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악산 가을여정, 덕주공주 마의태자 전설 서린 길따라 급경사 철계단 끝나면 영봉
단풍이 물들기 시작한 월악산국립공원. 송계야영장에서 바라본 영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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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이어진 철계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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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다 끊어지고 다시 이어지는 악명높은 월악산 계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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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인 영봉에서 바라본 풍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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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용준 여행전문 기자] 악명 높은 급경사 계단을 오릅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계단은 산행객을 절로 머리를 숙이게 만듭니다. 전국에 '쉬운 산'은 없지만 힘들어도 너무 힘든 곳입니다. 이름부터 왠지 쉽지 않는 느낌의 '악(岳)'산입니다. 예로부터 치악산, 설악산과 함께 한국 3대 악산(岳山)으로 정평 나 있습니다. 바로 월악산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오르기 힘든 만큼 오르는 내내 산이 주는 아름다움과 성취는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힘든 길이 끝나면 해탈의 문이 열리듯 월악산 정상인 영봉(1097m)에 닿습니다. '달이 뜨면 영봉(靈峯)에 걸린다'는 말처럼 월악산 정상을 '영봉'이라 부릅니다. '신령스러운 봉우리', '신비로운 봉우리'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높이 150m, 둘레가 4㎞나 되는 거대한 영봉 암반에 걸린 달을 보면 그 이름이 자연스럽게 나왔을 법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백두산과 월악산 단 두 곳만이 갖고 있는 귀하고 영험한 이름입니다. 영봉에 서면 내륙의 바다로 불리는 충주호와 소백산, 주흘산, 치악산 등이 어우러져 웅장합니다. 맑은날에는 백두대간의 능선들도 손으로 잡힐 듯 지척입니다.
녹음이 짙게 드리웠던 여름은 어느새 저만치 물러갔다. 아침저녁으로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하다. 가을빛이 시작된 제천 월악산으로 간다. 1984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월악산은 북쪽으로 남한강을 끼고, 남쪽으로 험준한 백두대간을 둘렀다. 이러한 천혜의 지형 덕분에 예로부터 월악산에는 수많은 역사적 상흔과 전설이 굽이굽이 서려 있다.
흔히 월악산을 음기가 강한 산이라고 한다. 산 너머 충주호에서 올려다보면 긴 머리를 늘어뜨린 채 누워 있는 여성의 모습이고 제천 덕산 쪽에서 보면 영락없는 여인의 가슴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월악산 아래 덕주사에 세 개의 남근석을 세워 영봉의 음기를 제어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산행 코스는 크게 4개지만 가장 일반적인 건 덕주사 코스다. 덕주골, 덕주사 지나 송계삼거리를 거쳐 영봉에 오른다. 편도 5.6㎞로 4시간 정도 걸린다. 거리는 긴 편이지만 덕주산성, 덕주사마애여래입상(보물 제406호), 수경대, 학소대 등 비경들과 함께 할 수 있다.
이번 가을맞이 산행도 '덕주사 코스'를 따라 영봉에 오른 뒤 원점 회귀한다. 들머리는 덕주산성이다. 월악산 마애불 주변의 상(上)덕주사 외곽을 여러 겹 둘러쌓은 석축 산성이다. 고려 때는 항몽지, 임진왜란 때는 왜군을 막아낸 요충지 역할을 했다. 산성 옆은 기묘한 형태의 바위절벽 학소대다. 여기에서 25분 정도 오르면 덕주사다. 절집에서 영봉까지 거리는 4.9㎞. 빠른 걸음으로도 3시간이 넘게 걸린다.
덕주사에서 다리를 건너면 곧 완만한 경사의 산길이 나온다. 시작은 수월하다. 가볍게 몸을 풀듯 길을 걷는다. 이런 길이 마애불상까지 이어진다. 거리는 1.5㎞에 이를 만큼 길지만 40분 정도면 넉넉하게 닿는다.
숨이 차고 땀이 송골송골 맺힐 때 쯤 마애불이 나타난다. 잠시 쉬어가라는 월악산의 배려인 듯 반갑다. 마애불은 수직암벽에 새겨져 있다. 얼굴은 돋을새김하고 몸통은 선각으로 처리했다. 체형에 비해 다소 큰 머리와 서글서글한 이목구비가 인상적이다.
마애불엔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딸인 덕주공주가 오빠인 마의태자와 함께 망국의 한을 달랬던 전설이 깃들어 있다. 경순왕이 왕건에게 나라를 넘기자 마의태자 일행은 신라의 국권회복을 위해 금강산으로 가던 중 덕주공주가 월악산 자락에 덕주사를 창건하고 마애불도 세웠다. 그러자 마의태자도 덕주사가 잘 보이는 미륵리에 불상을 세워 북쪽의 덕주사를 바라보게 했다는 것이다. 마애불과 미륵불이 서로 마주 보고 있는 것에서 비롯된 전설이다. 하지만 마애불의 형태로 볼 때 덕주공주와는 상관없는 고려 때 불상으로 추정하고 있다.
마애불부터 전망대, 영봉에 이르기까지는 월악산을 악명 높게 만든 '계단'이 시작된다. 매우 가파른 돌계단, 나무계단, 철계단의 연속이다. 산객들을 지치게 하듯 끝없이 이어진다. 경사가 심한 경우 수직에 가까운 80도에 이르기도 한다. 이곳에서만큼은 '느림의 미학'을 몸소 체험할 수 있다.
전망대에 서면 눈앞에는 높이 150m나 되는 바윗덩어리인 '영봉'이 경이롭게 솟아 있고 그 뒤론 아스라이 충주호와 백두대간이 시원스럽게 펼쳐져 있다.
마지막 계단을 넘어서면 곧 송계삼거리다. 덕주사와 영봉의 중간 지점이다. 여기부터 비교적 완만한 능선길이 이어진다.
신륵사 삼거리에 이르면 영봉의 모습이 점점 또렷이 보이기 시작한다. 산길은 영봉 목덜미를 돌면서 오르내림을 반복한다. 워낙 드센 수직절벽이라 정면에서 곧장 오를 수는 없다. 암벽에 바짝 붙인 철계단을 올라야 하는데, 공중에 뜬 철 구조물 위에 서면 오금이 저리고 모골이 송연해진다.
보덕암 삼거리에서 마지막 300m 급경사가 고비다. 영봉은 쉽사리 정상을 내주지 않기 때문이다. 끊임없는 계단에 온몸이 땀에 젖고 허벅지가 터질듯 아플 때 쯤 마치 해탈의 문이 열리듯 영봉에 닿는다.
정상에 섰다. "악"이 "와~."로 바뀌는 순간이다. 탄식이 절로 새어나온다. 눈앞을 가리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굽어보는 조망은 상상을 초월한다. 어마어마한 철계단을 이겨낸 포상이 이렇게도 달콤할 줄이야.
북서쪽으로 남한강 줄기와 충주호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충주호는 영봉, 중봉, 하봉 등을 담고 있어 더욱 신비롭다. 충주호 너머로 산마루가 제법 평평하게 연결된 능선이 보이는데, 바로 소백산이다. 고개를 돌려 서쪽을 보면 두 개의 뿔이 솟은 봉우리는 문경 주흘산이다. 서쪽으로도 마루금을 좁힌 산들이 너울을 펼친다. 남쪽은 가까이 만수봉이 보이고 그 뒤로 포암산이 나타나는데 백두대간은 이곳을 거쳐 동서 방향으로 흘러간다.
하산은 신륵사 방향이나 송계삼거리로 되돌아가 동창교쪽으로 내려서는 길이 가장 빠르지만 차량이 덕주사에 있다면 원점회귀를 해야 한다. 대부분 하산길은 급경사에다 돌계단 길이므로 쉬엄쉬엄 내려가는 것이 좋다.
제천=글 사진 조용준 여행전문기자 jun21@asiae.co.kr
◇여행메모
△가는 길=수도권에서 갈 경우 중부내륙고속도로 괴산나들목으로 나와 추점삼거리에서 수안보 방향으로 우회전한다. 수안보 시내를 거쳐 597번 지방도로 갈아탄 뒤 송계ㆍ월악산 방향으로 가다 덕주사 이정표를 보고 우회전한다. 마의태자가 세웠다는 미륵불상은 이 도로 중간쯤 있다. 미륵불상은 현재 가림막을 치고 보수공사가 한창이다.
△먹거리=한수면 월악산유스호스텔 앞에 향토 음식점 단지가 조성돼 있다. 주로 매운탕 등을 판다. 송계야영장 인근에도 매운탕집들이 여럿 있다. 청풍호 드라이브에 나섰다면 황금가든의 떡갈비를 맛보는 게 좋다. 울금으로 맛을 내는 게 독특하다.
△볼거리=푸른호수와 아름다운 산자락이 장쾌하게 펼쳐진 청풍호반관광계이블카를 비롯해 청풍문화재단지, 청풍호자드락길, 의림지, 정방사, 충주호유람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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