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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문재도의 세상 이야기] 원산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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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객원교수, 전 산업통상자원부 차관

이투데이

일본의 무역보복 조치를 계기로 민간 차원에서 일본 제품에 대한 불매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일본 제품이란 일본에서 생산되어 우리나라에 수입된 제품을 통칭한다. 즉 원산지가 일본산(Made in Japan)으로 표시된 제품이다. 브랜드가 아닌 생산지가 중요하다. 따라서 일본에 본사가 있는 기업이라도 일본이 아닌 미국에서 생산하면 미국산이 된다.

그러면 원산지는 어떻게 결정될까? 농산물의 경우는 그다지 복잡하지 않다. 그곳에서 자라서 채취한 곳이 일반적으로 원산지가 된다. 만약 볍씨를 해외에서 수입했다 할지라도 우리나라에서 재배되면 당연히 국산품이다. 그러나 가공식품의 경우는 복잡해진다. 베트남에서 수입해 쌀과자를 만들어 판매하는 경우엔 쌀 생산지인 베트남산인지 아니면 가공을 하여 과자를 만든 한국산인지가 불분명하다. 통상 이럴 경우 베트남에 재수출한다면 한국산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과자로의 가공과정에서 쌀의 성상이 실질적 변화가 이뤄졌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비자의 알 권리 보호 차원에서 제품의 포장지에 원재료인 쌀이 베트남산임을 추가로 표시하도록 의무화하기도 한다.

우리나라가 가공식품 중 세계적 경쟁력을 가진 것은 인스턴트 커피이다. 그런데 커피 원두가 아닌 커피 제품이 세계 시장에서 거래될 경우 원두 생산국이 아니라 소위 ‘로스팅’이라고 하는 볶음 공정을 한 나라를 원산지로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왜냐하면 커피의 맛을 결정하는 것은 볶음 공정이고 이 과정에서 실질적 변형이 있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물론 커피광들을 위해 커피 판매 상점은 따로 커피 원두의 생산지를 표시하여 차별화한다. 같은 기호품이지만 차의 경우는 다르다. 차로 유명한 스리랑카에서 차 잎을 수입하여 소위 발효와 덖음 공정을 거쳐 생산된 차를 해외로 수출할 경우 통상 원산지는 스리랑카가 된다. 실질적 변환이 없었다고 보는 것이다.

바다를 이동하는 수산물은 물고기를 잡은 배의 국적을 보통 따른다. 물론 양식된 수산물은 양식되어 처리된 곳이 원산지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선박이 공해상에서 물고기를 어획하여 우리나라에 가져와 판다면 국산이다. 이에 반해 중국 배가 동일한 지역에서 고기를 잡아 우리나라에 팔았다면 중국산이 되는 것이다.

공산품의 경우는 더욱 복잡하다. 세계가 단일 시장이 되어 국제분업 구조가 가속화됨에 따라 모든 공정이 한 나라에서 이뤄지지 않아 판정은 어려워진다. 물론 원칙은 실질적 변형이 이뤄진 곳이 원산지인데, 구체적 기준으로 관세청에서 관세를 부과하는 물품의 분류 번호가 바뀌거나 중요한 공정이 이뤄진 곳 또는 조립 공정에서 부가가치가 가장 많이 이뤄진 곳이 원산지가 된다. 그런데 이 세 가지 기준 중 무엇을 따를지는 전적으로 각국의 산업 정책에 따라 달라진다. 심지어 부가가치를 기준으로 할 경우에도 몇 퍼센트 이상의 부가가치가 수출한 나라에서 이뤄져야 그 나라를 원산지로 인정할지가 나라마다 달라진다.

이런 이유로 국가별로 다른 원산지 기준을 가져 기업의 예측 가능성을 떨어뜨리고 거래비용을 늘려 무역의 원활화에 심대한 부정적 영향을 준다. 특히 세계무역기구(WTO)와 별도로 양국 간 자유무역협정(FTA)이 일반화되면서 FTA마다 다른 원산지 기준을 채택하여 기업들의 불편을 더욱 초래한다. 이것을 소위 ‘스파게티 효과’라고 하며 양자 간 특혜무역이 다자무역 질서와 세계 무역 확대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

이런 불편을 해소하고 무역을 확대하기 위해 세계적으로 원산지 규정을 통일하자는 합의가 1995년 WTO 출범을 계기로 있었다. 지금까지 통일 원산지를 제정하려는 협상이 계속되지만 시간이 갈수록 이견을 좁히기보다는 근본적 한계를 인식하고 더 이상 진전이 없다. 특히 화학, 기계, 정보통신 제품은 국제 분업체제가 더욱 고도화하여 생산을 위한 가치 사슬(Supply Chain)에 여러 국가가 관여하면서 길어졌다. 이에 따라 과거에 원산지의 부가가치 기준을 높여 자국 산업을 보호하려던 제조업 강국들도 생산기지를 이전하면서 부가가치 기준을 오히려 낮추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한다.

일본이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3개 핵심 소재에 대한 수출 절차를 까다롭게 하고 추가로 우리나라를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등 주력 산업의 소재와 부품에 대한 수출 제한 조치를 실행하였다. 자유무역 질서를 선도적으로 추구해온 일본으로서는 전혀 명분에 맞지 않은 조치이다. 우리나라의 반도체 수출을 통해 세계 IT시장 규모를 키우고 그 혜택을 서로 공유해온 현실에 비쳐보면 자살 행위나 다름없다. 원산지가 한국이라도 많은 나라의 기술과 기업이 부가가치를 높이는 데 참여하여 세계 경제 발전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조치는 조속히 원상복귀되어야 한다.

한편,우리의 일본산 불매운동도 이러한 세계무역 환경의 변화와 원산지 판정의 복잡성을 고려해야 애국심이 제대로 실현될 수 있다. 여행을 자제하여 일본에 직접 타격을 주는 방식은 간단하지만,국제 분업이 고도화된 상황에서 공산물을 비롯한 가공품의 경우 자칫 브랜드만을 보고 대응이 이뤄질 경우 의도치 않은 제3의 피해자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문재도 서울대 객원교수·전 산업통상자원부 차관 (opinion@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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