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적을 기다리는 컨테이너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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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가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빠져들고 있다. 수출이 감소하는 가운데, 주력산업의 경쟁력 약화와 기업 투자 및 민간 소비 부진이 겹치면서 성장률은 빠르게 떨어지고 있다. 지난달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 물가를 기록하는 등 수요가 위축에 따른 디플레이션 조짐도 나타난다. 추석 이후 전망도 어둡다. 국내 여건이 나아지지 않는 상황에서 세계 경제 성장 둔화와 미·중 무역전쟁, 최대 산업인 반도체 업황 부진 등으로 대외 리스크마저 커지고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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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따라 부정적 성장률 전망 발표한 민간 연구소들
정부의 경기 진단이 담긴 '최근 경제동향(그린북)'에서 5개월째 '부진'이란 표현을 접하고 있지만, 좀처럼 회복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정부는 올해 초 '경제활력 제고'를 내세웠지만, 내리막을 걷는 경제를 돌려세우지 못했다. 추석 이후 경기에 대해서도 민간 연구소들은 잇따라 부정적 전망을 내놓는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지난 8일 올해 경제성장률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0.8%포인트 하락한 1.9%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한경연 전망치는 지난 6월 2.2%에서 0.3%포인트 하향 조정된 것으로 국내 민간 연구소 중에선 유일하게 '1%대' 성장률 전망치를 내놨다. 이승석 한경연 부연구위원은 "대외 여건이 나빠져 수출이 급격히 위축된 가운데 건설·설비투자 둔화 폭이 커졌고 소비까지 둔화한 흐름을 보이는 것이 성장 흐름 악화의 주요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 역시 연초 예상치(1.6%)에 크게 못 미치는 0.5% 수준을 기록할 것으로 관측했다. 인건비가 크게 올랐음에도 경기 위축에 따른 낮은 수요, 서비스 업황 부진, 가계부채와 고령화 등 구조적 원인이 물가 상승을 막는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게 한경연의 관측이다.
월별 물가상승률 추이.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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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침체·저물가 동반한 디플레이션 가능성도"
다른 민간 연구소인 현대경제연구원도 같은 날 성장률 전망치를 낮췄다. 기존 6월 전망치(2.5%)보다 0.4%포인트 내린 2.1%다. 이 연구소는 일시적인 저물가 상황을 넘어 경기 침체와 물가 하락이 동반된 디플레이션 가능성도 점차 커지고 있다고 내다봤다. 설비투자와 수출 모두 9개월째 마이너스 증가율을 보였다. 소매판매도 지난 7월 -0.3%를 기록하는 등 경기 지표 전반에선 긍정 신호가 포착되지 않고 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국내 소비자물가는 원자재 수입 물가 하락 등 공급 측 요인과 내수 경기 부진에 따른 수요 측 요인이 동시에 작용하면서 지난해 같은 달보다 감소했다"며 "여기에 가계·기업 등 3분기 민간의 심리지표들도 2분기보다 나빠지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글로벌 투자은행(IB) 9곳이 내놓은 한국의 올해 성장률 평균 전망치 역시 한 달 전보다 0.1%포인트 낮은 2.0%였다.
기관별 경제성장률 전망.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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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이후 9개월 연속 전년 대비 ‘마이너스’ 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수출도 먹구름이 걷히질 않고 있다. 지난달 수출은 13.6% 감소하며 6월(-13.8%)ㆍ7월(-11.0%)에 이어 3개월 연속 두 자릿수 감소율을 보이고 있다. 이에 하반기 수출 감소율이 두 자리 숫자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사실 정부는 올해 ‘수출 6000억달러 달성’을 목표로 삼았다. 그러나 1~8월 누적 수출은 3615억7000만달러다. 올해 넉 달이 남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연간 목표 달성은 사실상 좌절된 셈이다. 반도체 가격이 회복하면 하반기부터 수출이 회복될 것이라는 정부의 당초 기대도 사그라지고 있다.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이 재고 조절을 위해 반도체 구입을 미루고 있는 데다 미·중 무역분쟁이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면서 불확실성이 더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한국은 일본의 경제 보복이라는 새로운 악재까지 안게 됐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KDI 경제동향 9월호'에서 "글로벌 경기 둔화가 지속하며 수출 여건이 악화했다"고 짚었다.
한국의 수출의존도는 37.5%(2017년 기준)로 주요 20개국(G20) 중 네덜란드(63.9%), 독일(39.4%)에 이어 세 번째로 높다. 경제 구조상 수출이 줄면 투자와 내수에 영향을 미쳐 성장률이 저하되고, 그 결과 고용까지 위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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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관론 폈던 정부도 예상보다 낮은 성장 가능성 내비쳐
정부는 성장률 전망치 수정에는 섣불리 나서진 않고 있다. 그러나 예상보다 낮은 성장률을 기록할 가능성은 조심스레 내비치고 있다.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은 지난 4일 ‘하반기 경제활력 보강 추가 대책’ 브리핑에서 "성장 경로 상·하방 리스크가 확대돼, 7월 정부의 수정 (경제성장률) 전망치 2.4~2.5%보다 낮게 나올 것 같다는 게 정부의 인식"이라고 밝혔다.
올해 초 정부 일각과 여당에서는 생산과 투자·수출 지표가 모두 나빠지는 가운데에서도 '반짝' 나아진 고용과 민간소비 지표를 근거로 향후 경기에 대한 낙관론을 폈다. 국민 소득을 늘려 수요 기반을 넓히면 경제가 성장할 수 있으리라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효과가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조정식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올해 1월 지난해 소비(소매판매) 증가율(4.3%)이 2011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한 것으로 발표되자 "민간소비가 기대 이상으로 증가한 건 소득주도 성장과 임금 상승 등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라고 말했다.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산하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도 올해 6월 보고서를 내고 "지난해 국민소득에서 가계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승세로 전환됐다"며 "가계소득 증가가 민간소비 호조로 이어져 경제성장에 안정적 동력을 제공했다"고 진단했다.
소매판매·설비투자·건설투자·수출·소비자물가 증감률,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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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비 부담 늘리는 소주성 수정하고 재정·통화 완화해야"
그러나 전문가들의 평가는 사뭇 다르다. 지금까지 주요 경제 지표로 드러난 경제 성적표는 낙제에 가깝다는 것이다. 저물가로 생산 환경이 나빠지는 상황에서, 임금·법인세 최고세율 등 생산 비용이 높아지면 투자 활력이 꺾일 수밖에 없다. 민간 경제 활력을 높이려면 소득주도 성장 정책부터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기가 부진한 상황에서 물가도 오르지 않는 디플레이션 국면에선 기업·가계 수입도 줄어들어 세수 확보도 어려워진다"며 "이런 상황에서 금융·노동 비용 부담은 계속해서 나가기 때문에 노동 비용을 늘리는 소득주도 성장 정책은 수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재정·통화 정책 등에서의 전방위적인 (경기 부양) 대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세종=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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