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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갈나무, 참나무과의 낙엽교목. ⓒ이해복 |
어디에서 왔을까. 그건 아주 나중에 알아보기로 하자. 거기에 무어라 말할 하늘이 아니다. 여름이 차례를 지켜 덥고, 나는 순서가 되어서 세상에 내던져진 것이라고 미루어 짐작할 뿐. 지금 해야 할 일은 자꾸 산으로 가는 수밖에 없겠다는 궁리가 든다.
지난 일요일은 입춘 이후 열다섯 번째인 백로였다. 대부분의 24절기가 뜻만 무뚝뚝하게 전하는 데 비해 백로는 그 이름이 퍽 우아하다. 덕유산 삿갓재에서 1박 하는 산행을 계획하였다가 링링에게 발목이 잡혔다. 파주출판단지로 허전한 발길을 돌리는데 뿌리째 뽑힌 가로수가 많았다. 거리에 수북한 상수리나무의 가지를 관찰하니 접촉면이 너덜너덜했다. 아직도 바르르 떠는 가지를 들고 한 달 전의 춘천으로 달려갔다.
나보다 먼저 이 세상에 나오신 형님들과 김유정문학촌의 금병산 오르는 길. 산은 그야말로 소설가의 뒷배를 담당한 듯 오솔길이 호젓했다. 어두웠던 시대를 감당해야 했던 김유정의 그 많은 고민과 문장을 받아준 산책길. 바닥에 박힌 바위들이 닿소리라면 지나가는 바람결은 홀소리라고 해둘까.
금병산 길바닥에 신갈나무 가지가 떨어져 있다. 가지와 접했던 부위를 보면 누군가 예리하게 칼로 자른 듯 매끈했다. 이는 도토리가 달리는 참나무를 괴롭히는 도토리거위벌레의 소행이다. 녀석은 신갈나무 열매에 알을 낳고, 주둥이로 가지를 잘라 밑으로 떨어뜨린다. 충격을 완화하려고 프로펠러처럼 잎을 몇 개 매단 채. 그냥 자연스럽게 무위하게 부러진 게 아니다.
점점 빗줄기가 굵어지는 거리에서 생각을 더 달려본다. 훤칠한 나무일수록 태풍은 더 집요하게 덤벼드는 것 같았다. 우리나라 백두대간에서 가장 많은 나무는 신갈나무라고 한다. 나무는 나무, 사람은 사람이겠지만 결국은 하나로 반죽이 된다. 우리는 이 산들을 등뼈로 삼아 각각 살아가는 중이다.
우리는 누구일까. 무용한 질문이지만 안 할 수도 없는 물음이다. 어쩌면 신갈나무가 그에 대한 답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겠다.
이굴기 궁리출판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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