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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기자가만난세상] 10년 전 추석, 10년 후 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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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는 아버지까지고 성묘는 우리까지일 거다.”

형이 그 말을 했던 건, 올해 추석에 성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이었다. 올해 추석에는 성묘 때 차례를 같이하기로 했다. 차례를 지내고 난 뒤 사촌들과 으레 하는 안부 인사와 덕담을 나눈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형이 그 말을 했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세계일보

이도형 산업부 기자


설날이나 추석 때 차례를 지내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때가 있었다. 10년 전만 해도 우리는 큰집에 모여 제사를 지내고 늦은 아침을 먹고 성묘를 가곤했다. 제사 도중에도 차례상에 올려진 밤이며 곶감 등을 바라보며 군침을 흘렸던 기억이 새롭다. 차례가 끝나고 음식을 나눠 먹으며 웃음짓던 집안 어른들의 모습도 떠오른다. 큰집과 우리 집은 걸어서 20∼30분 거리여서 귀경·귀성길 정체라는 표현이 낯설게 여겨졌다. 큰집에서 성묘를 가는 것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남자는 차례 음식 준비에서 열외됐기 때문에 명절 때마다 고생한다는 이야기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명절증후군’을 모르고 지냈는데, 언제부터인가 큰집에 가서 제사를 지내는 것이 부담스러워지는 문화가 퍼지기 시작하면서 큰집에 가는 풍경이 낯선 상황이 되어버렸다. 지난해 한 온라인 유통업체가 30∼40대 500명을 대상으로 물었더니 추석 차례를 지내지 않는다고 답한 사람이 응답자의 40% 가까이 됐다. 명절증후군을 겪지 않는다고 답한 비율은 56.2%에 달했다. 명절 연휴 때마다 해외로 나가려는 사람들로 인천공항이 북새통을 이루는 광경은 더 이상 뉴스도 아니다.

누군가는 이런 명절의 변화를 못마땅하게 받아들인다. 전통을 중시하고 우리 문화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강할수록 그렇다. 한국사회가 급격히 산업화, 도시화하면서 전통이 단절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렇게 세월이 흐르다보면 만주족을 비롯한 수많은 동아시아 민족들이 중국 문화에 동화되어 사라졌던 것처럼 우리 전통문화도 서구문화에 흡수될 것 같은 걱정이 든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하지만 우리 젊은이들은 제 나름대로 우리의 ‘전통’을 재해석하고 있다. 최근 뜨고 있다는 서울 종로구 익선동 거리를 가보면 우리 젊은 층들이 ‘전통’을 새로운 감각으로 해석해 가는 현장을 볼 수 있다. 한복을 재해석해 일상복으로도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디자인들도 선보이고 있다. 과거의 감수성을 재해석하는 이른바 ‘레트로’ 열풍도 우리 문화의 새로운 해석이라고 볼 수있다.

중요한 것은 ‘무슨’ 전통을 지키느냐가 아니라 전통을 ‘어떻게’ 지키느냐다. 형이 말한 직후 집으로 가는 길에 추석 차례와 성묘에 대한 얘기를 하다가 “우리 명절도 미국의 추수감사절처럼 다 같이 모여 식사 한번 하고 헤어지는 형태로 정착될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10년 전 추석과 지금이 상당히 다르듯이, 10년 후 추석은 지금의 추석과 더 달라져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다 같이 모여 마음을 나눈다’는 우리 명절의 가치는 지켜가야 한다. 그렇게 우리의 전통을 형식이 아닌 마음으로 지켜나가면 된다. 그게 바람직한 전통의 계승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도형 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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