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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1 (토)

‘학원 일요휴무제’ 논의…추석 연휴 학원가 달라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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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서울 강남 대치동 학원가에서는 추석연휴 기간 국영수 총정리, 논술시험 대비 등 다양한 특강을 개설한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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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에 있는 일반고 3학년 이모(18)군은 고교생이 된 후 명절 연휴에 서울을 떠나본 기억이 없다. 연휴마다 대치동 학원가에서 개설하는 단기특강을 수강했기 때문이다.

12일부터 나흘간 이어지는 올해 추석 연휴에도 이군은 대치동 학원가에서 명절을 맞고 있다. 올해는 A논술학원에서 이뤄지는 수리논술 대비 특강을 듣고 있다. 이달 초 대입 수시모집에서 대학 5곳에 원서를 냈는데, 그중 한 곳의 논술시험이 연휴 3주 후에 치러진다.

이군은 “논술대비가 아니었어도 수능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라 연휴 때 마음 편히 쉴 수는 없는 상황”이라며 “오히려 학교에 안 가고 오롯이 논술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어 연휴가 고맙게 느껴질 정도”라고 말했다.

이군 뿐 아니라 추석 연휴를 이용해 그동안 부족하다고 여기는 과목 공부를 보충하는 기회로 삼는 학생이 많다. 확인 결과 대치동 학원 10곳 중 9곳은 연휴 기간에 고교생을 대상으로 국·영·수 등 주요과목 총정리나 논술대비 수업을 개설하고 있었다.

서울 강남 대치동의 한 종합학원 원장은 “매년 추석 연휴는 중간고사와 수능을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라 학원을 찾는 학생이 평소보다 많은 편이다. 학부모도 한 달 전부터 ‘무슨 특강 개설하느냐’고 문의한다”고 전했다.

이처럼 일요일은 물론 명절 연휴에도 학원을 찾는 학생들의 모습은 한국에선 익숙한 풍경이다. 서울시교육청이 일요일에 학원 운영을 금지하는 ‘학원 일요휴무제’를 추진하는 것도 이 같은 학생의 과잉학습을 막자는 취지다.

현재 시교육청은 학생·학부모·교사·시민 등 200명의 의견을 수렴한 후 올해 안에 학원 일요휴무제 시행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만약 학원 일요휴무제가 도입되면 앞으로 명절 연휴에 학원에 가는 학생들의 모습도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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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이 쉼없이 이어지는 학습 부담을 상징하는 쳇바퀴를 걷고 있다. '학원 휴일휴무제'의 도입을 주장하는 시민단체들이 마련한 퍼포먼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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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학원 일요휴무제에 대한 찬반대립이 거세 쉽게 결론을 낼 수 있을지 미지수다. 교원·시민단체에서도 제도 도입 효과를 두고 의견이 엇갈린다. 학생의 휴식을 위해 일요일에는 학원 운영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과 학생의 학습권과 학원의 영업권을 침해해선 안 된다는 의견이 맞선다.

학원 일요휴무제에 반대하는 단체들은 휴일에 학원을 강제로 쉬게 하면 개인과외 등 음성적인 사교육이 늘어나고, 불평등이 심화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김동석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정책본부장은 “일요일에 학원이 안 한다고 집에서 아이들을 놀게 할 학부모가 몇 명이냐 있겠냐”며 “입시경쟁과 공교육 황폐화 등 학생들이 사교육을 찾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어떤 제도를 마련해도 부작용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종배 공정사회를위한국민모임 대표도 “전두환 정권에서 과외를 금지했을 때도 일부 부유층에서 비밀과외가 성행했듯 학원 일요휴무제 시행이 과외비가 부담스러운 중산층 이하 학생들의 학습보완 기회를 뺏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학원 휴무제 도입을 지지하는 단체들은 “학생도 일요일에 쉬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를 끌어내는 게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김진우 쉼이있는교육시민포럼 상임위원장은 “직장인도 주5일 근무하는 상황에서 왜 학생들은 주말도 없이 공부에 매달려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며 “일요일에라도 학원 운영을 못 하게 하면 학생·학부모 사이에서도 ‘휴일은 쉬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이어 “학원의 일요일 운영을 강제로 제한하면 과외가 늘어나는 등 부작용이 있겠지만, 일부 극성 학부모의 문제일 뿐 일요일에 학원에 가는 학생들의 절대적인 수는 줄어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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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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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학부모의 의견도 갈린다. 서울의 한 일반고 1학년 자녀를 둔 정모(50·서울 영등포구)씨는 “휴일에 공부하겠다는 학생의 의지를 정부에서 막겠다는 발상 자체가 코미디”라며 “아이가 평일에는 수행평가 등 학교과제 때문에 시간이 부족해 주말에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는데, 학원이 운영을 안 하면 과외를 시켜야 한다. 결국 사교육비만 증가하게 될 것”이라고 답답해했다.

반면 중3 자녀를 둔 박모(44·서울 은평구)씨는 “평일은 물론 주말까지 학교·학원 다니느라 지쳐있는 아이를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만, 다른 애들이 다 학원에 다닌다고 생각하면 쉽게 끊어낼 수가 없는 게 현실”이라며 “모든 학원이 일요일에 운영을 안 하면 이런 불안감도 줄어들 것 같다”고 털어놨다.

전민희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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