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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6 (토)

[여적]명예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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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5월2일 고려대에서 열린 삼성 이건희 회장 명예철학박사 수여식은 아수라장이었다. 학생들이 식장을 에워싸고 반대시위를 벌이는 바람에 예정보다 늦게 진행됐다. 파장은 컸다. 다음날 고려대 총장이 사과했고, 청와대까지 나서서 유감을 표시했다. 대학과 시민단체에서는 ‘명예박사 논쟁’이 불붙었다. 고려대는 이 회장에 대한 명예박사 수여의 근거로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인’ ‘신경영과 사회공헌활동’ 등을 들었다. 그러나 반대 측은 ‘고려대 100주년기념관 건립비(418억원) 기부’의 대가라며 자본의 대학 영향력 확대를 보여주는 사건으로 해석했다.

명예박사는 교육부에서 인가하는 정식 학위가 아니다. 말 그대로 ‘명예’로 주는 학위다. 고등교육법 시행령 제47조에는 ‘학술 발전에 특별한 공헌을 했거나, 인류문화 향상에 공적이 있는 사람에게 수여한다’고 나와 있다. 국어학자 이희승 박사, 김수환 추기경 등 취지에 부합하는 명예박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엄격한 기준이나 잣대가 없다보니 대학들이 학위를 남발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특히 사립대 명예박사 학위가 정·재계의 실력자들에게 돌아가는 현실이 이를 말해준다. 가령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국내 대학에서 받은 명예박사 학위는 7개나 된다.

동양대 최성해 총장의 박사 학위가 진위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주 국회 청문회 전까지 최 총장은 교육학 박사로 알려졌다. 최 총장은 그동안 학교 공식문서뿐 아니라 포털사이트, 언론인터뷰에서도 ‘워싱턴침례신학대 교육학 박사’라고 밝혀왔다. 그러나 청문회에서 박사 학위 의혹이 제기되자 ‘교육학 박사’ 이력을 지웠다. 네이버 인물정보에서 최 총장의 학력은 ‘박사’에서 ‘명예박사’로 수정됐다.

최성해 총장의 박사 학위 보유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사립대 총장은 박사 학위가 없어도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허위 사실을 내세우며 총장으로, 교육자로 활동했다는 점이다. 앞서 최 총장은 ‘교육자의 양심’을 얘기하면서 조국 법무장관의 딸이 받은 동양대 표창장의 조작설을 제기했다. 그러나 정작 자신에게 쏟아지는 ‘학력위조’ 의혹에 대해서는 입을 닫고 있다. 최 총장은 이 의혹부터 해명해야 한다. 그것이 명예박사의 ‘명예’를 지키는 길이다.

조운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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