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나온 정경두 국방부 장관의 말이다. 국내에서 첫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발생한 후 3일까지 총 13건의 확진 사례가 쏟아졌다. 이런 상황에서도 국방부는 북한 멧돼지에 의한 직접 전파 가능성은 없다고 자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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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책 넘어온’ 멧돼지는 없어…보수적 분석으로 유입경로 제한
3일 DMZ 북쪽 1.4km 지점에서 발견된 야생 멧돼지의 사체. [환경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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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F가 발생한 지 17일이 지났지만, 정부는 감염 경로와 원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국회와 전문가들은 정부가 유력한 원인으로 거론되는 '북한 유입설'을 아예 배제하고 있다 보니, ASF 대응마저도 허술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ASF가 발생한 지 하루 지난 지난달 18일 환경부는 1차 발생지인 파주 농가가 임진강 하구 합류지점과 10㎞ 이상 떨어졌다는 이유로 북한 멧돼지로부터 ASF가 유입됐을 가능성은 작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하루 지난 19일 “야생 멧돼지를 통한 전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을 바꿨다.
실제 ASF 바이러스가 북한에서 유입했을 가능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3일 경기도 연천군 비무장지대 북쪽 1.4㎞ 지점에서 발견된 멧돼지 사체에서 ASF 바이러스가 검출됐다. 멧돼지가 남쪽으로 넘어오지는 않았지만, 임진강이나 다른 야생동물을 통해 바이러스가 전파됐을 가능성이 전보다 커진 것이다. 김현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인천시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북한에서 헤엄쳐 온 것으로 추정된 멧돼지 3마리가 강화군에 위치한 교동도 군부대 인근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하지만 국방부는 여전히 ‘철책을 넘어온’ 멧돼지는 없다는 입장만 되풀이했다.
북한 멧돼지 이동을 막는 최전방 철책이 완벽하다고 보기에도 무리가 있었다.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은 2일 국정감사 자리에서 “(전방 부대에) 확인해보니 태풍 등으로 철책이 많이 무너진 상태였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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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이례적 국제기구 신고…정부, 알고도 안일한 대응
아프리카돼지열병 발생 현황.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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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유력한 답안으로 보이는 '북한 유입설'을 기어코 부정하면서 '알면서도 당하는' 결과로 이어질 공산만 커졌다. 5월 북한 축산당국이 이례적으로 국제기구에 ASF 발병 사실을 통보했을 만큼, 북한·중국을 비롯한 주변국의 피해도 심각한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환경부는 지난해 10월 200억원의 국비를 투입해 국립야생동물질병관리원을 준공했지만, 행정안전부와 직제 협의도 하지 못해 1년째 방치했다.
야생 동물 ASF 진단 인력 충원도 제때 이뤄지지 못했다. 환경부 산하 국립환경과학원 생물안전연구팀 관계자는 “ASF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정규직 직원은 5명에 불과하고 비정규직까지 합해도 10여명 남짓”이라며 “지난해부터 1100여건에 달하는 ASF 분석을 이 인력이 모두 담당해 인력 충원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이러는 사이 3일 ASF 발병농가가 파주 문산읍과 김포 통진읍 등으로 추가 확진되면서 살처분 대상 돼지는 12만 마리를 넘어서게 됐다.
자연에는 국경이 없다. 질병은 아프리카에서 대륙을 지나 북한으로 번져왔다. 이후 질병이 남한으로 확산할 것이라는 건 자연스러운 추론이다. 그래서 더 궁금하다. 뚜렷한 원인도 못 밝힌 정부가 북한 유입설만큼은 과민할 정도로 선을 긋는 이유가 무엇인가. ‘철책선’을 과신하기 전에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둬야 할 때다.
세종=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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