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17 (일)

이슈 책에서 세상의 지혜를

[임온유의 느·낌·표] 첨성대의 건축학적 수수께끼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아시아경제

[아시아경제 임온유 기자] 2017년 5월 징검다리 연휴에 경주 여행을 갔다. 황리단 길에서 점심을 먹고 첨성대까지 걸어갈 요량이었는데 봄비가 추적추적 내려 갈까 말까 고민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다 '초등학교 수학여행 이후 20년 만의 경주 여행인데, 그래도 그 유명한 첨성대는 보고 가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첨성대.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유물인데 사실 이름을 빼놓고는 생각나는 이야기가 없었다. 어렴풋한 기억이지만 교과서에서 '지금 남아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라고 배웠던 것 같다. 알고 봐야 더 재밌다는 걸 어른이 돼 깨달았기에 급하게 네이버를 뒤졌다.


마땅히 읽을거리가 없다고 불평하던 찰나 눈에 띄는 이야기 하나를 발견했다. 첨성대가 천문관측소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꽤 있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별다른 근거가 없어 보여 그때는 그저 허무맹랑한 이야기라고만 여겼다. 결국 큰 감흥 없이 첨성대 앞에서 사진 하나를 찍은 다음 장소로 향했다.


새 책 '첨성대의 건축학적 수수께끼'를 보면서 2년 전 생각이 났다. 저자는 첨성대를 둘러싼 논란을 살펴보고 새로운 이야기를 전개하는데 이 중 상당 부분을 '천문관측소가 맞느냐/아니냐'를 이야기하는 데 할애했다. 책에 담을 정도면 교과서에서 배운 첨성대가 천문관측소라는 내용이 사실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르자 더욱 흥미로워졌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책에 정답은 없었다. 책은 1. 천문관측소다 2. 천문관측소가 아니다 3. 상징적 건축물이다 등 첨성대에 관련된 모든 이야기를 보여주는데, 책을 따라가다 보니 정답은 없지만 이쯤이면 흥미를 채우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면의 한계로 첨성대의 방대한 이야기를 모두 담기 어렵지만 우선 첨성대가 천문관측소라는 주장의 근거부터 보자면 바로 이름 때문이다. 첨성대의 뜻은 별을 올려다보는 높은 곳. 게다가 옛 문헌들 역시 이를 뒷받침한다. 1530년 발간된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조위의 시를 빌려 첨성대의 천문관측 기능을 언급했다.


하지만 천문관측소가 아니라는 주장도 그럴싸하다. 첨성대의 이름이 처음 등장한 책은 1281년 고려 시대에 쓰인 '삼국유사'. 하지만 첨성대는 무려 그로부터 600여 년 전인 신라 시대(632~647년 추정)에 만들어졌다. 즉 고려 말에 세워진 유적을 2019년에 기록한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처음부터 첨성대라 불리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삼국유사보다 더 늦게 나왔으니 신뢰도를 의심 받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인 셈이다.


기록 외에도 첨성대의 키가 9.1m인데 고작 이 정도 높이에 올랐다고 하늘의 별과 달을 얼마나 잘 관찰할 수 있었을지 의구심이 든다는 주장도 있다. 게다가 천문대는 보통 산의 정상이나 중턱에 세우는 게 상식이었다.


첨성대가 천문관측소가 아니라면 도대체 뭘까. 책은 천문관측소의 상징물, 김유신 생가의 우물 재매정을 거꾸로 세운형태로 신앙적 상징물, 제천의식을 지내던 제단, 여인의 치마 입은 몸매를 닮아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상징물 등 첨성대와 관련된 여러 설들을 소개한다.


하지만 모두 진실과 거짓을 가릴 수 없는 이야기들이다. 첨성대에 관한 역사 자료가 수적으로나 양적으로나 충분하지 않아 어쩔 수 없다.


그럼에도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새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건축학자인 저자는 모든 선입견을 배제하고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대전제를 믿고 첨성대의 새로운 면을 탐구했다. 다양한 수학모델과 그래프를 사용한 결과 저자는 첨성대 몸통의 곡선 모양이 계절에 따른 낮과 밤의 길이 변화와 일치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물론 첨성대를 만든 신라인이 이를 의도했는지 단지 우연의 결과일 뿐인지 알 수 없지만.


<첨성대의 건축학적 수수께끼/김장훈 지음/동아시아/1만6000원>



임온유 기자 ioy@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