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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북-미 이달 실무협상 가시권…연내 정상회담 분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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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희 “이달 하순 만날 용의” 담화

판문점 회동 71일만에 극적 제안

트럼프 곧바로 “만남은 좋은 것”

연내 대타협 향한 수싸움 본격화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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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협상의 환경 조성과 택일을 고심하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마침내 “9월 하순 합의되는 시간과 장소”를 제안했다. 김 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월30일 판문점에서 만나 실무협상 재개에 구두합의한 지 71일 만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제안 직후 “만남은 좋은 것”이라고 호응했다. ‘9월 중 북-미 실무협상’이 가시권에 들어섰다. 연내 3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와 대타협 현실화를 향한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수싸움과 판짜기가 본격화할 전망이다.

북-미 실무협상이 이뤄지면, 지난 2월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합의 무산의 유탄을 맞아 장기 교착의 수렁에 빠진 남북관계에도 ‘기회의 창’이 열릴 수 있다는 기대 섞인 전망이 나온다.

북쪽의 극적 선회는 9일 늦은 밤에 이뤄졌다. 최선희 북 외무성 제1부상은 미국시각 월요일 오전에 맞춰 “우리는 9월 하순경 합의되는 시간과 장소에서 미국 쪽과 마주 앉아 지금까지 우리가 논의해온 문제들을 포괄적으로 토의할 용의가 있다”는 새 담화를 발표했다. 최 제1부상은 “미국에서 대조선(대북) 협상을 주도하는 고위관계자들이 최근 조미 실무협상 개최에 준비돼 있다고 거듭 공언한 데 대해 유의했다”고 밝혔다. 그는 김정은 위원장이 4월12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미국에 “새로운 계산법”을 주문한 사실을 환기하며 “나는 그사이 미국이 우리와 공유할 수 있는 계산법을 찾기 위한 충분한 시간을 가졌으리라고 본다”고 압박을 겸한 기대도 내비쳤다.

김 위원장의 협상 재개 결심엔, 마냥 미루다가는 6·30 판문점 만남 직후 “앞으로 2~3주 안에 실무협상을 재개하기로 김 위원장과 합의했다”고 밝힌 트럼프 대통령을 공개 망신 주려 한다는 비난과 함께 ‘김정은-트럼프 신뢰 관계’가 크게 훼손될 수 있다는 고려도 작용했으리라는 지적이 많다. 폼페이오 장관은 6일(현지시각) <에이비시>(ABC) 방송과 한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이 협상 테이블에 돌아오지 않으면 트럼프 대통령이 매우 실망할 것”이라고 압박한 터다.

다만 김 위원장은 실무협상을 결심하고도 미국의 변화가 자신이 바라온 만큼 충분하지는 않을 수 있다는 걱정을 떨치지 못한 듯하다. 최 제1부상이 담화에서 “미국 쪽이 조미 실무협상에서 낡은 각본을 또다시 만지작거린다면 조미 사이의 거래는 그것으로 막을 내리게 될 수도 있다”고 엄포를 놓은 게 방증이다. 북쪽이 담화 발표 몇시간 뒤인 10일 이른 아침 평안남도에서 동해 쪽으로 ‘미상의 발사체’ 두 발을 쏜 사실은, 담화의 이 엄포가 빈말이 아님을 강조하려는 위력시위의 성격을 지닌 듯하다.

하노이 회담 이후 10차례에 걸친 신형 단거리탄도미사일·방사포 개발·시험발사는 북한의 재래식 군비 열세를 보완하려는 일상적 자위 조처라는 주장을 기정사실화하려는 포석으로도 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단거리 발사체 발사에 대해 “다른 나라도 다 하는 일”이라며 문제 삼지 않겠다는 신호를 발신해왔다.

실무협상에서 북-미가 제기할 주요 의제는 이미 윤곽이 드러나 있다. 미국 쪽은 ①핵활동 동결 ②비핵화 청사진(로드맵) 마련 ③최종 목표(엔드 스테이트) 설정이 핵심이다. 북쪽은 하노이 회담 때 핵심 요구사항이던 제재 완화·해제 문제에 더해 ‘안보’ 관련 의제를 본격 제기할 전망이다.

미국 쪽은 최근 나름의 대북 상응조처 구상을 공개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8월27일 “북한은 엄청난 잠재력이 있는 나라”라며 느닷없이 “철로 등으로 북한에 가는 방법”을 입에 올린 바 있다. 하노이 회담 직전인 2월19일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과 한 통화에서 “비핵화 견인 상응조처로서 한국의 역할을 활용해달라”며 “남북 철도·도로 연결부터 남북 경제협력 사업까지 떠맡을 각오가 돼 있다”고 제안한 사실을 염두에 둔 언급으로 풀이된다. ‘안보’ 의제와 관련해서도 “우리는 북한의 정권교체를 바라지 않는다”(4일 트럼프 대통령)거나 “모든 나라는 스스로를 방어할 주권을 갖는다”(6일 폼페이오 국무장관)거나, 완전한 비핵화를 전제로 한 주한미군 (감축과 역할 조정 등을 포함한) ‘전략적 재검토’ 가능성 언급(6일 비건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이 있었다. 외교안보 분야 원로는 10일 “실무협상의 성패는 미국이 얼마나 달라진 태도를 보이느냐에 달렸다”며 “경제든 안보든 그럴듯한 말이 아니라 손에 잡히는 물건을 내놓느냐가 관건”이라고 짚었다. 전직 고위 관계자는 미국의 ‘유연성’을 가늠할 지표로 첫째 제재 완화·해제와 관련한 진전된 태도 여부, 둘째 ‘선 비핵화’ 압박이 아닌 북-미 동시 행동 원칙 적용 여부를 꼽았다.

북-미 실무협상이 연내 3차 북-미 정상회담과 대타협으로 이어지려면 ‘역량 있고 신뢰받는 중재·촉진자’의 존재가 절실하다. 70년 적대관계인 북-미의 신뢰 부족과 대타협 경험 결여가 상호 오해를 촉발해 협상을 좌초시킬 위험을 어떻게 줄이느냐가 관건이다. 전직 고위관계자는 “하노이 회담 이후 역할이 극도로 위축된 문 대통령이 지난해 발휘한 눈부신 중재·촉진 역량을 얼마나 빠르게 회복하느냐도 북-미 협상의 진로에 중요 변수”라며 “문 대통령이 멈춰선 남북관계를 다시 돌릴 결단으로 대북 영향력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북-미 실무협상이 3차 북-미 정상회담으로 이어져 한반도 평화 과정에 다시 가속이 붙도록 우리의 구실을 높일 방안을 강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고위관계자는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을 상대로 전략적 협상을 할 때 문 대통령의 조력은 필수 요소일 수밖에 없다”며, 북-미 실무협상이 진행되면 남북관계에도 ‘기회의 창’이 열리리라고 기대했다.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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