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국민들 전 재산과 다름없어… 부동산정책은 더 안정적이어야
허진석 산업2부장 |
북위 5도 이상에서 발생하는 태풍은 한반도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지만 발생하는 순간부터 기상 전문가들의 추적과 예측의 대상이 된다. 태풍이 어느 시기에 어디로 상륙하는지에 따라 피해 지역이 갈리기 때문이다. 센 바람을 몰고 온 13호 태풍 ‘링링’은 남한으로 상륙하지는 않았는데도 28명의 사상자를 낸 것으로 10일 집계됐다. 당초 상륙 확률이 높았던 수도권으로 상륙했다면 진행 방향의 오른쪽 반경에 있는 지역은 바람 피해뿐만 아니라 폭우 피해도 입었을 것이다.
태풍의 예상 진로에 큰 관심이 쏠리는 것은 불확실성 때문이다. 불확실성은 불안을 야기한다.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은 온통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에 관심이 쏠려 있는 듯하다. 언제 어디부터 적용되는지에 따라 해당 아파트를 분양하는 주체에는 부담금이 벼락처럼 떨어질 수 있고, 아파트를 분양받으려는 사람들도 그 시행 시기와 대상을 알아야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는 아파트 가격을 사실상 정부가 책정해 싸게 공급하도록 하는 정책이다. 아파트 가격이 낮아지면 디플레이션 때 나타나는 현상처럼 공급자들이 상품을 공급할 유인이 줄게 된다. 그렇게 되면 아파트 공급은 감소할 확률이 크다. 이는 정작 필요로 하는 사람이 아파트를 제때 공급받기 힘들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달 14일 주택법 시행령에 담겨 입법예고된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는 아직 입법예고 기간이다. 이달 23일까지 의견을 접수하고 국무회의를 거쳐 의결·공포되면 바로 실시된다. 시행이 임박했지만 아직도 언제, 어디부터 적용될지를 가늠하기는 쉽지 않다.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는 법제처 심사 등을 거쳐 10월 초에 국무회의 상정 후 실시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심사 기간이 길어지고 국무회의 상정 자체도 더 늦어질 것이라고 예상한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당장 10월 초에 작동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2일 국회에서 한 것이 알려지면서 미묘하지만 더 늦춰질 수 있다는 기대가 시장에서 생기는 듯하다.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실시를 담은 주택법 시행령이 발효되더라도 구체적인 적용 대상과 적용 시기는 국토부가 여는 ‘주거정책심의위원회’에서 결정토록 돼 있다. 그런데 이 회의가 개최되는 요건 등이 규정된 바가 없어 언제 열릴지를 예측하기는 힘들다. 사실상 정책 당국의 의지에 모든 게 달려 있는 셈이다.
서울의 반포주공1단지 재건축 사업은 새 아파트를 짓기 위해 기존 입주민들이 아파트를 비우는 이사 시작 2개월을 남기고 서울행정법원으로부터 ‘관리처분 무효’ 판결을 받아 혼란에 빠져 있다. 현 조합과 이 조합에 반대하는 일부 조합원의 다툼이 직접적인 원인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정부 부동산 정책의 예측 불가능성 때문이라는 전문가 지적도 나온다. 2017년 정부가 6·13부동산대책과 8·2부동산대책을 연달아 내놓으며 초과이익환수제를 당장 2018년 1월부터 시행한다고 밝히자 조합이 이를 피하기 위해 서두른 것이 다툼의 원인이 됐다는 분석이다.
집값을 잡겠다는 것이 정책 당국이 원하는 바지만 불안이 가중된 시장은 기존 아파트의 신고가 속출로 반응하고 있다. 지어진 지 오래되지 않은 아파트를 중심으로 강남은 물론 강북에서도 신고가 거래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청약경쟁률도 수백 대 1이 나오는 등 높아지고 있다.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가 실시되더라도 청약 가점이 모자라 기회를 잡기 힘든 소비자들이 공급 부족이 예상되는 아파트를 미리 사두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집은 국민들의 전 재산과 다름없다. 불안을 가중시키지 않는 예측 가능성이 더 강조돼야 하는 정책이 부동산 정책 아닐까.
허진석 산업2부장 jameshu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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