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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21세기의 지도자들, 여전히 한심하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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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을 들고 도망친 101세 노인

요나스 요나손 지음·임호경 옮김

열린책들 | 528쪽 | 1만4800원

경향신문

소설 <핵을 들고 도망친 101세 노인>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이후 남북관계가 급진전되기 직전 김정은과 도널드 트럼프 두 정상이 ‘말폭탄’을 날리던 시점을 배경으로 한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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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살 생일날 양로원 창문을 넘어 도망쳤던 노인이 이번에는 101살 생일날 열기구를 탔다가 망망대해에 조난당하며 새로운 모험을 시작한다. 스웨덴 소설가 요나스 요나손(아래 사진)의 신간 <핵을 들고 도망친 101세 노인>이다.

소설은 현대판 <돈키호테>라고 할 수 있다. 스웨덴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100년 넘게 살면서 세계사적 사건에 끼어들게 되는 주인공 알란 칼손과 그의 유일한 친구인 율리우스 욘손이 ‘황당무계’한 모험을 이어간다.

인도네시아 발리섬에서 휴식을 취하던 알란. 그의 101세 생일이 다가오면서 친구 율리우스는 생일파티를 위해 거대한 열기구를 준비한다. “잘못된 때에 잘못된 장소에 가 있는 특출난 재주”가 있는 이들은 예기치 못한 바람과 조작 미숙, 기계 고장이 겹치면서 인도양에 불시착하고 만다. 다행히 지나가던 배가 조난 신호탄을 보고 그들을 구조하러 오지만, 그 배는 농축 우라늄을 몰래 운반하던 북한 화물선이었다. 알란은 화물선 선장에게 자신이 핵무기 전문가라고 거짓말을 해버리고, 북한 평양의 주석궁까지 끌려가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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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소설 내용을 요약하면, 제정신인가 싶은 노인 알란과 그의 충실한 친구이자 사기꾼인 율리우스가 북한에서 미국을 거쳐 스웨덴에 이르고, 거기서 율리우스의 연인이 되는 장의사와 함께 탄자니아로 가 마사이족 전사 출신 사파리 가이드의 결정적 도움으로 한반도, 더 나아가 세계를 북핵 위기에서 구한 뒤 아스파라거스 농사를 짓는다는 얘기다. 써놓고 보니 참으로 황당하지만, 읽어보면 재밌다.

전 세계적으로 1000만부 넘게 팔린 전작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이 이오시프 스탈린, 마오쩌둥, 해리 트루먼 등 20세기 정치 지도자들을 풍자했다면, 이번에는 김정은, 도널드 트럼프, 앙겔라 메르켈, 블라디미르 푸틴 등 21세기 지도자들이 등장한다. 그중에서도 핵심은 북한 김정은과 미국의 트럼프, 책속에서 “태평양 양편에 하나씩 서 있는 거대한 자아, 아무 쓸데없는 두 개의 혹덩이”로 혹평받는 두 사람이다.

소설의 시점은 2017년.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미사일 발사를 이어가고, 트럼프는 그를 ‘리틀 로켓맨’이라고 비꼬면서 한반도 긴장이 최고조에 이르던 시기다. 작품 전반부의 무대는 아예 북한이다. 농축 우라늄을 밀수해 핵무기를 개발하려는 김정은, 정보전을 펼치며 북한을 주시하는 세계 각국의 비밀요원들, 유엔에서 벌어지는 물밑 싸움이 알란의 모험과 얽혀든다. 이 과정에서 한국 독자들은 움찔움찔할 것 같다. 풍자와 조롱이 적나라하기 때문이다. 외국인이 묘사하는 남북한 문제를 읽다보면, 거리두기를 하며 돌아보게 되는 지점도 있다.

책에선 가차없는 ‘실명 비판’을 한다. 이미 작가는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에서도 ‘영악하고 고집불통에 사악하기까지 한 어린 김정일이 알란을 총살해 달라고 떼를 쓰다가 아비 김일성에게 따귀를 철썩 얻어맞는’ 내용을 썼다. 이번 작품에서도 북한 체제의 모순부터 김정은 개인까지 끝없는 희화화가 이어진다. “그의 아버지는 배고픈 백성을 굶주린 백성으로 만들어놨”다거나 “고모부는 불륜 등의 죄목을 뒤집어쓰고 사형에 처해졌지만 정작 김정은 자신의 아버지가 세 명의 여자에게서 다섯 자녀를 가졌다는 사실은 12페이지에 달하는 판결문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았다” 등등. 트럼프에 대해서도 “대통령이야, 아니면 그냥 미치광이야? 뭐, 역사를 살펴보면 대통령인 동시에 미치광이인 사람들이 심심치 않게 있었다”는 식으로 조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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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신변이 농반진반으로 걱정될 정도다. 요나손은 머리말에서 미리 입장을 밝혀놨다. “이 지도자들은 평범한 사람들 말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무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그들을 조금 놀려댈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들도 인간으로서 어느 정도 존중받을 자격이 있다. 따라서 난 이 모든 권력자들에게 ‘미안합니다’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너무 불평하지 마쇼, 더 고약하게 쓸 수도 있었으니까’라고도, 또 ‘그래, 내가 만일 그렇게 썼다면 어쩔 건데?’라고 묻고도 싶다.”

작가는 “세상이 그 어느 때보다 불완전하다는 느낌을 안겨 주었지만 그저 구경만 하고 있었다”면서 “다시 한번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다는 느낌이 조금씩 자라나기 시작했다”고 9년 만에 후속작을 내놓은 이유를 밝혔다.

알란이 나이를 한 살 더 먹으면서 생긴 변화는 뉴스에 중독됐다는 점이다. 알란은 우연히 손에 넣은 태블릿PC를 통해 핵, 군축, 난민, 네오나치 등 국제사회의 각종 문제들을 접하게 된다. 이를테면 “멕시코와 미국 사이에 장벽을 세우는 비용은 동아프리카의 기아를 해결할 수 있는 돈의 무려 네 배”에 달한다는 뉴스들. 주인공의 여정을 따라가다가 세상에서 벌어지는 씁쓸한 일들과 마주치다보면 작가의 조롱과 우스갯소리가 결코 가볍게 느껴지지 않는다.

때때로 알란은 인생에 대한 깊은 시선을 드러내기도 한다. “우린 전에도 돈이 없었어. 여유를 좀 가지라고! 인생은 단 한 번뿐이야. 우리네 삶에서 확실한 것은 바로 이 사실뿐이라고.” ‘유사 이래로 가장 한심한 시대였을 지난 세기’에 비해 ‘조금도 나아지지 않은’ 현시대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질문을 던진다.

배문규 기자 sobbel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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