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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3 (수)

"진보, 20대와 신뢰 훼손···조국 구하느라 공정가치 놓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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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인 학자가 본 조국 사태가 남긴 것

①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

“사람은 구했지만 가치를 놓쳤다.”

진보적 정치학자 안병진(52)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전 미래문명원장)가 내놓은 ‘조국 사태’에 대한 평가다. 진보성향이 뚜렷한 미국 뉴스쿨 대학교에서 미국의 대통령제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안 교수는 그동안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범진보 진영의 이론적·현실적 자문에 응해왔다. 서강대 재학시절엔 ‘사노맹(남한 사회주의 노동자동맹)’ 계열의 학생조직인 ‘전국민주주의 학생연맹(전민학련·DSL)’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2년 6개월간 실형을 살기도 했다.

중앙일보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 [중앙포토]


안 교수는 “(조국 장관과는) 서로 존중해 온 사이라 조 장관의 행위에 대한 평가는 어렵다”며 조심스럽게 인터뷰에 응했다. 그는 인터뷰 내내 ‘가치’라는 단어를 여러 번 썼다. 다음은 문답.

Q : 조 장관 임명에 대한 소회는.

A : “아쉽다. 촛불은 우리 사회에 더 나은 민주주의 모델로 나아갈 수 있는 에너지를 제공했다. 리버럴리즘적 가치로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있느냐를 가르는 분기점에서 진영 논리에 따라 아쉬운 결정을 했다. 여권이 ‘과정으로서의 공정’이라는 가치를 너무 간과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

Q : 민주당은 상처는 많았지만 전투에서 승리했다는 분위기다.

A : “단기적 전투에서 ‘승리’라는 것과 중장기적 의미에서 승리는 다른 것이다. 중장기적으로 승리하려면 가치라는 측면에서 진전이 있어야 한다. 여권은 (조국이라는) 사람과 검찰개혁이라는 어젠더를 구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 과정에서 요구되는 가치를 허물었다. 손익 평가에서 회의적이다.”

Q : 물러나길 바랐나.

A : “(여권에서) 이번 사태 초기에 묻는 사람들에게는 이야기했다. 지명 철회나 자진 사퇴해야 한다고. 지식인으로서 할 일이 많은 분인데…. 불법은 없었다고 하더라도 불철저했던 부분들을 반성할 기회로 삼았다면 오히려 다른 기회가 찾아오지 않았을까. 문재인 대통령은 인티그리티(integrity:청렴함, 윤리적 순수성 등을 의미)의 수준이 높은 사람이다. 임명을 포기하고 새롭고 참신한 후보자를 내세우며 감동적인 연설을 했더라면 어떨까 생각했다. 아쉽다.”

Q : 밀리면 죽는다는 진영논리가 지배했다.

A : “진영이란 것이, 진영을 보호한다는 것이 뭘까. 진영이 추구하는 가치와 어젠다를 보호해야 하는 것 아닌가. 존 매케인(죽기 직전까지 오바마 케어 폐지에 반대하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포퓰리즘에 반대했던 미국 공화당 정치인)이 떠오른다. 매케인이야말로 공화당의 가치를 지킨 사람 아닌가.”

Q : 어떤 일이 벌어질까.

A : “리스크들이 많다. ‘공정’이라는 진보의 대표적 브랜드 가치가 훼손된 것의 영향이 어디까지 미칠지 알 수 없다. 그동안 모든 진보 운동은 20대 청년들과 호흡하며 진행돼 왔는데 이들과의 ‘관계적 신뢰’가 훼손된 것은 다음 총선에서도 치명적일 수 있다. 검찰과 싸우는 과정에서 어떤 예측하지 못한 변수들이 튀어나올지 알 수 없다. 결국 경제·사회·외교적 어젠더들의 추진력도 이런 리스크들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Q : 민주당은 집토끼를 지켰으니 20대 지지는 회복가능하다고 믿는다.

A : “미국과 달리 한국의 20대가 인구학적으로 비중이 낮은 게 사실이라는 측면에서 민주당의 낙관에도 일말의 진실은 있다. 20대들은 그동안 30~40대 여론 주도층과 동조하는 경향을 보였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역으로 20대와의 갈등이 다른 세대에 일정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특히 수도권 중산층이 가장 예민하게 느끼는 ‘입시’라는 한국 사회의 역린을 건드렸다는 것도 민주당에겐 불안 요인이다. 총선까지 남북관계 등에서 다른 스펙터클이 벌어질 수도 있겠지만 여론에 미치는 효과는 예전처럼 크지 않을 것이다.”

Q : 586들에게 불만을 지닌 30~40대가 왜 ‘조국 찬성’ 여론을 견인한다고 보나.

A : “지금의 30~40대는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무관심한 사이에 민주주의가 얼마나 심각하게 후퇴할 수 있는지를 뼈저리게 깨달았다. 민주주의와 인티그리티가 다시는 후퇴하지 않는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열망으로 여권을 지지해 온 것이다. 자유한국당으로 갈 수는 없으니까.”

Q : 검찰개혁·입시제도 개혁 등이 속도전 양상을 보인다. 성공할 수 있다고 보나.

A : “교육 개혁에 답이 있나. 교육 개혁은 물론 검찰 개혁도 마찬가지로 정부에 위원회 같은 것을 만들어 초당적 어젠다로써 국민적 합의를 도출해 가는 과정을 밟았으면 한다. 정치권이 촛불혁명을 통해서 확인된 더 나은 사회를 원하는 에너지를 제대로 받아 안지 못하고 무한 대립의 길을 계속 간다면 어쩌다 일부 제도적 개혁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한순간에 녹아내릴 수 있다.”

안 교수는 ‘공감 능력의 부족’이라는 금태섭 민주당 의원에 지적에 공감했다. 안 교수는 “공감 능력은 그동안 진보 진영의 가장 큰 역량이자 자산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선출된 것도 그가 노무현 정부 때부터 보여줬던 공감 능력 때문이었다. 공감 능력의 부재를 드러냈다는 것은 진보 진영엔 아픈 결과”라고 말했다.

임장혁 기자 im.janghy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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