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딜론' 외치던 슈퍼 매파, 17개월만 축출
탈레반과 캠프 데이비드 협상 누설에 분노
뒤끝 볼턴 "해고 아니라 스스로 그만둔 것"
사직서엔 트럼프에 직접 감사 표현 안 해
이란·탈레반 물론 북한과 협상 속도낼 듯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0일 17개월 만에 북한·이란·탈레반과 대화 정책에 반대해온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을 경질했다.[EPA=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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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스 해설자 맥그리거, 오브라이언 인질 특사…비건도 후임 거론
‘네오콘’의 최후의 생존자이자 미국 외교의 슈퍼 매파인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17개월 만에 트럼프 행정부에서 축출됐다. 1982년 레이건 행정부 법무부 차관보부터 조지 W 부시 정부에선 국무부 국제안보담당 차관, 유엔 대사로 2001년 아프간 전쟁과 2002년 이라크 전쟁을 주도했다. 그는 불량 국가 정권교체론의 대명사였다. 지난해 4월 국가안보보좌관을 맡은 뒤에도 이란 공습, 베네수엘라 정권교체와 더불어 대북 빅딜론을 주장해 하노이 정상회담을 무산시키기도 했다. 볼턴의 퇴장이 대북 정책에 변화를 가져올지 주목되는 이유다.
볼턴의 경질은 사실 석 달 전부터 예견됐다. 그의 강경론이 트럼프 대통령과 충돌을 거듭했기 때문이다. 그는 6월 20일 이란이 미국 무인정찰기 드론을 격추한 데 보복 공습을 밀어붙였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막판 150명의 사망자가 날 것이란 조지프 던포드 합참의장의 보고를 받곤 마지막 순간 취소했다. 같은 달 30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비무장지대(DMZ) 판문점 회동에 그를 아예 배제했다. 그 시간 나 홀로 몽골 울란바토르로 떠나야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판문점 회동 72일 만인 10일(현지시간) 낮 12시 트위터에서 “나는 어젯밤 존 볼턴에게 그의 직무가 백악관에서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고 통보했다”며 “행정부 내 다른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는 그의 많은 제안과 강하게 의견이 달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는 그에게 사임할 것을 요청했고 오늘 아침 내게 사직서를 냈다”며 “다음 주에 신임 국가안보보좌관을 임명할 것”이라고 했다.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10일 트럼프 대통령에 제출한 사직서 [트위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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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볼턴은 12분 만에 자신의 트윗을 통해 “내가 어젯밤에 사임을 제안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내일 이야기해보자’고 했다”고 공개하면서 해고가 아니라 스스로 사임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볼턴은 워싱턴포스트 등에 문자 메시지로 “분명히 할 건 내가 그만두겠다고 한 것”이라며 “적절한 때에 밝히겠지만 사임에 관해선 팩트를 말한 것이며, 내 유일한 걱정은 미국의 국가 안보”라고 거듭 주장했다. 이어 공개된 볼턴의 사직서에는 “나는 대통령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즉시 사임한다. 나라에 봉사할 수 있도록 이 기회를 마련해 준 데 감사한다”는 짧은 두 문장만 적혀 있었다. 당신의 지원에 감사했다거나 당신에게 봉사해 영광이었다는 트럼프에 대한 직접적 인사말은 담기지 않았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스티브 므누신 재무장관이 10일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의 해임 직후 백악관에서 열린 대테러 제재관련 회견에서 활짝 웃고 있다. 두 사람은 이 자리에서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많은 일에서 볼턴과 의견이 달랐다"고 말했다.[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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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턴, 해고 25분 전 "9·11을 기억하라…테러와 전쟁 할 일 많다"
여름에도 살아남았던 볼턴의 직접적인 사임의 원인은 지난 주말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을 캠프 데이비드 별장에 초청해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계획에 반대한 것이다. 평화협정 체결로 아프간 철군 공약을 추진하려는 트럼프 대통령은 물론 폼페이오 장관과도 갈등을 빚었다. CNN방송은 한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볼턴을 해임한 것은 캠프 데이비드 협상에 대해 기자들에게 미리 흘렸기 때문"이라며 "트럼프가 참지 못하는 한 가지가 (비밀) 누설"이라고 전했다. 대통령이 9·11 테러 18주년을 앞두고 탈레반을 초청했다는 사실을 공개해 비난받게 했다는 것이다.
볼턴은 트럼프 해고 트윗 25분 전 "우리가 끔찍한 9·11 테러를 이번 주에 성찰하면서, 우리가 급진 이슬람 테러조직과 싸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으며, 얼마나 많은 할 일이 남았는지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테러를 후원하고 미국과 동맹국에 대한 폭력을 조장하는 정권에 강력히 맞서고 있다"고 적었다. 트럼프를 대놓고 비판한 셈이다.
백악관 참모들은 물론 라이벌 관계이던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직전까지 볼턴의 사임을 몰랐다. 볼턴은 이날 오후 1시 30분 폼페이오 장관과 스티브 므누신 재무장관과 함께 대
테러 제재 행정명령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장에 동석하기로 예정돼 있었다. 폼페이오 장관은 ”볼턴도 이 자리에 참석한다고 예고했었는데 당신들도 그의 사임을 까맣게 몰랐던 게 아니냐“는 질문에 ”나는 전혀 놀라지 않았다. 우리는 대통령과 긴밀하게 일하고 있다“고 둘러대면서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 임무는 당신들이 궁금해하는 내부 사안이나 궁중 암투에 대해선 말하지 않는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그는 "볼턴이 백악관을 떠난 게 탈레반과 협상에 대한 당신과 이견 때문이냐"는 질문에는 "해임 결정을 내린 이유에 대해선 대통령이 말하도록 남겨 두겠다"고 하면서도 "대통령은 자신이 신뢰하고 미국의 외교정책을 수행하는 데 있어 도움이 되는 사람과 일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볼턴 대사와 의견이 달랐던 적이 많은 건 확실하다"고 간접 시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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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북 외교 장애물 제거, 유연한 입장 보일진 지켜봐야"
볼턴의 퇴장은 향후 아프간 탈레반뿐 아니라 이란, 북한 정책의 변화도 예고하고 있다. 빅딜론으로 비핵화 단계적 합의를 막았던 볼턴이 사라지며 폼페이오와 스티브 비건 대북특별대표에 힘이 실리게 됐다. 두 달 전 볼턴의 교체와 비건 대표를 후임으로 전망했던 톰 라이트 브루킹스 연구소 선임 연구원은 트위터에 "볼턴의 경질은 불가피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을 앞두고 탈레반과 이란, 북한 심지어 러시아와 협상으로 선회하길 원했지만, 볼턴은 방해만 했다"고 말했다. 이제 "북한과 이란, 탈레반과 협상이 전속력으로 전진할 수 있게 됐다"라고도 했다.
로버트 아인혼 전 국무부 비확산 차관보는 중앙일보에 "볼턴은 북한이 어떤 합의든 지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협상에 매우 회의적이었다"며 "그래서 볼턴의 퇴장은 대북 외교에 장애물을 제거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행정부가 보다 유연한 입장을 채택할지는 실무협상이 실제 열리는 것을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미국의 소리(VOA) 방송에 "트럼프 행정부가 아마도 북한에 비핵화 요구 수준을 낮추면서 보다 적극적으로 포용정책을 펼 것 같다"고 전망했다.
볼턴의 후임으로 폭스뉴스 터커 칼슨 쇼의 안보 해설자인 더글러스 맥그리거 전 육군 대령과 로버트 오브라이언 대통령 인질 특사, 브라이언 훅 이란특별대표 등이 거론되고 있다. 라이트 연구원은 "트럼프가 북한 정책을 모범으로 생각한다면 비건 대표를 기용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정효식 특파원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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