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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이슈 책에서 세상의 지혜를

일본인들 ‘부당 이익’ 챙겨준 식민지 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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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 경제사 연구 일본인 학자, 토목청부업자 사례로 ‘이중구조’ 드러내

조선에 투자된 자금 대부분 다시 일본인 손에…‘식민지 근대화론’ 유효성 따져



한겨레

일본학자가 본 식민지 근대화론-일제강점기 일본인 토목청부업자의 부당 이익을 중심으로
도리우미 유타카 지음/지식산업사·1만8000원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만든 통계연보에는 1928년 조선에 있는 일본인과 조선인의 인구, 이들의 우편저금 잔고를 보여주는 통계가 나온다. 일본인 47만여명의 우편저금액이 2648만엔에 달하는 반면, 조선인 1866만여명의 우편저금액은 430만엔에 불과했다. 일본인 1명당 조선인보다 245배 많은 자산을 소유하고 있었던 셈이다. 이 압도적인 경제력의 격차는 도대체 어디에서 왔을까? 갖가지 ‘실증적인 자료’를 앞세우며 “일제강점기 때 조선의 경제가 발전했다”고 주장해온 ‘식민지근대화론’은 이 통계에 대해 과연 무어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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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학자가 본 식민지근대화론>은 한국 근대 경제사를 연구하는 일본 학자 도리우미 유타카(57)의 박사학위 논문을 중심으로 만든 단행본이다. 한국역사연구원 상임연구원인 지은이는, 공식 통계뿐 아니라 산업계 잡지, 신문기사 등 갖가지 자료들을 동원해 조선과 조선인을 착취하고 일본과 일본인에게 부당한 이득을 줬던 일제강점기의 ‘이중구조’를 실증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으로 식민지근대화론을 논리정연하게 비판한다.

출발점은 ‘왜 일제는 조선에 공업을 일으키려 하지 않았나’ 하는 의문이다. 3·1운동 직후 일제는 ‘산업조사위원회’를 여는 등 조선의 경제를 발전시키겠다는 태도를 취했고, 그 결과 ‘철도 부설과 산미증식계획’을 내놨다. 메이지 정부에서 ‘식산흥업’(정부 주도의 공업 육성)을 했던 것과 달리, 식민지 조선에서는 조선 경제가 일본과 경합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공업을 억제하는 대신 도로나 철도 건설, 항만 정비, 수리조합사업 등에만 투자를 집중한 것이다. 지은이는 “교통과 통신기관의 정비라는 방향성을 제시함으로써 일본의 공업을 지키면서 조선의 외형만을 근대화해 나가는 형태를 추진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1939년까지 조선총독부 예산은 모두 55억엔 정도인데, 이 가운데 토목과 관련한 지출은 10억7천만엔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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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투자된 자금은 조선에 거주하는 일본인 토목청부업자들이 독점했다. 이들은 정치권력이 정해주는 제도 등의 보호를 받았다. 일본 내지에서는 회계법이 제정되어 일반경쟁입찰 원칙이 적용되던 시기지만, 조선 등의 식민지에서는 칙령에 따라 특명계약·수의계약으로 청부업자의 임의 지정이 가능했다. 1921년 회계법 개정으로 조선에서도 일반경쟁입찰이 원칙이 됐으나, 정무총감 통첩(1932년) 등으로 곧 무력화됐다. 일본 내지에는 없는 ‘기술주임제도’가 조선에서만 시행되기도 했다. 조선인 청부업자를 구조적으로 배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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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청부업자들이 어떻게 ‘부당 이득’을 취했는지 보여주는 것이 이 책의 백미다. 이들은 임금을 떼먹거나, 매우 조금만 줬다. <조선총독부 통계연보> 등의 공식 자료들에선 당시 조선인 막일꾼의 하루 임금을 80전~1엔 가량으로 계산했다. 그러나 지은이는 신문기사와 협회 발간물, 수기 등의 자료들을 참고하여, 실제론 30~40전 수준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표면적으로는 공사금액의 절반 가까이를 노무비로 책정해놓고, 실제론 6~17% 정도만 주고 나머지를 ‘부당 이득’으로 챙긴 것이다. 농업 분야라 생각하기 쉬운 산미증식계획에서도 쌀 증산보다는 관개시설을 만드는 등의 토목사업인 수리조합사업이 핵심이었으며, 그 실체는 “조선 농민에게 강제집행이 가능한 수리조합비를 부과해 일본인 청부업자·지주 등에게 부당한 이익을 주는” 시스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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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으로부터 조선에 투자된 자금의 대부분을 다시 일본인들이 장악할 수 있는 이 ‘이중구조’의 실체는, 식민지근대화론이 유효할 수 있는지 따져묻는다. 더 나아가, 지은이는 “‘수탈’의 정의에만 얽매일 것이 아니라, 정치권력에 의한 경제 영역의 왜곡 등 폭넓은 개념으로 일제강점기 경제 연구가 진전되어야 한다”며 새로운 연구의 방향성도 제안한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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