력이 누리던 ‘훈장’의 명예까지를 모두 탐했다. 그의 불행의 시작이다. 숱한 정신분열적 허언(虛言)과, 지금 보니 위선일 뿐인 SNS를 통해서…. 안쪽에는 부와 세속적 지위, 자산, 욕망과 몰염치를 가득 채운 채 그 바깥엔 “저를 온전히 신성한 개혁에 바친다”란 글자를 새긴 채…. 양서(兩棲)의 위선적 삶이 드러난 그에게 다수 국민들이 느끼는 배신감과 분노는 상식적이다. 도대체 이 나라의 골칫덩어리 목마는 누가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민주당? 그들은 목마를 성안에 들이자는 맹목적 분위기에 시종 휩싸여 있다. 그들의 최대 위기는 “목마의 안을 들여다 보자”는 ‘악마의 변호인(devil’s advocate)’ 조차 없다는 사실이다. 민의로 선출된 의원들에서조차 ‘상식’과 ‘순리’라는 대의(代議)의 목소리가 전무한 상황. 충격적이자 절망스럽다. ‘한 마리의 청개구리’ 조차 용납치 않는 여권의 분위기는 “여기서 밀리면 문재인 대통령과 차기 집권도 무너진다”는 정치공학적 우상 숭배 때문이다. 대폭 물갈이가 예고된 반년 뒤 총선의 공천, 탈락과 관직 배려 등의 보상(補償)도 의원들에겐 말 못할 압박이다. 그러니 기대난망이다.

조직과 나라의 파멸은 대부분 극단적 쏠림과 집단 편향성이 단초가 된다. 33년 전. 이륙 75초 만에 미국의 우주왕복선 챌린저호는 폭발했다. 날씨 등 상황이 온당치 않다는 엔지니어들 의견은 무시됐다. 성공과 보상에 눈이 먼 제작사 간부들만의 만장일치로 발사가 결정됐다. 집단 광기는 이성의 끈을 놓게 한다. 수치스러움도 주저치 않게 만든다. “진영 논리가 어때서”라는 유시민 작가의 언행이야말로 그를 진보적 지식인으로 대접해 온 이들에겐 좌절과 허탈을 안기고 있다.

한일 갈등과 국민 통합 등에서 여권 내 ‘악마의 변호인’ 역을 해주길 기대받던 이는 언론인 출신 이낙연 총리다. 무엇보다 각료 제청과 해임 건의권을 갖고 있는 2인자다. 난국의 해법을 직언하는 그의 용기를 기대한 건 자연스럽다. 하지만 그도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하고 있다. “여성 두 분만 있는 집에서 11시간동안 과도한 압수수색을 했다”는 팩트 틀린 국회 발언으로…. 차기 여권 대선후보 경선에서 ‘낙점’이 필요한 대통령의 얼굴과, 분위기 험한 지지층의 표가 늘상 어른거릴테니…. 역시 희망은 접기로 하자.

권력자 개인의 불명예 보다 늘 역사에 오욕(汚辱)으로 기록되는 건 그 나라, 그 정부의 불명예다. 프리아모스 왕은 몰라도 아둔한 트로이는 모두 기억하는 이치다. 주말마다 광화문과 서초동에서 ‘한하늘 두나라’의 분열로 망가져 가는 국가의 불명예는 이쯤서 접어야 마땅하다. 꼬인 매듭 풀 자는 대통령 뿐이다. 트로이의 목마에 나라마저 무너뜨리게 할 수 없다. ‘국가의 계속성’은 대통령의 으뜸가는 책무 아닌가. 광화문의 “조국은 안된다”와 서초동의 “검찰 개혁” 사이 접점을 왜 못찾겠는가. 모두가 감내하고 수용할 솔로몬의 지혜를 내야 할 이, 바로 문재인 대통령이다. 부디 해법이 연내를 넘지 않길 바란다. 국민들 살림살이고, 북한 핵이고 힘든 나랏일이 너무 많지 않은가.

최훈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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