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9.21 (토)

A급 회사원도 C급 창업가가 될 수밖에 없다, 그 이유는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더,오래] 이태호의 직장 우물 벗어나기(1)



직장을 그만두고 당구장브랜드 '작당'을 론칭, 전국에 매장 30여개를 연 청년사업가. 주요 고객인 시니어 창업자들과 작업하며 느꼈던 다양한 상황을 풀어낸다. <편집자>
중앙일보

추운 겨울날, 뜨뜻한 물에서 뛰쳐나오긴 쉽지 않다. 직장인들이 회사를 박차고 나오기 힘든 것처럼. 하지만 우리는 모두 언젠가 물 밖으로 나오게 된다. [사진 pxhere]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모든 이들은 항상 뜨듯한 물에 몸을 담그고 있고 싶다. 욕조 밖은 확실히 차디찬 겨울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직장에서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텨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밖은 겨울인데, 지금 뜨듯한 물에 몸을 담그고 있으면서, 따뜻하다고 착각한 적도 많았다. 그 물은 바깥 차디찬 공기로 인해 곧 식을 것이고, 그때 물 밖으로 나오면 이미 늦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언젠가는 물 밖으로 나오게 된다.

사실 이걸 너무 잘 알면서도 지금의 뜨뜻함에서 뛰쳐나오기란 쉽지 않다. 필자인 나 역시도 그렇게 5년이 걸렸다. 적지 않은 연봉에, 나쁘지 않은 직장 내의 위치, 공동목표를 위해 일사천리 하게 함께 움직여주는 팀원 동료들. 겉 멋들지 않고 헛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궁둥이만 잘 붙이고 있다면 중산층 샐러리맨은 보장되어있었던 삶 같아 보였다.

하지만 앞으로는 살아남으려면, 나 자신이 플랫폼이 되거나 아님 나 자신이 명품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누가 만들어 놓은 플랫폼의 구성품이 되거나, 명품을 따라 한 짝퉁이 될 구조다. 성공할 수 있다는 뚜렷한 확신이 있었던 것도 아닌 채, 어디에 홀린 듯 회사를 박차고 나와 버렸다. 내가 다니던 회사의 정년이 60세였으니, 무려 30년 일찍 일을 저지르고 만 것이다.

중앙일보

사무실 에어컨 밑자락에서 우아하게 기획서 만드는 게 전부인 줄 알았다. 다들 일을 잘한다고 A급 인재라고 했다. 회사 밖을 나와 보니 대단한 착각이었다. [사진 pxhere]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회사를 나오면 많은 이들이 깨닫는다. 필자인 나야 젊은 나이에 이걸 깨닫게 되었지만, 임원으로 퇴직하는 많은 이들은 너무나도 늦게 깨닫게 되는 것이다. 임원일 때는 모든 거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에 가득 차 있다. 하지만 그건 욕조 안에 있었을 때의 이야기이다.

회사 울타리를 나오면 직접 고기가 몰려있는 곳을 찾는 것부터 잡는 것까지 모든 것이 다 각개전투이다. 주변에 나를 대신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우리는, 이내 곧 고기를 잡는 법을 배워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 난감한 상황이다.

이제껏 정장 입고 사무실에서 우아하게 에어컨 밑자락에서 기획서 만드는 게 전부인 줄 알았다. 내가 작성한 기획서가 상사들의 태클 없이 통과되면 큰 미션을 달성한 것처럼 자기 만족감에 휩싸이기도 했었다. 사실 이런 것들이 직장인들의 소소한 행복이기도 했다. 그리고 기획서가 잘 나오면 일 잘하는 직장인이었다. 다들 일을 잘한다고 A급 인재라고 했다.

하지만 회사 밖을 나와 보니 대단한 착각이었다. 시장성이 커 보이는 고기가 많은 곳으로는 어찌어찌해서 온 것 같은데, 정작 고기 잡는 방법을 배워본 적이 없으니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고기 잡는 장비부터 사야 할까, 아니면 고기 잘 잡는 명인에게 찾아가 방법을 습득해 와야 하나.

내가 직장생활 경력이 미천해서 그런 걸까,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직장에선 일 잘하는 A급 직장인이었는데 왜 이렇게 당황할까 이유를 찾아보니, 이제껏 몸 담그고 있던 회사에서는 누가 고기가 많다는 곳을 알려주면 그곳에 가서 고기를 가장 잘 잡을만한 업체에 위탁하면 끝이었다. 대가로는 내 주머니가 아닌 회사비용으로 지불한다. 그러면서 업체들에 온갖 생색은 다 내면서 말이다.

너무나도 간단하고 쉬웠다. 거기다가 가장 최저의 비용으로 열심히 해줄 업체 혹은 담당자만 선정하고 그곳이 나의 신뢰를 무너뜨리지 않고 잘하나 감시만 하면 되는 거였다. 흔한 말로 엄청난 명함의 빽이었던 것 같다. 일을 잘 못 해도 어쩔 땐 일을 잘해 보이기도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도 연출이 된다.

중앙일보

창업을 하려고 보니 회사 안에서 일 좀 한다고 으쓱대던 게 부끄러워진다. 시행착오를 거치며 고기를 잡는 방법을 몸소 배워나가는 수밖에 없다. [사진 pixabay]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제 회사를 나오면 그 어떤 엄청난 명함의 빽과 아이러니함은 없다. 100%로 실력제다. 운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그제야 우리는 그동안 정말 뜨듯한 곳에 있었구나, 과거를 회상하며 과거가 그리워진다. 그리고 그 안에서 일 좀 한다고 으쓱대던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어쩌냐. 이젠 그곳을 박차고 나온걸. A급 인재 같았지만, 욕조 밖으로 나와 보니 C급이 되었다. 이젠 스스로가 시행착오를 거치며 고기를 잘 잡는 방법을 몸소 체험, 자신 스스로가 차디찬 겨울 세상 속에서 뜨뜻해질 A급 인재가 되어가는 수밖에 없다.

명함의 힘이 아닌. 온전히 내 힘으로. 그리고 우린 뜨듯한 회사라는 욕조 안에 있을 때 바깥세상을 늘 대비해야 한다.

이태호 올댓메이커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중앙일보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이슈를 쉽게 정리해주는 '썰리'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