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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군대 맞습니다…어린이가 뛰어노는 군대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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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개관한 육군부사관학교 '학록도서관'

기존 공사 발주 시스템을 벗어났더니

같은 비용으로 전혀 다른 공간 탄생

[한은화의 공간탐구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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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록도서관의 중앙 전시홀. 이 공간을 중심으로 각종 실이 계단을 따라 배치됐다. 우측 상부의 계단은 시네라이브러리로 가는 하늘계단이다. [사진 김재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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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전북 익산시에 한 도서관이 개관했다. 도서관 순례객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 알음알음 찾는 이가 꽤 있다. 그런데 이 도서관 방문 절차가 조금 남다르다. 위병소를 통과해야 한다. 법적인 건축 용도는 ‘교정 및 군사시설’이다. 육군부사관학교의 새 도서관, ‘학록도서관’이다.

‘군대=학교=감옥’이라는 오랜 공간 공식이 있다. 기능은 다르지만 세 공간은 비슷한 모양새로 지어졌다. ‘현대판 판옵티콘’이다. 감시가 공통 목적이었다. 최근 들어 학교 공간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지만,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건축계에서 미지의 영역으로 손꼽히는 군부대 안 도서관은 어떻게 다르게 지어질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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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부사관학교 위병소를 통과하면 '학록도서관'을 만날 수 있다. 익산에서 나는 화강암(황등석)으로 외관을 마감했다. [사진 김재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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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홀은 지상 3층까지 뻥 뚫려 층고가 높다. [사진 나승현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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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월 학록도서관의 운명이 결정됐다. 풍산그룹이 육군부사관학교 발전기금으로 50억원을 기부하기로 했고, 학교에 필요한 도서관 건립 비용으로 이 기부금을 쓰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아예 건물을 지어 기부하는 프로젝트로 윤곽이 잡혔다.

류진 풍산 회장과 이한기 전 학교장이 의기투합해 영화관과 카페가 있는 도서관을 짓기로 했다. 책만 있는 공간이 아니라 복합문화공간이 되길 원했다. 류 회장은 풍산의 충정로 사옥을 설계한 이상대 건축가(스페이스연 건축사사무소 대표)에 도서관 설계를 맡겼고 프로젝트는 급물살을 탔다.

즉 학록도서관은 국방부의 시설 공사 발주 시스템을 따르지 않았다. 민간에서 짓듯 지었다. 군부대 시설 공사의 경우 조달청을 통하지 않고 국방시설본부에서 자체 수행한다.

건축도시공간연구소가 발간한 『숫자로 보는 공공건축 2017』에 따르면 우리나라 공공건축물 중 교정 및 군사시설이 차지하는 비중은 동수 기준으로 전체의 4위(10.9%, 2만2315동)를 차지했다. 연면적 기준으로 보면 교육연구시설·업무시설에 이어 3위(8.6%, 1791만2,000㎡)다. 국방부의 2019년 세출예산 설명자료를 살펴보면 한해 국방ㆍ군사시설 조성 관련 사업 예산 총액은 2조 2000억원에 달한다.

이상대 소장은 “특수 목적 및 기능을 가진 군부대 시설을 모두 일반 건물 짓듯 지을 수 없지만, 훈련시설 외 복지ㆍ문화 공간은 좀 더 낫게 바꿀 필요가 있다”며 “군인들의 눈높이가 계속 올라가는데 군부대 시설은 아직도 80년대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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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층 시네라이브러리의 모습. 이상대 건축가가 책상과 책상 조명 모두 디자인했다. [사진 김재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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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서가의 모습. 자작나무 합판으로 맞춤형 책장을 제작했다. [사진 나승현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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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계단에서 중앙홀을 내려다 본 모습. [사진 나승현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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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록도서관은 국방부의 표준설계도면을 쓰지 않았다. 건축가가 기본설계부터 차근차근히 했다. 이한기 전 학교장은 “표준설계도면을 바탕으로 모든 군 시설물을 지으니 건물이 다 똑같다”며 “설계 예산을 제대로 책정해서 실력 있는 건축가들이 참여해 건물을 짓도록 바뀌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금까지 학교 건물도 1960년대 만든 표준설계도면을 바탕으로 학생 수에 맞춰 교실 개수만 정해 똑같은 모양으로 뚝딱 지었던 터다.

50억원의 공사비를 온전히 쓴 덕에 건물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다. 공공의 공사 발주 시스템은 가격 입찰제도다. 저렴한 공사비를 써낸 업체를 뽑는다. 잘 짓는 것보다 싸게 짓는 것에 더 집중하는 시스템이다. 더욱이 건설업 면허만 가진 업체가 공공 입찰에 참여해 공사를 수주한 뒤 다른 업체에 재하청을 주는 일도 종종 있다. 발주 과정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공사비 일부가 증발한다. 50억짜리 건물을 짓겠다고 했는데 30억대 건물이 되는 꼴이다.

이상대 소장은 “공공 발주였다면 국가계약법에 따라 관이 공급하는 관급자재(중소기업 자재)를 써야 하는데, 중소기업육성을 위해 만든 제도지만 품질이 가격 대비 다소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며 “학록도서관은 민간 프로젝트처럼 진행해 자재 사용에 규제가 없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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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카페 한 편에는 어린이를 위한 공간이 마련됐다. 인근 군인 아파트에 살고 있는 아이들이 유치원 하원하면 코스처럼 학록도서관에 들러 놀다 간다. [사진 나승현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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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록도서관은 군 시설물로써 이런 남다른 과정을 거쳐 지어졌다. 연면적 약 2073㎡의 3층 규모다. 가운데 다목적 전시홀을 두고서 카페·열람공간·휴게공간·시네라이브러리 등이 휘감아 올라가듯 배치되어 있다. 다목적 전시홀은 3층까지 뻥 뚫려 있어 탁 트였다. 동그란 천창을 통해 빛이 시시각각 변한다. 자작나무 합판으로 만든 맞춤 가구가 정갈하다. 열람실에 전쟁군사 코너가 있다는 특이점 외에, 정말 잘 지은 동네 도서관에 온 듯하다.

육군 소속 부사관은 총 8만명이다. 교육을 위해 이 학교를 거쳐 가는 인원은 연간 1만 명이다. 임관을 위해 입소하는 20대 초반의 간부 후보생부터 전국의 부대에서 재교육을 위해 입소하는 군 간부들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군인이 이곳을 거쳐 간다.

육군부사관학교의 김하나 중사는 “점심시간, 오후 일과가 끝나는 오후 4시 반 이후가 가장 북적인다”며 “근처에 문화시설이 없다 보니 인근 군인아파트의 가족들도 출근 도장 찍듯 온다”며 웃었다. 1층 카페 한쪽에 어린이 놀이 공간을 둔 이유다.

학록도서관은 당초 지역사회에 개방한다는 목표로 지어졌다. 군부대 정문인 위병소 바로 옆에 도서관을 지은 까닭이다. 이상대 건축가는 “학록도서관을 통해 군부대 내에도 좋은 문화시설이 들어설 수 있다는 인식이 생기고 개별 부대 내의 복지ㆍ문화시설이 개선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며 “무엇보다 문화시설이 부족한 인근 지역사회와 공유하는 도서관으로 자리 잡길 바란다”고 희망했다.

익산=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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