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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이슈 책에서 세상의 지혜를

남녀평등 위해 일생 바친 1세대 여성운동가 이이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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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씨, 선생의 삶과 철학 기록한 '이이효재' 출간

(서울=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 조한혜정, 고은광순, 김신명숙, 이이효재. 1997년 2월, 한국여성단체연합 주최로 성비 불균형에 대한 토론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남아 선호의 고정 관념을 깨뜨리려면 부모의 성을 함께 써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다. 그래서 탄생한 게 이들 여성의 이름이다.

최초의 제안자는 이이효재 전 이화여대 교수. 한국의 1세대 여성운동가인 그는 21세기를 코앞에 둔 시점에서 남아 선호라는 고질병으로 1년에 3만여 명의 여자 태아가 살해당하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는 현실을 개탄하며 이런 현상을 초래한 남성 중심의 불평등에서 벗어나기 위해 호주제 폐지 등의 변화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앞장서 역설했다.

그 일환으로 전개된 게 '부모 성 함께 쓰기 운동'이다. 이에 동참한 여성들의 수는 예상을 뛰어넘을 만큼 많았다. 한편에서 이를 반대하는 조롱과 욕설이 쏟아지기도 했으나 아버지의 성만 쓰는 관행을 다시 생각해보자는 이 운동은 여론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2005년, 오랜 세월 동안 여성을 남성의 소유로 보던 호주제가 드디어 폐지되는 대전환점이 마련됐다.

이이효재 선생은 우리나라 여성 인권사에서 선구적인 역할과 공헌을 해왔다. 1924년, 가부장제 중심의 식민지 조선에서 태어난 그는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교육에서 소외되고 남편, 아들 뒷바라지를 위해 꿈을 희생하는 여성들을 보며 자신의 힘으로 세상을 바꿔야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1970년대 초 한국사회학회 회장을 지낸 선생은 1977년 이화여대에 여성학과를 국내 최초로 개설했고, 그 10년 뒤에는 한국여성민우회를 창립해 여성들의 목소리를 한데 모았다. 그리고 1990년에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를 결성해 공동대표로서 일본군 성노예 문제를 전 세계에 제기하는 데 앞장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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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호주제 폐지가 확정된 뒤 국회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여성 운동가들(사진=한국가정법률상담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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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술가 박정희 씨의 신간 '이이효재'는 일생동안 한 사람의 여성학자로서, 그리고 여성운동가로서 온몸을 부딪치며 치열하게 살아온 그의 삶과 철학을 기록한 역사서다. 두 딸의 엄마로서 딸들이 본보기로 삼을 만한 여성들을 탐구하고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는 저자는 한국 여성사의 선구자인 이이효재 선생을 인터뷰해 이번에 책으로 펴내게 됐다.

박씨는 "'한 송이 꽃이 피어날 때 모든 곳에 봄이 온다'는 어느 영성가의 말처럼 이이효재 선생님은 이 땅의 여성들이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만큼 찬 바람이 쌩쌩 불던 동토에서 태어나 가장 먼저 꽃을 피우고 봄의 소식을 알린 분이었다"며 "여성 운동의 이론가이자 실천가로 평생을 살아온 선생님의 삶은 우리나라 여성들이 나아가야 할 길을 안내하는 이정표라 할 수 있다"고 경의를 표시한다.

1924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난 선생은 빚 대신 소실로 팔려 간 여성, 남편의 외도로 쫓겨난 여성, 시댁의 학대를 견디지 못해 도망친 여성 등 가부장제에 억눌려 살아가는 여성들을 보며 일찍이 여성 교육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대학에서 사회학 공부를 할 때도 어떻게 하면 지금 배우는 이 학문을 우리 여성들을 깨우치고 남성 중심 사회의 인식을 바꾸는 데 활용할 수 있을까 숙고했다.

한국전쟁이 끝난 뒤 선생은 이화여대에서 연구를 진행하며 우리나라 여성들의 낮은 인권 수준에 참담함을 더욱 뼈저리게 느꼈다. 기혼 여성의 절반 가까이가 아들이 없을 경우, 남편에게 첩이라도 얻어주며 아들을 낳겠다고 답할 정도로 가부장제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높은 교육 수준을 자랑하는 이화여대의 학생들조차 더 좋은 조건으로 결혼하기 위해 진학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 대학 교수인 그는 "독립해서 혼자 살 자신이 있는 여자가 진정 평등한 혼인을 할 수 있다"며 여성의 경제적·심리적 독립을 강조하곤 했다. 이화여대에 최초의 여성학과가 설립된 것도 이 같은 노력의 일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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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아시아의 평화와 여성의 역할' 평양 토론회에 참석해 북한의 생존 위안부들을 격려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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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해 진해 기적의도서관에서 어린이들에게 소개할 책을 살펴보는 이이효재 선생(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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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운동의 또 다른 대표적 전기는 정대협의 탄생이라고 할 수 있다. 선생은 절친인 인권운동가 윤정옥(94) 선생과 함께 정대협을 결성한 뒤 UN을 찾아가 호소하는 등 전 세계에 일본군 성노예 문제를 제기하는 데 헌신했다. 이에 힘입어 2007년 미국 하원에서 일본 정부에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결의가 만장일치로 통과됐고, 전쟁 중 여성에 대한 성폭력과 성노예적 범죄는 국제 인권 규약과 인도에 어긋나는 범죄 및 전쟁 범죄로 규정됐다. 저자는 "이는 여성들의 연대가 피워낸 아름다운 꽃이었다"고 말한다.

이제 90대 중반의 고령이 된 선생의 소망은 뭘까? 선생은 책의 에필로그를 통해 "민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형성해온 우리 문화 속의 여성 차별에 주목하면서 평생 동안 여성이 남성과 평등하게 사회생활을 영위하게 하는 방법을 모색해온 것이 나의 일생이었다"며 "결국 사랑이었다. 가부장제에 억눌린 여성들을 일으켜 세우는 것도, 여성들을 차별하고 그들에게 폭력을 행했던 역사를 바로잡는 것도, 정치적 독재가 힘없고 가난한 이들, 특히 더 취약한 여성의 희생 위에서 지탱되고 있기에 저항한 것도 모두 인간에 대한 사랑이었다"고 들려준다.

"젊은 여성들이 사고에서 더 자유로워지고 선택을 즐기며 살아나가길 권한다. 자신을 사랑하며 그 사랑으로 내가 속해 있는 공동체에 뿌리를 내리면서도 인류의 한 구성원으로서 품위 있는 삶을 영위해나갔으면 한다."

"요즘 내 입장에서는 기도밖에 할 수 없다. '남북이 화해하여 평화 통일을 이루자'라고 아침저녁으로 100번씩 기도한다. 평화 통일에 대한 부정적 의식보다 희망 있는 긍정적 의식과 힘을 키워나가면 언젠가는 긍정적으로 변할 것이라 생각한다. 외세로 인해 갈라진 우리 민족이 함께 평화롭고 자주적인 통일을 이루어 이 땅이 다시는 이민족의 횡포 아래에 놓이지 않고, 세세손손 평화롭게 살아가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선생은 스무 살 때 대학에 가기 위해 상경해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터 잡았던 서울 생활을 접고 1997년 고향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이곳 여성들과 기적의도서관을 만들어 책과 더불어 아이들을 키우는 일을 하며 인생 만년의 값진 보람을 새롭게 느끼고 있다.

다산북스. 312쪽. 1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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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효재' 표지



id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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