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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6 (토)

[이굴기의 꽃산 꽃글]금병산의 신갈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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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신갈나무, 참나무과의 낙엽교목. ⓒ이해복


어디에서 왔을까. 그건 아주 나중에 알아보기로 하자. 거기에 무어라 말할 하늘이 아니다. 여름이 차례를 지켜 덥고, 나는 순서가 되어서 세상에 내던져진 것이라고 미루어 짐작할 뿐. 지금 해야 할 일은 자꾸 산으로 가는 수밖에 없겠다는 궁리가 든다.

지난 일요일은 입춘 이후 열다섯 번째인 백로였다. 대부분의 24절기가 뜻만 무뚝뚝하게 전하는 데 비해 백로는 그 이름이 퍽 우아하다. 덕유산 삿갓재에서 1박 하는 산행을 계획하였다가 링링에게 발목이 잡혔다. 파주출판단지로 허전한 발길을 돌리는데 뿌리째 뽑힌 가로수가 많았다. 거리에 수북한 상수리나무의 가지를 관찰하니 접촉면이 너덜너덜했다. 아직도 바르르 떠는 가지를 들고 한 달 전의 춘천으로 달려갔다.

나보다 먼저 이 세상에 나오신 형님들과 김유정문학촌의 금병산 오르는 길. 산은 그야말로 소설가의 뒷배를 담당한 듯 오솔길이 호젓했다. 어두웠던 시대를 감당해야 했던 김유정의 그 많은 고민과 문장을 받아준 산책길. 바닥에 박힌 바위들이 닿소리라면 지나가는 바람결은 홀소리라고 해둘까.

금병산 길바닥에 신갈나무 가지가 떨어져 있다. 가지와 접했던 부위를 보면 누군가 예리하게 칼로 자른 듯 매끈했다. 이는 도토리가 달리는 참나무를 괴롭히는 도토리거위벌레의 소행이다. 녀석은 신갈나무 열매에 알을 낳고, 주둥이로 가지를 잘라 밑으로 떨어뜨린다. 충격을 완화하려고 프로펠러처럼 잎을 몇 개 매단 채. 그냥 자연스럽게 무위하게 부러진 게 아니다.

점점 빗줄기가 굵어지는 거리에서 생각을 더 달려본다. 훤칠한 나무일수록 태풍은 더 집요하게 덤벼드는 것 같았다. 우리나라 백두대간에서 가장 많은 나무는 신갈나무라고 한다. 나무는 나무, 사람은 사람이겠지만 결국은 하나로 반죽이 된다. 우리는 이 산들을 등뼈로 삼아 각각 살아가는 중이다.

우리는 누구일까. 무용한 질문이지만 안 할 수도 없는 물음이다. 어쩌면 신갈나무가 그에 대한 답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겠다.

이굴기 궁리출판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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