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야단체 "中 국경절은 '애도의 날'"…대규모 시위 예고
금주말에는 세계 50여개 도시에서 홍콩 시위 지지 집회도
'시민과의 대화' 나선 캐리 람 행정장관 |
(홍콩=연합뉴스) 안승섭 특파원 =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반대 시위가 장기화하는 가운데 홍콩 행정 수반인 캐리 람(林鄭月娥) 행정장관이 사태 해결을 위한 시민과의 대화에 나섰지만 참석자들로부터 호된 질타를 받았다.
26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명보 등에 따르면 캐리 람 행정장관은 정부 각료들과 함께 이날 저녁 7시 완차이 지역의 퀸엘리자베스 경기장에서 시민 150명과 공개 대화를 했다.
송환법 반대 시위가 장기화하자 캐리 람 장관은 지난 4일 송환법 공식 철회와 함께 시민과의 대화, 경찰민원처리위원회(IPCC)에 의한 경찰 진압 과정 조사, 홍콩 사회 문제의 뿌리 깊은 원인 조사 등 4가지 대책을 내놓았다.
이날 행사는 캐리 람 장관이 약속한 시민과의 대화 중 첫 번째 행사이다.
이날 행사에는 시민 2만237명이 참여를 신청했으며, 참가자는 추첨을 통해 선정됐다.
2시간 동안 진행된 행사에서 참석자들은 대체로 람 장관에게 강한 불만을 쏟아냈다.
한 시민은 "우리 모두가 당신이 권한을 갖고 있지 않아 실제로 말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는 것을 안다"고 쏘아 붙였다.
시민들 발언 듣는 캐리 람 행정장관 |
그러면서 "당신이 내 질문에 답할 때는 날 '친구'라고 부르지 말라"며 "난 당신 같은 친구는 없다"고 말했다.
다른 참석자는 "당신은 모든 사람들을 화나게 했고, 심지어 시진핑조차 당신과 어울리는 것을 부끄러워 한다"고 직설적으로 비난했다.
한 중년 여성도 람 장관이 진짜 대중이 아닌 부자들과 권력자들만을 챙기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날 참석자 중 상당수는 시위대의 상징인 검은 옷에 마스크까지 쓰고 행사에 참가했다.
람 장관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비난을 경청하는 모양새를 취하기는 했지만 질서 회복을 촉구하는 메시지 전달에 주력했다.
람 장관은 "어떤 이들은 대화가 PR 쇼에 불과하다고 의심하지만 이런 대화는 시작되어야 한다"며 "폭력 격화는 양측 모두를 해치기 때문에 젊은이들이 침착해지기를 희망한다"고 호소했다.
그는 또 일국양제는 홍콩이 반드시 지켜나가야 할 마지노선이라고도 강조했다.
'시민과 대화' 행사장 밖의 시위대 |
이날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경기장 바깥에서는 최소 수백명으로 추산되는 시위대가 모여들었다.
경찰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행사장 인근에 3천여 명의 병력을 배치했다.
캐리 람 장관의 대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홍콩 시위대는 이날 행사를 '정치적 쇼'라고 깎아내리면서 반대 시위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홍콩 시위대의 가상 지휘센터 역할을 하는 온라인 포럼 'LIHKG'에서는 이날 행사를 무산시키고 시위대의 5대 요구사항을 관철시켜야 한다는 글들이 속속 올라왔다.
홍콩 시위대의 5대 요구 사항은 ▲ 송환법 공식 철회 ▲ 경찰의 강경 진압에 관한 독립적 조사 ▲ 시위대 '폭도' 규정 철회 ▲ 체포된 시위대의 조건 없는 석방 및 불기소 ▲ 행정장관 직선제 실시 등이다.
캐리 람 장관은 송환법 공식 철회 외에 다른 요구사항의 수용은 거부하고 있다.
송환법 반대 시위는 오는 주말과 국경절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대규모 송환법 반대 시위를 주도해 온 재야단체 민간인권전선은 오는 28일 저녁 7시 홍콩 정부청사 인근 타마르 공원에서 '우산 혁명' 5주년 기념 집회를 열 계획이다.
'우산 혁명'은 홍콩 시민들이 2014년 9월 28일부터 79일 동안 도심을 점거한 채 행정장관 직선제 등을 요구한 민주화 시위를 말한다.
홍콩 시위를 지원하는 온라인 그룹인 '스탠드위드홍콩(Stand With Hong Kong)'은 주말인 28일과 29일 세계 20개국 50여개 도시에서 홍콩인들에게 연대를 나타내는 지지 시위가 열릴 것이라고 밝혔다.
연대 시위는 미국 워싱턴, 독일 베를린, 대만 타이베이 등에서 열리며, 집회와 함께 행진이 있을 예정이다.
민간인권전선은 국경절인 다음 달 1일에는 오후 2시 빅토리아 공원에서 시작해 홍콩 도심인 센트럴까지 행진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일 계획이다.
민간인권전선 웡익모 부주석은 "국경절은 국가의 경사가 아닌, '애도의 날'이 돼야 한다"며 "지난 70년 동안 수많은 사람이 국가에 의해 희생되고 탄압을 받고 살해됐다"고 주장했다.
웡 부주석은 그 예로 1989년 6월 4일 톈안먼(天安門) 민주화 시위 유혈진압 희생자와 중국에서 인권 운동을 하다가 투옥돼 오랜 기간 감옥에 갇혀 있다가 사망한 노벨평화상 수상자 류샤오보(劉曉波) 등을 들었다.
민간인권전선은 지난 8월 31일과 9월 15일 신청했던 집회를 경찰이 모두 불허한 만큼 국경절 집회도 불허될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민간인권전선은 경찰이 불허할 경우 10월 1일 시위를 취소할 계획이지만, '애도'의 의미에서 홍콩 시민들이 국경절에 검은 옷을 입을 것을 촉구했다.
온라인 포럼 'LIHKG'에는 국경절 집회가 불허될 경우 홍콩 시내 곳곳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이자는 글이 올라오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웡타이신, 쌈써이포 등 여러 지역의 도로를 봉쇄한 뒤 몽콕으로 모이자는 방안, 지하철역 폐쇄로 이동에 제한을 받게 될 경우 시내 5곳에서 시위를 벌이자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홍콩 정부는 국경절 시위를 우려해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 게양 참관식을 실내에서 거행하기로 했으며, 도심 항만인 빅토리아 하버의 불꽃놀이 행사도 취소했다.
ssa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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