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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70대 할머니, 바람에 30m 날아가 ‘참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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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링링’이 할퀸 상처

초속 54.4m ‘역대 5위’ 강풍에 전국서 3명 사망·수십명 부상

1만4468㏊ 침수·낙과 등 피해, 제주 양식 넙치 2만여마리 폐사

해인사 250살 ‘최치원 나무’ 뚝

경향신문

“자식같이 키웠는데…” 태풍 ‘링링’의 영향으로 전남 신안 흑산도 양식시설이 파손돼 있다(위 사진). 8일 제주의 한 농가에서 농민들이 태풍 피해를 입어 부서진 한라봉 재배시설을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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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소녀’라는 뜻의 제13호 태풍 ‘링링’이 한반도를 휩쓸고 지나가면서 큰 피해를 남겼다. 비는 적었지만 바람은 위협적이었다. 가장 거센 바람이 분 곳은 전남 신안 흑산도로, 순간 최대풍속이 역대 5위인 초속 54.4m를 기록했다.

링링은 한반도를 빠져나갔지만 3명이 숨지는 등 전국에서 인명과 재산 피해가 속출했다. 70대 여성은 바람에 휩쓸려 날아가다 추락해 숨졌고, 잠시 휴식을 취하던 시내버스 운전기사는 무너진 담벼락에 깔려 참변을 당했다. 60대 남성은 강풍에 날아든 지붕 패널에 머리를 맞고 숨졌다. 태풍은 축구장 2만개와 맞먹는 규모의 농경지를 할퀴고 지나갔다. 천연기념물도 역대 5위급 강풍에 맥없이 쓰러졌다.

■ 날아가고 떨어지고 뒤집히고

지난 7일 오전 10시30분쯤 충남 보령 남포면에 거주하는 최모씨(74)는 바람이 거세지자 트랙터 보관 창고지붕이 강풍에 날아갈까 봐 이를 막으려 수습하고 있었다. 잠시 후 그는 이웃집 마당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과 주민들은 최씨가 지붕을 손보다 불어닥친 바람에 휩쓸려 지붕과 함께 30m 정도를 날아간 뒤 화단 벽에 부딪쳐 숨진 것으로 보고 있다.

같은 날 오후 2시44분쯤엔 인천 중구 인하대병원 주차장 인근 담벼락이 거센 바람에 갑자기 무너져 내렸다. 이 사고로 운행을 마친 시내버스 운전기사(38)가 그 아래에 깔렸다. 그는 급하게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으나 목숨을 잃었다. 경기 파주에서는 이날 오후 3시쯤 중국 국적의 한 남성(61)이 강풍에 뜯긴 골프연습장 지붕 패널에 머리를 맞아 크게 다쳐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졌다.

8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이번 태풍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최씨를 포함, 총 3명으로 집계됐다. 이 밖에도 철골 구조물이 집을 덮쳐 부부가 다치고, 길을 지나던 시민들이 건물에서 떨어져 나간 간판과 유리 파편에 맞는 등 수십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제주에서는 시민 6명이 엘리베이터에 갇혔다가 소방당국에 구조됐다. 소방공무원과 경찰관 10여명도 안전조치를 취하다 다쳐 병원 치료를 받았다.

전북 부안에서는 주택 1채가 무너져 2명이 친척 집으로 대피했고, 경기·대전·제주에서 총 18채의 주택과 62채의 상가가 침수되는 등 시설물 피해도 잇따랐다. 서울과 경기, 인천 등 곳곳에서 바람으로 간판이 떨어져 나갔다는 신고가 419건 접수됐고 차량은 총 84대가 파손됐다. 가로수가 뽑히거나 쓰러진 경우는 총 2444건이었다. 담장이 파손되거나 건물 외벽이 떨어져 나간 사례도 300건에 이른다.

전남과 제주 등 해안가에선 피항 선박 35척이 뒤집혔다. 전남 신안군 흑산면 가거도에서는 복구공사가 진행 중인 가거도항 옹벽 약 50m가 유실되면서 당분간 여객선 운항이 차질을 빚게 됐다.

추석 호황을 기대하던 농어민들은 직격탄을 맞았다. 1만4468㏊에서 침수, 낙과 등으로 농작물 피해가 발생했다. 비닐하우스와 인삼재배시설 230여㏊가 파손됐다. 축구장(7140㎡) 약 2만개에 달하는 농경지가 태풍 피해를 입은 셈이다. 전남에서만 3849㏊의 벼가 쓰러지고 과일이 떨어지는 등 4013㏊의 농작물이 피해를 입었다.

전남 순천 낙안면에서 배농사를 짓는 김진수씨(61)는 “일할 사람이 없어 이주노동자들을 써 마지막 배 작업을 해놨는데 이 모양이 됐다”면서 “재해보험이 있다고 하지만 생산비에 턱없이 미치지 못하기에 올해 농사도 망쳤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충북 영동군 추풍령면에서 사과를 재배하는 김영배씨(56)는 “오늘이나 내일쯤 수확을 앞두고 있었는데 1040그루 중 150그루가 넘어졌다”며 “열매에 색이 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상품성이 없어 모두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우럭과 전복을 키우던 신안군 흑산도 인근 양식장들은 10m가 넘는 파도가 덮치면서 쑥대밭이 됐다. 제주에서도 양식 넙치 2만2000마리와 돼지 500마리가 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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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담벼락 8일 서울 강서구 화곡동의 한 아파트 외곽 담벼락이 태풍 ‘링링’의 영향으로 무너져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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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0살 천연기념물도 쓰러져

태풍은 경남 합천 해인사에 있는 천연기념물 나무가 쓰러지는 등 국내 문화재에도 크고 작은 피해를 남겼다.

태풍이 남부를 강타하면서 천연기념물 제541호 ‘합천 해인사 학사대 전나무’가 쓰러졌다. 수령이 약 250살로 추정되는 이 나무는 신라 문장가 최치원이 해인사에 지은 정자 ‘학사대’에 꽂은 지팡이가 자란 나무의 후계목이라는 전설을 간직한다. 사적 제118호인 진주성 성곽 두겁석(성곽 상부 덮개돌) 2개도 인근 나무가 넘어지면서 파손됐다.

또 다른 천연기념물인 화순 야사리 은행나무(제303호)와 진도 관매도 후박나무(제212호)는 가지가 부러졌고, 제주 수월봉 화산쇄설층(제513호)은 돌로 쌓은 석축이 일부 무너지고 돌이 떨어졌다. 문화재자료 제261호 함안 박한주 여표비, 유형문화재 제141호 진주 응석사 대웅전에서는 각각 비각 기와, 전각 기와가 떨어지는 피해를 봤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수원화성은 성벽에 덧대진 벽돌 시설물 일부가 떨어져 나가기도 했다.

태풍이 몰고 온 강풍으로 전날 총 16만1646가구에 전기 공급이 중단됐다. 전기가 끊기면서 시민들은 냉방기를 틀지 못한 채 습기를 잔뜩 머금은 무더위 속에서 밤을 지새워야 했다. 이날 이낙연 국무총리는 추석 전에 재해보험금의 50%까지 피해 농어민에게 선지급되도록 하라고 관계부처에 주문했다.

전국 종합·고영득 기자 god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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