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선후배가 모여 결성된 스튜디오
2D에 국한되지 않은 다양한 형태의 그래픽 디자인
내재되어 있던 소녀감성이 독보적인 컬러감으로
흐르는 강물처럼 롱런하는 디자이너 꿈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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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의 중심부, 눈에 띄는 어느 건물 안에서 근무하는 디자이너는 문득 바깥세상에서 일하고 있는 다른 디자이너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궁금해졌습니다. 각자의 장소와 공간에서 특별한 지금을 보내고 있을 그들과 만나 또 다른 미지의 장소와 공간을 탐험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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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학부를 졸업할 즈음 ‘오픈플랏’이라는 프로젝트로 눈길을 끌었던 스튜디오가 있었습니다. 이웃 학교 학생들이 스튜디오를 오픈 했다며 디자인 굿즈로 프로모션한다는 소식이 뜨거웠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그룹이 현재는 디자이너로서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무척 궁금했습니다. 서울 마포구 용강동에 위치한 두 번째 인터뷰의 주인공. ‘보이어’는 이화영 디자이너와 황상준 디자이너가 운영하는 2인 그래픽디자인 스튜디오입니다. 현재 브랜딩, 매거진, 전시 등의 폭넓은 디자인 분야에서 독보적인 컬러감과 그래픽으로 주목 받고 있습니다. 용강동 스튜디오에서 이화영 디자이너를 만나 대화를 나눠보았습니다.
◇작업실 이야기 - 색깔이 확실한 용강동의 ‘보이어’
Q. ‘보이어’의 시작이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A. 처음에 스튜디오 ‘플랏’이라는 이름으로 넷이서 같이 시작했어요. 대학교 선후배 관계로 선배였던 저와 황상준(남편) 조형석, 임은지 디자이너가 구성원이었죠. 그러다가 2014년~2016년 정도에 서로 각자 갈 길을 가기로 했습니다. 현실적인 부분과 각자의 진로에 대한 다른 생각들 등등 여러 가지 이유가 원인이 되었죠. 각자의 미래를 응원하며 저는 황상준 디자이너와 둘이 디자인 스튜디오를 따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플랏’이 시작된 계기는 특별한 건 없었어요. 제가 학교 선배 스튜디오인 ‘fnt’에서 인턴으로 활동한 경험이 있어요. 그 계기로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디자이너가 어떤 방식의 삶을 살 수 있고, 또 어떻게 디자인 작업을 이어가는지 배울 수 있었습니다. 저는 대학원생이었고 다들 졸업생 신분으로 사회에 진출하려던 시기에 같이 술을 마시다가 스튜디오를 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라는 얘기가 나왔죠. 그렇게 가벼운 출발이었지만 자연스레 여기 ‘보이어’까지 오게 되었네요.
Q. ‘보이어’라는 이름은 어떻게 지으신 건가요?
A. 다들 이 질문을 많이 하시는데, 크게 대단한 의미가 있었던 건 아니에요(웃음). 이름을 두 멤버가 다 맘에 드는 것으로 정하기가 무척 힘들었어요. 그래서 리스트를 각자 뽑고 서로가 괜찮다고 생각하는 이름을 고르게 되었습니다. ‘보이어’는 외국에서 성으로 쓰이는 이름이에요. 활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장인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서 의미도 괜찮고 유니크해서 선택하게 된 것 같아요. 매우 거창한 의미는 없습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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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보통 처음에 스튜디오를 시작할 때 학교 가까이에 얻는 경우가 많지 않나요? 대흥역에 작업실을 얻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A. 저희도 처음엔 학교 근처에서 시작했어요. 그런데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니까 학교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교 근처에 있다 보면 학교 일을 주로 많이 받게 되는데, 어느 정도는 조금 독립적인 작업을 하는 스튜디오가 되고 싶었죠. 결국 다른 장소를 찾기 시작했어요. 동종업계 사람들이 모여있거나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동네. 조용한 분위기 등등. 여러 가지 요소들을 고려해서 장소를 찾았습니다. 홍대나 성수동도 처음에 디자이너나 아티스트들이 몰리면서 비슷한 성격으로 형성된 지역이잖아요. 그런 지역적 특성을 가진 곳들이 디자이너와 결이 맞을 것 같았어요. 월세나 보증금 비용 역시 매우 중요한 부분이고요. 그래서 처음엔 망원동으로 터를 잡았었고, 후에 저희가 결혼을 하게 되면서 용강동으로 오게 되었어요. 신혼집을 고를 때 집과 스튜디오가 가까워야 적당히 업무를 그때그때 대응하기 쉬울 것으로 생각했죠. 망원동과 많이 멀지도 않고요.
Q. 작업하다가 집중이 안 될 때 대흥역 주변에서 에너지를 충전하는 방법이 있나요?
A. 주로 집중이 되지 않을 때 집에 가곤 해요. 집에서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는 포인트가 있어요. 한강이 보이거든요! 저는 그 풍경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져요. 디자이너라는 직업의 장점이 노트북만 있으면 어디서든 작업할 수 있다는 건데요. 집중이 안 되면 주로 집으로 가서 차 한잔 하면서 한강 풍경과 함께 휴식을 취하는 것 같아요. 동네 주변이 그냥 평범한 주택가이다 보니 딱히 주의를 환기할만한 것이 없고 차라리 집에 가는 게 저만의 에너지를 충전하는 방법이랍니다.
Q. 4인에서 시작했는데, 현재 2인 스튜디오는 어떤 방식으로 운영이 되나요?
A. 4명의 디자이너가 각자 개성이 매우 강했어요. 그룹이다 보니 협업을 해서 작업하기도 하지만 의외로 개개인이 홀로 프로젝트를 하는 경우가 많았죠. 그래서 4인 스튜디오였지만 개개인의 작업들이 모여서 포트폴리오가 쌓였었습니다. 현재에도 비슷한 흐름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Q. 지역의 다른 디자이너 단체나 모임에서 활동하는 것이 있나요?
A. 어떤 모임을 만들어서 지속적인 친목을 다지거나 하는 게 있기는 하지만 많지 않습니다. 학연 지연을 통한 자연스러운 만남 역시 대외적으로 정해놓고 만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주로 전시 참여를 통해서 알게 된 관계들도 많아요. 앞서 첫 번째 인터뷰이었던 ‘페이퍼프레스’의 박신우 디자이너도 전시 참여를 통해 건너 건너 알게 되었어요. 필드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들끼리 인연이 닿을만한 루트가 존재하죠.
◇작업 이야기 -눈을 즐겁게 하는 다양한 형태의 그래픽
Q. 전시 혹은 외주 작업을 제안 받은 경로는 어떻게 되나요?
A. ‘플랏’ 때부터 거슬러 올라가자면, 학교 근처에서 시작된 스튜디오이다 보니 저희가 처음에 스튜디오를 오픈했을 때 학교 교수님들이나 선배 디자이너들이 주로 알고 계셨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학교 일로 디자인 작업을 처음 시작하게 됐고요. 그러다가 더 다양한 일을 받아보고 싶어서 프로모션 목적으로 성냥개비나 굿즈를 만들어서 주변에 홍보했던 것 같아요. 셀프 프로모션을 통해 대림 구슬모아 당구장에서 의뢰를 받기도 했습니다.
Q. 프린트물 디자인 외에도 스티커나 제품디자인이 눈에 띄는데 클라이언트에게 제안해서 파생된 작업인가요 아니면 클라이언트가 요구한 작업인가요?
A. 예를 들어 한글박물관 키트처럼 의뢰받아서 만든 경우도 있지만, 2D에 국한된 디자인에서 탈피해서 이것저것 다양한 굿즈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항상 있었던 것 같아요. 스튜디오 ‘플랏’ 시절 ‘Open plat’ 프로젝트로 프로모션 굿즈 코스타와 엽서 성냥 등을 만들었던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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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상업적인 느낌이 드는 작업물이 별로 없는 편인데 이유가 뭘까요?
A. 의외의 질문이네요. 저는 개인적으로 다른 스튜디오에 비해서 꽤 상업적인 일을 많이 받아서 작업해왔다고 생각했는데요. 대중들을 대상으로 하는 비즈니스에 봉사하는 작업을 많이 진행해 왔습니다. 매거진도 사실은 독립적이고 소규모의 잡지보단 대중적인 잡지라 여겼고요. 예술 분야의 클라이언트로부터 작업 의뢰를 받은 경우가 많아서 그렇게 보일 수도 있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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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작업 중에 ‘서울 내일 만나요 평양’이 인상적이었는데요. 개인적으로는 ‘보이어’의 다른 작업들과 조금은 다른 느낌을 받았습니다. 작업 과정을 들어볼 수 있을까요?
A. 전시 아이덴티티를 만드는 것이 저희의 임무였는데 전시를 디렉팅을 해주시는 선생님들과 모여서 진행을 했습니다. 작업하는데 정해진 규칙이 많았어요. ‘빨간색과 파란색만 사용할 것’이 규칙이었죠. 전시 명 ‘서울 하트 하트 평양’을 전면적으로 보여주면서 전시 컨셉인 SF적 느낌을 살리는 것이 과제였습니다. 사용된 서체도 북한 서체였고요. ‘서울과 평양이 아주 가깝게 연결되는 고속열차가 있으면 어떻게 될까’ 라는 상상을 하며 작업을 진행했어요. 비주얼 적으로는 밝고 희망차지만 또 반대로 마냥 밝은 기운만을 뿜어내진 않는 묘한 분위기를 의도했죠. 이 작업과 전시에 관해서도 비하인드 스토리가 많아요. 아무래도 정치적인 성격을 가진 작업이다 보니 보는 사람 관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나와서 흥미로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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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컬러에서 ‘보이어’의 개성이 가장 잘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색감이 무척 좋고 독보적인데 비결이 있나요?
A. 비슷한 이야기를 굉장히 많이 들어왔어요. 저희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부분이 컬러라고 하시더라고요. 특정하게 의도해서 작업한 것은 아니지만 컬러 팔레트를 만들어놓고 쓰느냐는 등의 다양한 질문들이 들어왔었어요. 컬러감이라는 것은 머리를 써서라기보단 본능적으로 많이 선택하게 되는 것 같은데, 그런 감각이나 본능이 갑자기 생긴 것은 아닌 것 같고요. 어렸을 때부터 보고 자란 대중매체에 대한 감성들이 쌓여서 형성된 부분이 아닐까 싶어요. 제가 선호하는 컬러를 보면 흔히 말하는 ‘예쁘다’라는 말로 통칭 될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에요. 부드럽고 좀 더 화사하거나 밝거나 비슷한 류의 컬러들이죠. 그 부분에서 제가 선호하는 지향점이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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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그렇다면 학부 때 작업도 비슷한 양상을 보였나요?
A. 네. 아무래도 제가 어렸을 때 좋아했던 ‘세일러문’ 같은 소녀 변신물 애니메이션 장르의 영향을 받아온 것 같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그 당시에 특히 소녀 변신물 애니메이션이 TV에서 방영이 많이 되었었어요. 주인공들이 변신할 때 나오는 아우라의 이미지나 컬러감, 그래픽 등이 굉장히 저한테는 시각적으로 인상 깊었고 마음속 한구석에 계속 자리 잡아 왔었죠. 또 커서는 걸그룹의 무대 이미지에 노출이 많이 되어 왔고요. 이러한 영향으로 자리 잡은 제 안의 ‘소녀성’이라는 아이덴티티가 디자인 작업을 할 때 컬러감으로 표출이 되어오지 않았나 싶어요. 그래서 학부 때와 대학원 때 작업을 그런 스타일로 진행을 많이 했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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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만나 협업을 하는데 각자의 개성이 뚜렷할 것 같아요. 그런데 ‘보이어’의 작업을 보면 전반적으로 비슷한 아이덴티티가 느껴진달까요? 이유가 무얼까요?
A. 사실상 지금은 넷이 아니라 둘이 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 다른 개성이 충돌할 일이 예전보다는 덜한 것 같아요. 사실 저와 황상준 디자이너 각자 스타일이 매우 달라요. 제가 보기엔 저희 작업들 사이에도 완벽히 일관된 하나의 아이덴티티가 있다기보다는 서로 다른 두 사람의 개성이 드러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저는 이렇게 두 사람의 다른 아이덴티티가 모두 보이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해요. 딱히 어떤 정해진 스튜디오의 아이덴티티를 만들겠다는 생각은 별로 없었어요. 다만 최근에는 제가 작업하는 일이 조금 더 많아져 다소 일관되어 보이는 것 같아요.
◇앞으로의 이야기-흐르는 강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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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스튜디오가 롱런할 수 있는 노하우에 대해 질문하고 싶어요. 비결이 있나요?
A. 어렸을 적에는 ‘소처럼 일하면 될 것이다’라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앞만 바라보고 쉬지 않고 달려왔던 것 같아요. 하지만 최근에는 지치지 않고 오래 지속 가능한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어요. ‘워라밸’을 생각하기 시작했죠. 디자이너들은 보통 일과 삶이 분리가 잘 안되는데 요즘은 그걸 분리해보려고 해요. 아마 스트레스를 관리하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이지 않을까 싶은데요. 내 삶의 다른 영역을 만들어가려고 노력 중이에요. 취미를 새로 만들거나 일하는 시간을 정해놓고 그 외적으로는 일과 좀 떨어져 지내는 식으로요. 이렇게 지내다 보면 조금 더 일을 오래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Q. 스튜디오를 시작할 당시와 다르게 대중들에게 소비되는 주류 매체가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이러한 변화에 따른 고민이 있을까요?
A. 사실 저희가 ‘CA’같은 매거진 매체를 디자인하면서 떠오른 생각들이 있어요. 옛날에 비해 종이매체를 주목하는 사람이 줄어들고 있어서 이제 볼륨으로 승부를 보기엔 한계가 있을 것 같더라고요. 하지만 책이나 인쇄물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고, 누군가에겐 소장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감수성이 있는 매체잖아요. 그런 부분을 좀 더 자극할 수 있는 자기 자신만의 아이덴티티가 필요하다고 봐요. 컨텐츠를 개성 있고, 뾰족하고, 또 명확하게 가지고 가야 종이로 나오는 것이 의미가 있을 것이고요. 그런 흐름이 개성 있는 큐레이팅으로 승부를 보는 동네서점과 독립출판의 등장으로 보이고 있는 것 같아요. 인쇄 매체를 주로 다루는 디자이너들도 부피는 줄이고 개성을 명확히 챙긴 작업을 한다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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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서 고민하고 계신 것이 있다면요?
A. 늘 끊임없이 미래에 대해 고민을 하고 결론을 내리고 싶었으나 매우 힘들더라고요. 그런데 ‘생각을 굳이 꼭 해야 하나?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인데.’ 라는 생각이 들어요. 1년 단위로 새로운 일이 생겨날 것이고 그것조차도 생각한 대로 흘러가지 않을 수 있는데 말이죠. 어느 정도는 흐름에 맡겨서 적당히 나도 함께 흘러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구선아기자 schatzs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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