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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정유신의 이코노믹스] 지금 세계는 핀테크가 대세, 한국만 규제에 가로막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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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물론 중국도 핀테크 질주

아시아·아프리카도 갈수록 확산

한국은 변화의 바람 불고 있지만

데이터 규제에 가로막혀 게걸음



은행·증권·보험시장의 새 트렌드



중앙일보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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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테크는 금융(Financial)과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로, 금융과 정보기술(IT) 융합을 통한 새로운 금융서비스다. 예컨대 모바일 간편결제와 송금, P2P(개인 간 거래)대출, 로보어드바이저(인공지능 로봇+투자전문가) 등을 통칭한다. 3~4년 전만 해도 ‘IT 활용을 통한 간편 금융의 한 수단’ 정도로 치부됐지만, 지금은 미래금융의 핵심 트렌드가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금융 강국인 미국·영국에다 금융 후진국이었던 중국까지 팔을 걷어붙이면서 핀테크 확산이 가속했다. 지금은 구미 선진국은 물론, 아시아·아프리카 할 것 없이 핀테크가 글로벌 대세다. 세계시장의 핀테크 투자 규모도 10년 전인 2009년만 해도 연 40억5000만 달러(4조8000억원)에 불과했지만, 작년엔 1000억 달러(120조원)를 돌파했다. 매년 46.5%씩 증가했다는 얘기다. 같은 기간 투자 건수도 366건에서 2966건으로 8배 급증했다.

왜 이렇게 핀테크 성장 속도가 빠른가. 첫째, 스마트폰과 IT·디지털기술의 발달로 모든 금융서비스가 손안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PC와 달리 스마트폰은 모바일 화면만 열면 결제·송금·대출·투자까지 모든 것을 언제 어디서든 쉽게 만날 수 있다. 한마디로 누구나 ‘손안에 금융시장’을 갖게 됐다는 얘기다. 가뜩이나 사용 빈도가 높고 배달 시간도 필요 없는 금융의 성격까지 고려하면, 그만큼 성장 속도도 빠를 수밖에 없다.

둘째, 빅데이터를 매개로 한 기술 융합으로 다양한 분야 및 비즈니스 모델과의 시너지 효과가 엄청나다. 빅데이터는 ‘21세기의 원유’라 불릴 정도로 미래 핵심기술과의 융합에 필수다. 금융 빅데이터를 활용하면, 금융서비스의 다양화와 효율성만 높일 수 있는 게 아니다. 금융 데이터는 모든 제품의 소비자 행동을 분석할 수 있는 정보 데이터이기도 해서 금융과 비(非)금융서비스를 결합한 새롭고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할 수 있다.

크라우드펀딩·인슈어테크 활발

한국의 핀테크는 어떤가. 금융당국과 업계의 노력으로 점차 핀테크 생태계가 자리잡고 있다. 예컨대 카카오페이가 1년 만에 체크카드 100만장 발급이란 대기록을 세우는 등 간편 결제와 간편 송금 이용 건수가 분기마다 거의 배로 급증한 것이라든지 카카오뱅크가 영업 개시 100일 만에 비대면 계좌를 435만 개 개설하고, 1년여 만에 흑자 전환한 점은 핀테크 급성장의 대표 사례다. 금융소비자들이 그만큼 싸고 편리한 핀테크에 관심이 많다는 방증이다.

그간 움직임이 늦었던 증권·보험부문에서도 크라우드펀딩과 인슈어테크(보험+기술) 출시가 활발해지고 있다. 크라우드펀딩의 경우 2016~2018년 3년간 417개 창업·벤처기업이 755억원의 자금을 조달했다. 대규모는 아니지만, 연평균 40%의 빠른 성장세다. 인슈어테크도 초기 단계지만 모바일 앱을 통한 혈당측정보험, 인공지능을 활용한 사고 차량 수리보험 등 상품 출시가 다양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핀테크 기업 수도 전년 대비 32% 증가한 291개, 국내 핀테크 기업 총수는 500여개까지 늘어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지난해 말 금융혁신지원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한 후 올해 들어 금융의 규제샌드박스 도입이 활발해지면서 핀테크업계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특히 4월 이후 도입되기 시작한 혁신금융서비스는 9월 초까지 42개나 시범인가를 받았다. 이는 정부 전체 혁신서비스의 39%, 시장에선 한마디로 “금융혁신에 불을 지폈다”고 입을 모은다.

은행·보험·증권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 서비스가 등장했다. 이 중에서도 금융회사들의 다양한 대출 조건을 비교해주는 온라인대출플랫폼·대출관리 챗봇 등 대출 분야가 13개(30.9%)로 가장 많았다. 수수료 경쟁이 치열한 결제·송금 분야도 핀테크업계에 카드사들이 가세하면서 8개(19.0%)로 늘어났다. 최근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데이터와 보험 분야도 각각 5개(11.9%)씩 혁신서비스 기업으로 지정됐다.

신용정보법 국회 통과로 밀어줘야

이러한 핀테크의 급성장에 따라 좀처럼 바뀌지 않던 금융업에도 결국 변화와 혁신의 바람이 감지되고 있다. 우선 금융의 개념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금융은 볼 수 없고 만질 수도 없는 무형의 서비스다. 따라서 이런 금융서비스를 정확히 또 분쟁 없이 주고받으려면 아무래도 촘촘한 규정과 규제가 필요하다는 게 일반 상식이었다. 나아가 말도 안 통하는 외국에 금융업을 수출한다는 건 꿈도 꾸지 못했다.

그러나 IT·디지털 기술과 모바일 화면을 통해 금융서비스를 설명할 수 있게 되면서 금융의 전통적 개념이 완전히 바뀌게 됐다. 이젠 화면만 갖고도 금융서비스가 얼마나 빠르고, 싸고, 편리한지 대상과 언어와 관계없이 가능해졌다. 한마디로 금융이 지금까지의 무형서비스(intangible)에서 눈으로 보고 만질 수 있는 유형 서비스(tangible)로 바뀌고 있다. 따라서 촘촘한 규제가 없어도 어떤 서비스가 가격 대비 성능이 좋은지, 판매자와 고객이 서로 쉽게 소통하게 되면서 언어와 문화장벽을 뛰어넘어 수출도 가능하게 됐다. 게다가 금융 데이터를 적극 활용하면 소비자 맞춤형 금융서비스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이쯤 되면 금융에 대한 우리의 기존 관념이 바뀔 만도 하다. ‘금융은 더는 제조 혁신을 뒤쫓는 게 아니라 제조도 리드할 수 있는 선행 혁신산업’이라거나 ‘영원한 내수산업이 아니라 수출의 기수’라고 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박차를 가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빅데이터 분석과 AI 활용을 본격화할 수 있도록 신용정보법 개정안이 즉각 국회에서 통과해야 한다. 지금처럼 데이터 활용에 제약이 있어서는 개인이나 사업자 신용을 제대로 평가할 수 없어 핀테크 사업 확장의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 금융혁신 견인차 역할하려면 ‘빅데이터와의 융합’ 필수

글로벌 추세를 고려할 때, 핀테크를 통한 금융혁신은 3단계다. 첫째, ‘언 번들링’(unbundling, 분리) 단계다. 핀테크는 손안의 모바일 서비스를 가능하게 해준다. 소비자 입장에선 다른 회사의 핀테크 서비스를 고르더라도 추가 탐색비용이 들지 않는다. 예컨대 간편 결제는 A사, 송금은 B사, 대출은 C사 등으로 달리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것이 언 번들링 현상이다.

둘째, 디지털 플랫폼단계다. 핀테크는 언 번들링을 넘어 디지털 플랫폼 단계로 발전한다. 국내에서도 지난해 하반기부터 분야별로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는 고객 기반과 고객 로열티를 확보한 업체들이 디지털 플랫폼 단계로 이동하는 양상을 보인다.

세 번째는 빅데이터를 매개로 한 기술융합 단계다. 예컨대 대출상품이라면 한 은행이 아닌 은행 전체 대출상품을 분석해 개인별 특성에 가장 적합한 상품을 골라준다. 나아가 빅데이터를 활용한 ‘ABCD(인공지능·블록체인·클라우드컴퓨팅·빅데이터)’ 기술융합으로 금융업계의 효율성과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금융거래 데이터는 모든 제품의 소비자 행동을 분석할 수 있어 금융과 비(非)금융산업의 시너지도 가능하다.

그럼 한국은 어디쯤 있나. 아직 합의된 평가는 없지만, 핀테크 혁신 1단계에서 2단계로 이행하고 있으며 3단계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예컨대 카카오가 카카오뱅크 돌풍을 바탕으로 바로 증권을 인수해 증권업에 진출했다든지, 카카오페이가 2800만 고객을 활용해 P2P 대출 투자창을 오픈한 것, 토스로 유명한 비바리퍼블리카가 송금·결제에 이어 보험·증권업 진출을 선언한 일, 레이니스트가 뱅크샐러드로 연동자산 100조원의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점 등이 2단계 디지털 플랫폼의 대표 사례다. 하지만 핀테크가 신산업으로 자리를 잡고 금융산업도 제대로 혁신하려면 3단계의 빅데이터 기술융합이 필수적이다. 금융 소비자에게도 최고로 가성비 좋은 상품을 제공하고, 다른 산업과의 시너지도 확실하게 내려면 누가 뭐라 해도 ‘21세기 원유’라는 빅데이터 활용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국회에서 11개월째 낮잠 자고 있는 신용정보법 개정안의 조속한 통과를 기대한다.

■ ◆정유신

서강대 기술경영대학원장 겸 핀테크 지원센터장.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석사를 거쳐 한국스탠다드차타드증권 대표이사·한국벤처투자 대표이사 등을 거친 금융전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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