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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1 (토)

[ESC] 한가위 연휴 심심해! 한잔 술 여기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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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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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있는 ‘로바다야키 길손’은 참 이상한 곳이다. 호화스러운 강남의 이미지와는 달리 들머리부터 허름하고 낡았다. 실내로 들어서면 더 당황스럽다. 테이블은 겨우 세 개 남짓. 그나마도 바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모양새다. 다른 이의 대화가 자세히 들릴 정도다. 예약도 힘든 곳이다. 그런데도 이상하다. 저녁 6시 전에 가게는 이미 만석이다. 부지런히 모인 술꾼들을 볼 때마다 묘한 경외감이 든다.

이런 곳에 자리 잡고 앉았으니 한바탕 음주를 시작할 때가 되었다. 메뉴판도 따로 없고, 가격도 적혀 있지 않은 불친절함도 반갑다. ‘요즘 같은 시국에 웬 일본식 꼬치구이냐’고 타박하던 친구도 안주를 받아들고서는 마음이 달라진 낌새였다. 매콤한 간장을 얹은 따뜻한 연두부와 아삭하고 새콤한 양배추 샐러드는 집에서 엄마가 차려준 밥상을 받은 듯 정겨웠다. 이곳을 처음 방문하는 이라면 눈앞에서 직접 숯불에 구워 주는 꼬치구이를 주문하겠지만, 나는 프로 술꾼이다.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술 마시기 좋은 안주를 고르는 것이 중요하다. 조리대 앞 탁자에 당일 가장 신선한 식재료를 얹어 놓은 것은 길손만의 매력이다. 그날은 가지가 올라와 있었다.

싱싱한 가지를 숯불 위에 구우면 정말 맛있다. 가지구이와 주먹밥, 뜨끈하고 얼큰한 알탕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길손 칵테일’로 목을 축였다. 소주와 레몬즙, 소다수만을 섞은 칵테일이 얼마나 시원한지 마셔봐야 안다. 이윽고 나온 가지구이는 친구의 찬사를 받을 만했다. 통통한 가지를 두껍게 썰어 칼집을 낸 후 구웠다. 함께 나오는 꽈리고추구이도 사랑스럽다. 고기에만 육즙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 가지구이를 통해 알았다. 이어 나온 주먹밥도 그 모양새가 예사롭지 않았다. 다소 투박한 모양새가 정겹다. 숯불에서 구워 김이 모락모락 나는 주먹밥에 오징어 젓갈을 얹어 먹으면 밥이야말로 최고의 안주라는 진리를 깨닫게 된다.

명절이면 더 생각나는 술집이 있다. 늘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낡은 술집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된다. 명절 스트레스를 벗어 던지고 나만의 아늑한 술집으로 숨어들 때야말로 술 마시기에 가장 좋은 시간이다. ‘로바다야키 길손’은 한가위 당일만 문을 닫는다.

백문영(라이프 스타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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