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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1 (토)

"아시안 인성 수준 낮아" 하버드대 차별 논란, 美 대선 이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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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SAT·내신 점수로도 합격률 낮아

"인성 평가 빌미로 조직적 차별" 비판

하버드 "불완전한 통계…사실과 달라"

소수 인종 우대' 철폐하겠다 움직임도

미국에서는 5년간 끝나지 않은 매머드급 입시 소송이 있습니다. 바로 ‘하버드대학 VS 동양인’ 소송인데요. 2014년 시작된 이 소송의 요지는 하버드대 입학처가 아시안 학생 지원자를 차별했는지를 가려내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쟁점이 바로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이라고 불리는 미국 대학의 소수자 우대 정책인데요. 입시 과정에서 객관화된 시험 점수만 아니라 인종, 가정환경, 소득 수준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해 소수자를 우대하는 것이죠. 그중에서도 미 법무부가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밝힌 인종에 따른 어퍼머티브 액션은 2020 미 대선의 핵심 쟁점으로 부상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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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16일 메사추세츠 법원 앞에서 아시안 학부모들이 하버드의 입학 제도를 비판하는 내용의 피켓을 들고 항의하는 모습. [신화통신=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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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 정책 때문에 SAT(미국 수능) 점수가 다소 낮은 흑인과 히스패닉 지원자들이 ‘인종 버프’를 받아 명문대 합격권에 든다는 게 아시안 학생들의 주장입니다. 반면 “인위적” 인종 쿼터 정책은 SAT나 내신 점수가 뛰어난 아시안 학생에게는 오히려 역차별이라는 겁니다.

실제로 미국 유명 명문대 중 소수 인종 우대정책을 도입하지 않은 캘리포니아공과대의 아시안 입학생 비율은 40%에 달합니다. 하버드의 아시안 입학생 비율이 10년 동안 큰 등락 없이 20%대를 유지해온 것과는 딴판이죠.

이같은 논리를 바탕으로 미국의 민간단체인 ‘공정한 입시를 위한 학생 연합(Students For Fair Admission·SSFA)’이 하버드 대학을 상대로 2014년 매사추세츠 법원에 소송을 걸었습니다. 이들은 2000년 이후 하버드대 입시 전형에서 탈락한 아시안 지원자 16만명의 데이터를 분석해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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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 학생들의 역차별 문제를 제기해 하버드대를 상대로 소송을 건 SFFA의 운동가 에드워드 블럼.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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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분석한 이코노미스트 보도에 따르면 최상위권 아시안 학생이 하버드에 입학할 확률은 13%로 인종 중 가장 낮지만, 같은 점수의 흑인 학생이 하버드에 입학할 확률은 60%에 육박했습니다. 최상위권 백인 학생의 합격률은 18%였죠. 결국 똑같이 높은 점수를 가졌더라도 아시안이란 이유만으로 문이 좁아진다는 겁니다.

SFFA를 이끌고 있는 에드워드 블룸은 “하버드대가 조직적으로 아시안 학생에게 높은 잣대를 요구하면서 상대적으로 백인과 히스패닉, 흑인에게는 낮은 잣대를 들이댔다”며 “하버드는 아시안 학생 수를 제한하기 위한 쿼터를 갖고 있다”고 주장했죠.

그러면서 하버드가 학업·과외활동 등 다양한 평가 항목 가운데 유독 주관적 평가가 개입될 가능성이 높은 '인성(personality)' 부분에서 아시아인에게 낮은 점수를 줬다고 지적했습니다. 호감도, 용기, 친절함과 같은 모호한 지표에서 아시안 학생에게 낮은 점수를 줌으로써 쿼터를 통제했다는 겁니다.

여기에 법무부까지 하버드를 비난하고 나서며 사안은 좀 더 복잡해졌습니다. 지난해 미국 법무부는 “소송에서 제시된 증거를 볼 때 하버드 대학이 다른 인종과 비교해 아시아계 학생들에게 불이익을 줬다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밝혀 공개적으로 하버드를 저격했는데요. 사실상 법무부가 사립 대학을 상대로 소수 인종 우대 정책을 폐지하라는 압박을 가한 겁니다.

반면 하버드대는 입학 사정은 대학의 고유 권한이며 오로지 정량 점수로만 지원자들을 줄 세워 선발하는 것은 학교가 원하는 교육 방향이 아니라고 반발했습니다. 또 하버드가 시험 점수가 높은 아시안 지원자에게 낮은 인성 점수를 매겨 의도적으로 탈락시켰다는 SFFA의 주장에 대해 "부분적 자료만을 가지고 실시한 불완전하고 틀린 데이터 분석"이라고 반박했죠.

이 소송은 올해 상반기 선고가 내려질 것으로 점쳐졌습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장고를 거듭했고 작년 10월 진행된 마지막 변론 후 1년이 되도록 선고가 내려지지 않고 있죠. 하버드 대학 교내 신문인 ‘하버드 크림슨’은 인종 차별, 대학 입시, 소수자 정책 등 온갖 복잡한 현안을 내포한 이 상징적인 소송에 대해 “어떤 결과가 나오든 틀림없이 대법원에 상고될 것이기 때문에 재판관에게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두고두고 회고될 것에 대비해 빈틈없는 판결문을 만들기 위해 고심 중일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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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메사추세츠 법원 앞에 세워진 하버드 대학의 입학 정책을 비판하는 내용의 피켓들. [신화통신=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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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 공화당이 이번 선거에서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할 것으로 예측되는 아시안 유권자들의 표심을 공략하기 위해 어퍼머티브 액션을 폐지하자는 입장을 적극 홍보하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습니다. 하버드 VS 아시안 소송의 선고가 2020년 미 대선의 향배를 좌우할 승부처 중 하나가 될 수도 있다는 겁니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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