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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이슈 책에서 세상의 지혜를

“식탁은 누구에게나 공평한가?”…즐거운 식사에서 느끼는 ‘차별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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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따끈따끈 새책] ‘정치적인 식탁’…먹는 입, 말하는 입, 사랑하는 입

머니투데이

지금은 역할이 바뀌고 인식도 달라졌지만, 아직 ‘식탁 위의 역할’은 전 세대의 고정관념이 내린 습관 또는 학습 탓인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자칫 아들이 부엌에 발이라도 닿으면 노발대발하는 어머니, ‘남자는 일, 여자는 부엌’이라는 알게 모르게 퍼진 해묵은 인식 속에 ‘식탁’은 사회 권력 약자에겐 여전히 불편한 자리일 뿐이다.

왜 누구는 먹기만 하고, 누구는 만들고 치우기만 하는 걸까. 밥숟가락을 먼저 들 수 있는 사람, 식사 중에도 계속 일어나며 시중드는 사람, 음식을 앞에 두고 혼자 떠드는 사람과 묵묵히 듣기만 하는 사람은 왜 정해져 있는 걸까.

결국 밥상에도 고도의 ‘정치’가 숨어있는 셈이다. 식탁에서 ‘먹는 풍경’은 행복과 평등을 암시하는 듯하지만, 누군가에게 식탁은 고된 노동의 결과물이자 오랜 외로움의 장소다.

책은 ‘먹기’라는 평범한 일상에 스며든 차별을 고찰한다. 아내와 엄마라는 이름으로 가정 내 부엌노동을 책임지는 여성들, 백인들의 음식을 차리느라 자신들의 요리법을 공식적으로 대물림하기는커녕 ‘백인들의 남부요리’로 자리 잡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흑인들, ‘노키즈존’ 식당에 입장을 거부당하는 아이들 등 누가 권력을 쥐고 있느냐에 따라 정치적으로 결정되는 약자의 소외와 슬픔이 배어있다.

저자는 “식탁의 약자는 사회적 약자와 겹쳐있기에 사회가 변하려면 식탁부터 변해야 한다”며 “누구에게나 먹는 입, 말하는 입, 사랑하는 입의 권리가 있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할머니를 통해 식탁에서 만나는 부조리의 끝을 확인한다. 한 움큼의 미역줄기를 만들기 위해 수없이 미역줄기를 바늘로 찢는 할머니의 노동이 돌본 남편과 자식을 통해 차별의 삶을 되새기고, 또 다른 여성에게 전가되었을 뿐 여전히 남아있는 여성만의 노동을 보며 진보란 과연 무엇인가 다시 곱씹는다.

“사랑? 나는 할머니가 뭘 좋아했는지 잘 몰랐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적이 있다. 그 사람이 뭘 좋아했는지 모른다는 건 오직 사랑을 받기만 했다는 뜻이다.”(본문 중에서)

‘된장녀’나 ‘김치녀’에는 여성의 취향을 함부로 규정하고 비하하려는 뜻이 담겨 있다는 점, ‘바나나’나 ‘소시지’는 남성에 대한 대상화가 아닌, 이를 먹는 여성에 대한 대상화라는 사실도 지적한다.

특히 성 매수를 뜻하는 ‘2차’라는 표현을 여성을 먹거리로 여기는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여성을 식용과 관상용의 존재가 아닌, 시선이 있는 생명체로 봐야 한다는 주문도 잊지 않는다.

저자는 함께 밥 먹는 행위가 다른 생명을 나눠 먹으며 서로가 연결되는 시간이라고 말한다. 식탁에서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환대받아야 하는 이유다. 영화 ‘문라이트’에서 두 인물이 식탁에서 오랫동안 감춰 둔 속마음을 꺼내며 돌봄과 위로, 사과를 전했듯, 누군가를 익숙하게 차별했던 식탁과 과감히 작별하라는 것이다.

“아마도 날마다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는 사람들로 세계는 흔들리고 있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마음속에 흐르는 강이 있고 엎어져 울고 싶은 벌판이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 홀로 흐느끼는 이들을 품어주는 따뜻한 밥, 살, 말.”(본문 중에서)

책은 미국의 독립선언문이 나왔던 필라델피아 선술집 식탁에서부터 대공황 당시 이민자의 식탁, 탈북민의 식탁, 인디언의 식탁에 이르기까지 시공간을 넘나드는 먹기 이야기로 가득하다. 우리가 쉽게 먹는 식탁에서 자신도 모르게 차별의 말과 행동 한번 하지 않았는지 곱씹어볼 기회이기도 하다.

저자는 “익숙한 식탁과 결별하고 낯설어진 식탁 위에서 우리의 입은 배고픔만을 해결하는 ‘일차원의 입’에서 타자와 말을 나누고 사랑하는 ‘다차원의 입’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역설한다.

◇정치적인 식탁=이라영 지음. 동녘 펴냄. 256쪽/1만6000원.

김고금평 기자 dann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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