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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1945년 만주의 조선인 난민촌, 해방되지 못한 영혼들…‘1945’ 창작 오페라로 재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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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극작가 배삼식이 직접 각색, 창가와 동요 차용…다채로운 음악

위안부였던 분이와 미즈코의 서사…과도한 미장센 경계 ‘절제의 미학’

27·28일 서울 예술의전당서 공연

경향신문

연극 <1945>가 오페라로 재탄생한다. 사진은 2017년 7월 국립극단이 명동예술극장에서 초연했던 연극 <1945>의 한 장면. 국립극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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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1945년 해방 직후다. 만주땅을 떠돌던 조선인들이 장춘의 ‘전재민(戰災民) 구제소’에 몰려든다. 한마디로 난민이다. 구제소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해방된 조국으로 돌아갈 기차를 기다린다. 그 황량하고 지저분한 곳에서 인간군상의 풍경이 펼쳐진다.

지식인 구원창은 학교를 열려 하고, 그의 아내 김순남은 생계를 위해 떡장사에 나선다. 오인호는 좌익 활동을 하던 형 때문에 부모를 잃은 채 동생을 데리고 만주로 도망쳤으나, 그 동생마저 구제소에서 죽고 만다. 장막난과 박섭섭은 오갈 데 없는 밑바닥 인생의 동류의식을 함께 느낀다. 둘은 물러설 데 없는 벼랑 끝에서 마치 짐승처럼 정을 나눈다. 그러다가 ‘아편쟁이’ 섭섭은 장질부사로 죽어가는 막난 앞에서 목놓아 운다.

<1945>가 오페라로 다시 태어난다. 2년 전 명동예술극장에서 초연했던 연극이다. 우리 시대의 탁월한 스토리텔러인 극작가 배삼식(49)이 4막 14장의 오페라 대본으로 자신의 희곡을 직접 각색했다. 이미 여러 편의 음악극과 오페라를 통해 역량을 보여줬던 최우정(51)이 <1945>의 작곡을 맡았다. 연극에서 출발해 창극, 뮤지컬, 오페라를 넘나드는 ‘무경계 연출가’ 고선웅(51)이 이번 무대를 연출한다. 오페라 <1945>는 이 세 명의 예술가들이 의기투합했다는 점에서 이미 주목을 끈다.

일단 음악이 궁금하다. 오페라의 전형적 양식에 기반을 뒀음에도 <1945>의 음악은 다채롭다. 1930~40년대에 유행했던 창가와 군가를 비롯해 가수 남인수가 불러 유명해진 ‘울리는 만주선’, 동요 ‘두껍아 두껍아’ ‘엄마야 누나야’ 등의 선율을 곳곳에서 차용한다. 때로는 불협화음과 무조음악으로 난민의 상황과 정서를 묘사한다. 다양한 재료를 끌어들인 것에 대해 작곡가 최우정은 “오페라 작곡에 대한 탐구와 고민이 더 깊어지고 커졌다. 이번 작품은 작곡가로서의 그런 고민을 다양하게 반영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서 그는 “한국어의 자음과 모음을 음악적 고저장단으로 표현하는 것에 중점을 뒀다”면서 “극의 배경이 만주 지역이어서 외가가 평안북도인 덕을 많이 봤다”고 말했다.

오페라 <1945>에서 가장 핵심적인 등장인물은 분이(연극에서는 명숙)와 미즈코다. 조선인 위안부였던 분이는 역시 위안부였던 일본인 미즈코와 ‘지옥의 시절’을 함께 견뎠다. 그를 친동생이라고 속여가며 구제소에서 함께 머문다. 미즈코는 일본인이라는 사실이 들통나면 쫓겨나거나 린치를 당할 수 있는 까닭에 벙어리 행세를 하며 지낸다. 최우정은 이와 관련해 “노래는 가장 억눌린 사람으로부터 나오는 것, 기쁠 때보다 고통스러울 때 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두 여인은, 한국인인가 일본인인가의 문제와 상관없이 가장 음악적인 삶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작곡가 최우정(왼쪽), 연출가 고선웅


연출가 고선웅은 “나는 극작가와 작곡가를 위해 이번 무대를 연출한다”고 단언했다. “대본과 음악을 100% 존중하며 그것을 손상 없이 무대에 펼쳐놓겠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그는 “오페라 <1945>는 그 시대의 희생양이었던 약자들의 이야기”라며 “이번 작품의 메시지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반전과 평화”라고 말했다.

“해방이 왔지만 여전히 떠돌 수밖에 없는 사람들 이야기입니다. 특히 분이와 미즈코, 죽음을 암시하는 장면에서도 손을 꼭 잡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 관객들에게 어떤 느낌을 전해줄 거라고 봅니다. 이번 무대에서는, 어딘가 저 너머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장면들이 많을 겁니다. 양지바른 곳에서 햇살에 몸을 맡기는 장면들도 등장할 겁니다. 하지만 연출가로서 과도한 미장센을 경계하려고 했습니다. 극 흐름과 음악에 딱 필요한 만큼만 시각적인 요소를 구현할 겁니다.”

27일과 28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된다. 코리안심포니와 국립합창단을 정치용이 지휘한다. 무대는 이태섭이 꾸민다. 소프라노 이명주(분이)와 김순영(미즈코), 소프라노 김샤론, 바리톤 유동직과 이동환, 베이스바리톤 우경식, 테너 이원종·민현기·정제윤, 메조소프라노 임은경과 김향은 등이 출연한다. 국립오페라단이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해 마련하는 무대다.

문학수 선임기자 sachi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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