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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대통령이 강조한 교육개혁 "외고 폐지, 학종 개선 급물살탈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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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서열화 해소, 대입 공정성 강화" 강조

교육계, 내년 평가서 외고 무더기 탈락 예상

'시행령 개정 통한 일괄 페지' 앞당길 수도

대입 개편은 당분간 학종 개선에 주력할 듯

"속도 강조하다 학부모 혼란 커질 수도"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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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평가 대상 자사고·외고·국제고.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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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고교 서열화 해소, 대입의 공정성 등 교육개혁을 강력히 추진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이 나오자 교육계 안팎에선 정부가 자율형사립고(자사고)와 외국어고(외고)의 일반고 전환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란 예상이 나왔다. 조국 법무부 장관 딸의 대입 논란으로 국민적 관심사가 된 학생부 종합전형의 개선도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교육계 일각에선 공정성을 강조한 교육당국의 성급한 접근으로 학생, 학부모의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이날 문 대통령의 발언 직후 교육부 최성부 홍보담당관은 “교육부는 서열화된 고교 단계에서 형성된 교육특권이 대입 결과로도 이어지는 등 불공정과 특권적 요소를 바로 잡아 달라는 국민의 요구에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고교 서열화 해소와 대입 공정성 강화를 통한 기회의 공정을 뒷받침할 개혁안을 신속히 마련하기 위해 교육 관련 단체와의 협의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고교 서열화 해소와 가장 연관 깊은 정부의 국정과제는 자사고·외고의 단계적 폐지다. 정부의 국정과제 로드맵에 따라 교육부는 이미 자사고·외고가 일반고에 앞서 신입생을 모집하는 '우선선발권'을 없앤 상태다(1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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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자사고 지정 현황.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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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시도교육청의 재지정 평가를 통해 탈락한 자사고·외고를 일반고로 전환하는 2단계(2018~2020)가 진행 중이다. 올해 교육청들이 자사고 총 24곳을 평가해 11곳에 지정취소 결정을 내렸고, 교육부는 이중 전주 상산고를 제외한 10곳의 지정취소에 동의했다. 서울 배재고 등 10곳은 법원이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임에 따라 당분간 법적 지위를 유지한 상태다.

이날 문 대통령의 발언으로 교육부가 내년도 재지정 평가에 보다 강경한 태도를 취할 것으로 예상한다. 그래서 내년엔 고교 체제를 둘러싼 혼란은 한층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에 따르면 내년엔 외국어고 30곳, 국제고 6곳, 자사고 12곳의 재지정 평가가 진행된다. 이중엔 조국 법무부 장관의 딸이 졸업한 한영외고, 사립외고의 대명사인 대원외고, 최근 ‘대입 명문’으로 떠오른 용인외대부고·휘문고가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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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9일 청와대 본관에서 대국민 메시지를 발표하고 있다.[청와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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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교육계에선 적지 않은 학교가 탈락할 것이란 예상이 돈다. 내년에 평가받는 외고·국제고의 절반 이상(19곳)이 교육감의 관할인 공립이라 교육청 평가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 사립 외고 상당수는 재지정 평가 요소 중 하나인 재단 전입금이 아예 0원이거나 기준에 미달한다.그래서 이들 상당수는 올해 존폐 논란을 겪은 자사고처럼 ‘지정 취소→가처분 신청→잠정 유지’ 수순을 밟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교육부가 내년 이후로 미뤘던 '시행령 개정을 통한 자시고·외고의 일괄 폐지'를 앞당길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진보교육감과 진보 교육단체의 거듭된 요청에도 불구하고 교육부는 일괄 폐지 여부는 내년도 외고·자사고 평가를 마친 뒤 국가교육회의 또는 내년에 출범을 준비 중인 국가교육위원회를 통해 결정한다는 입장이었다. 조성철 한국교총 대변인은 "대통령이 고교 서열화와 대입을 묶어 말했는데 마치 고교서열화가 대입 공정성을 해치는 문제로 인식하는 듯하다"며 "이번 발언을 통해 시행령을 통한 일괄 폐지 쪽으로 힘을 얻게 될 것 같아 걱정된다"고 밝혔다.

고교 서열화 해소에 연관된 '일반고 역량 강화' 방안도 적극적으로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일반고 역량 강화를 위한 주요 정책 중 고교학점제는 내년 마이스터고부터 시범 도입되고 2025년 일반고에 전면 도입된다. 고등학생이 대학생처럼 수업을 골라 듣는 고교학점제와 함께 절대평가 방식의 내신 성취평가제도 같은 시기 도입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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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후 부산대학교 부산캠퍼스 정문에서 열린 '제3회 촛불집회'에서 부산대 학생들과 시민들이 조국 법무부 장관의 사퇴를 촉구하는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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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입 제도 개선은 조 장관 딸의 대입과정에서 불거진 수시 전형, 특히 학생부 종합전형의 개선에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앞서 1일 동남아시아 순방 직전 문 대통령의 '대입 전면 재검토' 발언에 따라 교육부는 학종 개선을 논의하기 위한 회의를 수차례 열었다. 이미 지난 6일 당·정·청 비공개협의회를 통해 학종 개선 논의에 착수한 상태다.

학종 개선은 주로 학부모의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자율동아리 활동과 학교 밖 봉사활동, 과열 경쟁 양상을 띠는 교내 수상 실적 등의 대입 반영을 막고, 사설 컨설팅이 기승을 부리는 자기소개서를 폐지·축소하는 방안 등을 먼저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1일 대통령의 '대입 재검토' 발언으로 촉발됐던 수능 위주 정시의 확대 여부는 교육부의 대입 개선 논의에서 일단 제외될 것으로 보인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4일 기자들에게 "대입 정시·수시 비율 조정 문제는 당분간 논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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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서울 청와대 분수광장에서 공정사회를위한국민모임이 조국 법무부 장관의 지명 철회를 촉구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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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계 일각에선 이날 문 대통령의 발언에 자극받은 교육당국이 고교 체제와 대입 개편 논의를 지나치게 성급하게 진행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나왔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고교 서열화와 학종, 고교학점제 등은 미래 교육정책이라는 큰 틀에서 긴밀히 연결된 제도다. 속도에 쫓겨 임기응변식 대책을 만들어 내면 국민은 또다시 교육정책을 신뢰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김동석 교총 정책국장은 "교육은 다른 어떤 제도보다 예측 가능성과 안정성이 중요한데,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교육정책이 달라지면 자녀를 키우는 학부모 입장에서는 무너져 혼란이 커진다"며 "교육개혁엔 방향만큼 속도도 중요한데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이라면 국민의 우려도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천인성·박형수 기자

guch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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