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사람의 필독서
청각과 언어 장애인이며 학력은 고등학교 2학년 중퇴가 전부. 시인이고, 사진가이고, 노동운동가이고. 민주 또는 재야인사였다. 팔색조 여정의 종착역은 국어학자였다. 문익환 목사가 북한을 방문하여 김일성 주석에게 겨레말 통일사전을 편찬하자고 합의할 때 내민 <우리말 갈래사전>의 지은이.
박용수는 “국문학계에 누를 끼치는 과오를 범할지라도” 자신이 낼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문인의 한 사람으로서 늘 아쉽게 느껴온 일은, 마음속의 생각과 사물에 딱 들어맞는 낱말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는 길잡이 구실의 ‘사전’이 없다는 것이었다”고 머리말 첫 문장에서 밝혔다. 이전에 없었기에 이 책은 당연히 우리나라 분류사전의 개척자였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필요했을 이런 사전이 왜 진작 없었을까? 박용수는 “국어학자들의 주체성 없는 사관”이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글 쓰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금맥이나 다름없다. 사랑에 빠진 주인공의 마음을 우리말로 적절히 표현하기 위해 ‘사람의 마음’ 항목을 펼치면 낱말의 향연이 펼쳐진다. 이렇게 33개 항목 대분류에 따라 모두 3만6000여개의 낱말이 수록되어 있으니 신춘문예를 꿈꾸는 사람들은 그에게 절을 올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한길사에서 1989년 첫선을 보인 <우리말 갈래사전>은 현재 서울대학교출판부에서 발간하고 있다.
필자의 소소한 생활 고민 중 하나가 집의 책을 치우는 일이다. 기준이 그때그때마다 다른데 이 책은 30년 동안 굳건히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책 중의 하나이다, 게을러 자주 꺼내지 않지만 10년간 지난한 작업을 거의 홀로 했을 선생의 노고에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기 위함이다. 1934년생이니 올해 여든다섯. 건강하시라고 이 지면을 빌려 인사드린다.
정찬일 작가
▶ 최신 뉴스 ▶ 두고 두고 읽는 뉴스 ▶ 인기 무료만화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