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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동료 구하려 내려갔는데…" 영덕 질식사고 사망자 4명으로 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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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덕군 수산물 가공 공장서 질식사고 발생

베트남인·태국인 등 외국인 노동자 4명 사망

사장 "지하 탱크 청소 하려 내려갔는데 기절해"

소방당국 "발생 가스 종류 등 사고 원인 규명 중"

중앙일보

경북 영덕군의 한 수산물 가공 업체의 콘크리트 지하 탱크. 수산물을 가공한 뒤 남은 오폐수를 저장하는 탱크다. 10일 오후 이 탱크에 내려간 노동자 4명이 질식사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영덕=백경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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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오후 찾은 경북 영덕군 축산면의 한 수산물 가공업체. 오징어 등 해산물의 비린 향이 코를 찔렀다. 업체 입구 오른쪽에는 폴리스 라인이 있었다. 내부에선 업체 관계자와 고용노동청 직원, 경찰 등이 지하 탱크를 둘러보고 있었다. 가로 4m·세로 5m·깊이 3m의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지하탱크다. 이곳은 오징어를 가공하는 업체에서 큰 찌꺼기를 거르고 남은 오폐수를 보관하는 장소다.

이날 오후 2시 30분쯤 이 지하탱크 청소를 위해 들어간 외국인 근로자 4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경북경찰청·경북소방본부 등에 따르면 당시 작업 현장에는 근로자 4명과 사장 등 5명이 있었다. 업체 사장은 "근로자 1명이 먼저 사다리를 타고 지하에 내려갔다가 몇초도 안 돼 쓰러졌다"며 "이후 그를 구조하러 간 3명이 연달아 쓰려져 소방서에 신고했다"고 말했다. 소방당국은 이들이 부패하는 물질에서 발생한 유해가스를 마시고 순간적으로 질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당국은 이들을 지하에서 구조했지만, 4명 중 태국인 A씨(42), B씨(28)와 베트남인 C씨(53)는 바로 사망했다. 나머지 태국인 D씨(34)는 중상으로 닥터헬기를 통해 안동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받았지만 11일 오전 1시쯤 끝내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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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덕군에서 10일 오후 2시30분쯤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 4명이 지하 탱크에서 질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진 경북소방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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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사고를 당한 4명의 근로자들은 사고가 난 가공업체에서 일해 온 직원들이다. 4명 모두 미등록 이주민(불법체류자)이다. 베트남인 1명은 지난 11월부터 태국인 3명은 지난 12월부터 일했다. 고용노동청 포항지청 관계자는 "자세한 건 더 조사해봐야겠지만, 이 중 3명은 여행 명목으로 입국해 이곳에 취직했고, 나머지 1명은 자식이 한국 사람과 결혼을 해 이민을 왔다"며 "어쨌든 4명 다 한국에서 일을 하면 안 되는 상황인 미등록 이주민"이라고 말했다.

업체 측에 따르면 이들은 8년 만에 지하 탱크의 모터 청소를 위해 탱크에 들어갔다가 변을 당했다. 모터는 오폐수를 섞는 역할을 하는데 여기에 찌꺼기가 끼이면 작동이 원활하지 않다. 사장은 "주기적으로 오폐수를 버리기 위해 탱크에 작업자가 들어가긴 하지만 탱크 청소는 거의 8년만"이라며 "주기적으로 오폐수를 버리려고 들어가는 입구나 청소를 위해 들어간 입구나 똑같은 곳인데 왜 사고가 났는지 모르겠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지하 탱크 입구는 상시 개방돼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사고 당시 마스크 등 안전 장비는 착용하지 않은 상태였다. 지하 탱크 안에 들어가기 전에 산소 농도를 측정하는 작업 등도 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고용노동청 포항지부에서는 안전 관리가 제대로 이뤄졌는지 업체 관계자를 불러 조사할 계획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왜 지하에서 유독가스가 발생했는지, 유독가스의 종류는 무엇인지 등 사건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11일에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현장감식을 의뢰할 예정이다.

김정수 영덕경찰서 수사과장은 "전문 업체를 불렀거나 안전규칙을 준수했다면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노동자 4명이 사망했기에 조사를 한 뒤 업체 사장의 과실이 드러난 경우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영덕=백경서 기자 baek.kyungse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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