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21 (토)

日과 파기 후 태국과 ‘지소미아 협정’ 왜? 예전부터 탈북자들의 핵심 탈출 루트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지난 8월 말께 일본의 우리에 대한 화이트리스트 배제 조치 이후 한일 관계가 본격적으로 악화되던 가운데 의외의 소식이 하나 들려왔다. 우리와 태국이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을 체결한다는 것이었다. 이 소식은 우리가 일본과의 지소미아 협정 체결 연장을 하지 않기로 한 직후 들려와서 분분한 해석을 낳았다. 한일 양국의 지소미아 협정이 그동안 중요했던 것은 대북 관련 정보 공유에 서로 도움이 됐기 때문이다. 또한 한미일 군사 동맹의 상징이기도 했다. 그런데 일본과의 지소미아 협정 파기 이후 태국과 이 협정을 체결하자 ‘왜’라는 의문이 뒤따랐다. 태국과 무슨 긴밀한 군사정보 협력이 필요하냐는 것이었다.

매일경제

문재인 대통령과 태국 쁘라윳 짠 오차 총리가 9월 2일 방콕 총리실 청사에서 단독회담을 하고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泰, 예전부터 탈북자들의 주요 탈출 루트

양국의 지소미아 공식 체결은 문재인 대통령의 9월 2일 태국 방문 당시 이뤄졌다. 문 대통령은 쁘라윳 짠 오차 태국 총리와의 정상회담 후 가진 공동 언론 발표에서 “한태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이 체결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면서 “이를 통해 양국은 국방·방산분야에서 더욱 굳건히 협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이 같은 언급 이후 태국과의 지소미아 협정이 주로 방산 협력과 관련한 비밀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주를 이뤘다. 여기에는 우리가 상대적으로 기술 우위에 있는 군사 협력에서 우리의 기밀을 보호하기 위함이라는 시각이 깔려있다. 물론 맞는 말이다. 군사 관련 민감한 기술이 방산 협력을 통해 주로 새 나간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하지만 태국이 예전부터 탈북자들의 비밀 탈출 루트였음도 주목할 만할 대목이다. 즉, 태국을 활용해 북한 관련 정보를 입수할 경우 시진트(SIGINT), 이민트(IMINT), 코민트(COMIN T) 등 첨단 기술을 활용한 정보 확보에 대한 기대는 크지 않을 수 있으나, 인적 정보(휴민트, HU MINT)를 활용한 정보 획득은 사용 가능한 방법일 순 있다는 얘기다. 탈북자들이 중국을 관통해 태국, 라오스를 거치는 긴 거리를 이동하는 이유는 잡히지 않기 위해서다. 태국에 파견된 관계 당국자들의 주된 임무 중 하나도 탈북자들과 관련된 일이다. 이 과정에서 북한 관련 정보를 입수할 수 있고 서로 공유할 수 있는 것이다. 2016년 집단 귀순한 북한 종업원들도 중국-라오스-태국 루트를 거쳐 한국에 왔다.

이런 점을 볼 때 한국과 태국의 지소미아 협정이 문 대통령의 태국 방문을 앞두고 체결된 측면이 있긴 하지만, 일각에서 제기하는 것처럼 일방적으로 우리가 태국 측에 제공하는 군사 정보만을 보호하기 위해 진행된 것이 아님은 분명해 보인다.

이처럼 태국은 우리가 즐겨 찾는 관광지 이상의 의미를 우리에게 던져 주는 대목이 적지 않다. 신남방정책이 추진된 이후 우리의 관심은 온통 베트남에 쏠려 있지만 여러 아세안 국가 중에서도 태국은 우리 국익 차원에서 실제 곱씹어 볼 만한 국가로서 가치가 있다.

매일경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美 “태국은 남아시아·동남아시아·

동북아시아를 잇는 다리”

이와 관련해 미국의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브라이언 하딩 연구원의 태국의 지리적 입지와 관련한 분석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그는 한 기고문에서 태국을 “남아시아, 동남아시아, 동북아시아를 잇는 다리”라고 표현했다. 현 트럼프 정부의 대아시아 외교정책 방향인 인도-태평양 전략을 염두에 둔 해석이지만, 태국을 “인도차이나 반도의 중앙에 있는 국가”로만 보는 우리의 시각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특히 신남방정책은 인도까지 포함하는 우리의 외교 전략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9월 2일 태국 총리 주최 공식오찬 답사에서 태국을 “동남아의 십자로”라고 표현했다. 태국의 지리적 중요성을 따질 때 미국의 시각은 우리보다 더 폭넓은 셈이다.

태국의 지정학적 가치는 오래전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UN의 지역 본부가 오래전부터 터를 잡고 있고, 글로벌 기업들이 예전부터 대부분 진출해 있으며, 동남아 진출 거점으로 삼고 있는 것이 그 사례다.

태국의 지리적 입지는 아세안이 공동의 발전을 위해 추진 중인 아세안공동체 아래에서도 두드러진다. 2015년 말 아세안은 역내 공동체를 출범시키면서 ‘연계성’을 주요 가치로 내세웠다. 이는 역내 국경을 실질적으로 허물고 자유로운 물적 인적 교류를 하자는 것인데, 이를 위해 인도차이나 반도 곳곳에서 도로, 다리, 고속철 등의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태국은 반도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어 내륙 아세안을 동서남북으로 연결할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입지를 확보하고 있다. 중국발 고속철도도 태국을 관통해 싱가포르까지 연결될 예정이다. 아세안이 글로벌 생산기지로서 더욱 부각되는 시점에 인도차이나 반도 내 물류 활성화는 핵심과제이고 지리적 중심에 있는 태국이 연계성 개념의 실질적 수혜를 누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태국 정부도 이를 적절히 잘 활용하고 있다. 자국의 산업구조를 4차 산업 시대에 맞게 바꾸고자 야심차게 추진 중인 정부 4.0의 핵심 거점도 이 인프라 연계성 개념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지정한 흔적이 역력하다. 현재 태국 정부는 자국의 동쪽지역인 촌부리, 라용, 차층사오 일대를 동부경제회랑으로 지정해 관련 기업 유치 노력을 하고 있는데, 이곳은 람차방 항구를 끼고 있다. 이곳을 이용하면 안다만 해를 통해 인도양으로 바로 진출할 수 있다. 내륙 국가들인 라오스나 캄보디아 등에서 생산된 상품들의 수출길이 더 편해진 것이다. 물론 미얀마 베트남 등 경쟁국들도 태국과 유사한 논리를 펴며 자국의 입지를 강조하지만, 인프라 연계성의 개념에서만 보면 태국의 경쟁력은 주변국들보다 앞서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 같은 태국의 지리적 가치를 오래 전부터 눈여겨 본 국가가 일본이다. 일본의 태국 공략 역사는 오래됐다. 1970년대 일본 상품 불매 운동을 벌일 정도로 일본에게 반감을 보였던 태국에게 일본은 끊임없이 구애를 했다. 이 과정에서 물적 인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990년대 이후 일본의 대 태국 투자는 더 급증했다. 그 결과 태국은 일본의 대표 산업인 자동차의 동남아 생산 거점이 될 정도로 일본과 경제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일본은 최근 라오스 등 인근 국가에 자국 자동차 기업들의 부품 생산 기지를 만들며 동남아 내 자체 자동차 생산 밸류 체인을 완성했는데, 태국과의 끈끈한 관계가 바탕이 됐음은 물론이다. 그러다 보니 태국의 도로는 일본의 자동차로 가득한데, 태국을 첫 방문한 한국인들은 이 같은 모습에 대부분 놀란다. 또한 한류가 거센 대표 동남아 국가가 태국이라고는 하지만 일류의 뿌리 또한 만만치 않음에 또 한 번 놀란다.

이에 태국이 신남방정책에서 철저하게 소외되는 것을 두고 대부분의 전문가나 당국자들은 “일본의 뿌리가 너무 깊어서 우리가 비집고 들어갈 공간을 찾기 힘들다”는 답을 내놓는다. 맞는 말이지만 현지에서 오래 거주한 교민의 설명에서는 다소 온도차가 느껴진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민은 “태국에 일본의 입지가 탄탄한 것은 미리 진출한 덕분도 있지만 철저하게 태국인의 입장에서 시장을 공략한 측면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면서 “같은 식당이 있더라도 가고 싶게 만들고 가격이 합리적이라면 그쪽으로 사람이 몰리지 않겠냐”고 말했다. 이는 그동안 태국 시장을 공략한 우리들의 전략적 고민이 덜했다는 뜻이 된다.

이와 관련해 한 태국 전문가는 “최근 태국 투자청 고위 인사를 만난 적이 있는데 한국 사람들은 꼭 먼저 뭔가를 달라고 하는 습성이 있는 것 같다”면서 “먼저 나눠줄 줄은 모르는 것 같다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이 전문가는 “일본은 태국에 자동차를 팔아먹기 전에 도로를 먼저 깔아줬다”면서 “이익만 먼저 챙기려 한다면 누가 먼저 선뜻 문을 열어주겠는가”라고 꼬집었다. 김홍구 부산외대 태국어과 교수는 “사실 진정성 문제는 예전부터 계속 나오는 이야기이지만 전혀 해결되지 않는 고질적인 부분”이라면서 “그 예로 태국에서 왕이 바뀌는 세기의 이벤트가 있었는데, 이를 외교적으로 잘 활용하지 않는 것을 보면서 답답했다”고 했다.

매일경제

태국을 공식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9월 2일 방콕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열린 비즈니스포럼에 참석해 프라윳 찬 오차 총리와 함께 태국과 합작 개발한 전기 뚝뚝이를 시승하고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제 이벤트는 그만, ‘가시적 성과’가 필요하다

김 교수는 이어 “이번 대통령의 방문에서 많은 분야에서 양해각서(MOU)를 맺었는데, 경험상 후속 조치가 미진한 것들이 많았다”면서 “이번에는 좀 달라져서 아세안 내 다변화된 우리의 정책 방향이 가시화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즉 대통령 방문을 통한 각종 행사들이 일회성 이벤트로 그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일단 문 대통령의 현지 행보를 보면 태국이 필요로 하는 것을 잘 짚은 것 같다. 문 대통령은 프라윳 찬 오차 태국 총리와의 회담이 끝난 이후 가진 공동 언론 발표에서 “(태국이) 추진 중인 ‘4.0’정책과 우리의 ‘혁신성장 정책’을 연계하여 혁신과 포용의 미래를 함께 만들어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 일환으로 우리 정부는 태국 측과 미래차, 로봇, 바이오 등 신산업분야에서도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이 분야들은 태국이 정부 4.0 정책을 펼치면서 삼은 핵심 거점 지역인 동부경제회랑에 유치하고자 하는 산업군에 포함돼 있는 것들이다. 태국은 그동안 글로벌 생산 밸류체인에서 단순 제조업 공장 수준에 머물렀던 것에서 탈피해 4차 산업 시대를 계기로 자체 생산능력을 가진 산업구조를 만들려 하고 있다. 기술적으로 앞서 있는 우리가 충분히 도와줄 수 있는 분야다. 문 대통령이 태국의 서민 이동수단인 뚝뚝이의 전기차 버전을 시승한 것도 좋은 포인트였다는 해석이 많다. 이 전기차 뚝뚝이는 양국 기업이 협력해 시범적으로 만든 것으로, 여기에 들어갈 배터리를 현재 양국 기업이 함께 개발 중에 있다. 스타트업과 디지털 경제 육성 및 의학과 나노 산업에 있어 핵심기술인 방사광 가속기와 연구용 원자로, 과학위성 등 순수·응용과학 분야에서도 협력을 강화하기로 한 것도 태국이 현재 시점에서 원하는 대목이다. 태국의 과학 인재 육성 의지도 강하다.

하지만 이 같은 움직임들이 또 말잔치로만 끝나서는 안 된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준비하는 태국의 적극적인 행보에 이미 글로벌 기업들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동부경제회랑의 주요 거점 중 하나인 촌부리주(州)에서는 의미심장한 일이 벌어졌다. 세계 최대 데이터센터 회사인 스위치 계열의 슈퍼냅타일랜드가 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소식은 이보다 앞서 촌부리에 투자를 결정한 중국의 알리바바의 움직임보다 더 상징적인 사건이다. 4차 산업의 핵심 요소라고 할 수 있는 데이터 관련 세계 최대 미국 회사가 아시아의 핵심 거점으로 태국을 선정을 했기 때문이다. 단순 제조 공장으로 여겼던 아세안에 대한 시각이 바뀌고 있다면 하면 너무 앞서 간 생각일까. 이 회사는 미국의 슈퍼냅과 태국의 CPB에퀴티, 시암뱅크, 트루IDC 등이 합작해 만든 것으로, 스위치가 해외에 지은 두 번째 데이터센터다. 슈퍼냅타일랜드를 유치하기 위해 태국의 민관은 총력전을 펼친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이 한류 붐을 이용한 우리 상품의 현지 판매를 촉진시키기 위해 브랜드K 론칭쇼에 직접 참석하기도 했지만, 태국뿐만 아니라 아세안 지역을 계속 우리 상품의 판매 시장으로만 여긴다면 이는 또 다른 실기를 할 수 있다는 지적도 유념해야 할 대목이다. 아세안경제통합 움직임도 언제까지나 글로벌 생산 밸류 체인에서 맨 아랫단에 머물 순 없다는 이 지역의 공감대의 표현이다. 이에 대해 한걸음 앞을 내다보는 행보가 없다면 신남방정책은 베트남 정책으로만 끌날 소지가 다분하다는 지적은 끊이지 않는다. 한 민간 전문가는 “쉬운 길로만 가다가 어려워지면 그때는 어떻게 대응할지 참 궁금하다”고 꼬집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대목 한 가지 더. 일각에서 태국 내 뿌리 깊은 일본의 선호 현상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이는 태국을 절반만 이해하는 것이다.

매일경제

태국 촌부리주 헤마라즈 산업단지에 위치한 슈퍼냅타일랜드 데이터센터 전경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태국의 문화적 특성을 이야기할 때 흔히 드는 예가 ‘용광로’다. 태국은 타국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에 배타적이지 않다. 아세안 한류의 발원지가 태국인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 그 문화는 어느 새 태국만의 문화가 돼 왔다. 다른 문화들을 녹여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태국의 음식이 대표적이다. 세계적으로 인기가 높은 태국의 음식 상당수가 다른 국가의 음식들과 혼합된 것이 많다.

조흥국 부산대 국제전문대학원 교수는 ‘태국 음식문화의 고찰’이란 논문에서 “토착적인 음식문화의 바탕 위에 인도와 중국의 영향이 있었고, 이웃국가들과의 역사적 접촉을 통해 베트남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의 음식문화가 흘러들어왔다”면서 “근대에 들어서도 서양의 음식문화가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인도의 영향은 각종 향신료와 카레에서, 중국의 영향은 꾸어이 띠어우로 대표되는 쌀국수·고기 요리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시간이 흐르면 우리의 음식, 일본의 음식도 태국의 음식문화에 녹아들 소지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물론 태국이란 나라의 한계성은 분명 존재한다. 대표적인 것이 군부가 통치하는 국가 상황이다.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군부 정권은 선거를 통해서도 여전히 태국을 통치하고 있는데, 많은 전문가들이 태국 경제의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

미국도 이 같은 상황이 탐탁지 않다. 미국은 군부쿠데타가 일어난 2014년부터 2년간 양국의 동맹을 상징하는 코브라골드훈련을 대폭 축소한 바 있다. 하지만 지금은 원상 복귀됐고, 오랜 동맹관계는 여전히 탄탄하다. 태국을 바라보는 시각도 인도차이나 반도 내가 아니라 아시아 전체 속에서 바라보며 전략적 가치를 인정하고 있다. 일본도 여전히 태국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부분이 있지만 국익의 기준에서 판단하고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참조할 만한 대목이다.

[문수인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09호 (2019년 10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