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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1 (월)

‘페미니스트’ 한마디에 이용 정지…‘단어’로 들여다본 성차별적 게임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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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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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5일 ㄱ씨(28)는 한 온라인 게임에서 운영자로부터 30일 동안 게임 이용을 정지당했다. 게임 내 파티(퀘스트를 깨는 등 일시적으로 같이 게임을 하는 모임) 모집글에 ‘페미니스트’란 단어를 사용했다는 이유였다. ‘욕설 및 비방’은 보통 3일 이용정지를 받는 사유다. 무거운 조치에 ㄱ씨가 황당해하며 운영자 측에 정지 이유를 묻자 운영자는 “당시 사용하신 단어 ‘페미니스트’의 경우, 페미니즘을 따르거나 주장하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확인된다”며 “이는 사회적 갈등 이슈에 동조 및 조장하는 행위로 확인되어 제재를 진행했다”고 답했다.

온라인 게임 환경이 여전히 남성 이용자들 중심으로 짜여져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게임 운영자의 운영방식, 금지어 등을 두고 늘어나는 여성 유저와 남성 이용자 사이에 논쟁도 벌어진다.

ㄱ씨에 따르면 2017년쯤부터 여성 이용자와 남성 이용자들이 페미니즘 등의 이슈로 충돌하는 일이 늘었다. 지난 8월 해당 게임의 운영진 중 한 사람이 여성혐오적 발언을 한 남성 이용자 편을 들고 개인정보를 유출·유용해 대기발령 조치를 받고 퇴사한 일도 있었다. 이후 해당 게임에선 ‘메갈리아’라는 단어도 쓰기만 하면 무조건 게임 이용을 정지시켰다. 게임의 또 다른 이용자는 “비방 의사 없이 게임 내 갈등을 중재하기 위해 ‘메갈’이란 단어를 사용했다가 30일 정지 조치를 받은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최근 또 다른 모바일 게임에서도 비슷한 논란이 이어졌다. 게임 캐릭터 소개 문구를 두고 여성·남성 이용자들 사이 분란이 생겼다. ‘내 가슴 그만 쳐다보고’라는 원문이 ‘내 얼굴만 보지 말고 일하러 가자’로 번역됐다. 남성 이용자들은 이를 두고 “(운영자가) 페미니즘에 굴복했다”며 비난에 나섰다. 운영자 측은 ‘얼굴’을 ‘가슴’으로 고쳐서 내보냈다. 이후 여성 이용자들은 여성을 대상화하는 번역에 동의할 수 없다며 운영사, 게임물 관리 위원회 등에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한 유명 온라인게임 채팅창에선 ‘엄마’가 금지어로 분류된다. 해당 게임은 채팅창에서 욕설·비방하는 단어를 금지어로 설정한다. 그만큼 ‘엄마’라는 단어를 욕으로 사용하는 사용자들이 많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또 다른 게임에선 일반적으로 여성의 이름인 ‘혜지’라는 단어가 인기를 끌기도 했다. 이 단어는 ‘다른 사람의 실력에 편승해 승점을 얻어가는 여성 이용자’를 뜻하는 은어다. 주로 여성 이용자를 희롱하거나 폄하하는 용도로 사용된다.

여성 이용자들은 여전히 온라인 게임의 환경이 성차별적이라고 지적한다. ㄱ씨는 “(이용 정지 조치를 내린 온라인 게임은) 그나마 여성 이용자가 많은 편이라 남성 이용자들과 충돌한 만한 위치로 올라선 것”이라며 “대부분의 온라인 게임에선 여전히 여성 이용자에 대한 모욕과 공격이 ‘사이버불링’ 수준으로 이뤄지곤 한다”고 했다. ㄱ씨는 이어 “게임 내에서 특정 성별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지 않다. 한 사람으로서 기본적인 인권을 보장받고 싶다”고 말했다.

김희진 기자 h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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