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미국, 중국, 일본, 그리고 한국의 4각 구도는 혼란과 불안의 연속이지만, 미국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 패권 전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세계대전이 끝난 뒤 초강대국 미국 중심으로 세계를 이끄는 ‘팍스 아메리카’는 여전히 유효한 것일까. 미국은 요동치는 아시아 3국의 질서를 어떻게 재편하려고 할까.
책은 지난 70년간 동아시아를 둘러싸고 벌이는 미·중·일 3국의 관계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위기와 갈등의 상황’임을 암시한다.
저자는 “제2차 세계대전의 비극을 인정한 뒤 단결할 수 있었던 유럽과 달리, 동아시아는 전쟁과 과거사 등 역사 문제에서 해결되지 못한 미완의 과제로 남아있다”고 지적했다. 이 역사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미래 불안도 지속할 것이라는 게 저자의 판단이다.
오늘날 동아시아 정세는 갑자기 벌어진 ‘사건’이 아니다. 20세기 미·중·일 3국은 상대를 이용한 전술에 힘을 쏟았다. 서로의 눈치를 보며 정세 유리에 따라 다른 나라와 관계를 맺는 등 판도가 수시로 바뀌었다.
미국과 중국이 수교했을 땐 서로를 냉랭하게 대했던 중국과 일본도 새로운 관계를 모색했다. 지금과 달리 처음엔 일본이 먼저 적극적으로 과거사를 사과하려 했으나, 상대적으로 국력이 약했던 중국은 과거사를 문제 삼지 않고 일본의 경제적 원조를 이끌어내려 했다.
중국이 경제 대국으로 성장하면서 난징대학살 등 전쟁 피해에 대한 공식적 사과를 요구했지만, 일본은 태도를 바꿔 ‘피해자 코스프레’로 일관했다. 위안부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는 지금 한국의 상황처럼, 중국과 일본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려 할 때마다 역사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미국이 중국과 일본을 대하는 방식과 태도의 변화도 동아시아 전체 판도 변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미국이 일본이라는 방어선을 내세워 동아시아를 통제하려 했으나, 닉슨과 키신저가 중국을 방문함으로써 이 체제에 근본적 변화가 일어났다.
1971년 중국을 처음 방문한 키신저는 중국 총리 저우언라이에게 일본을 억제할 목적으로 미군이 동아시아에 주둔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오늘날 미국 정부는 그 목적이 중국과 북한에 맞서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다.
3국 관계는 강대국으로 떠오른 중국을 예상하지 못했던 과거의 전술에 변화가 생기고, 전쟁이라는 고리로 갈등이 첨예했던 미국과 일본의 불편한 현실이 가장 우호적 관계로 바뀌는 식으로 요동쳐왔다.
저자는 “한때 아시아의 미국 동맹과 파트너십은 ‘중심점과 바퀴살’로 설명되듯 미국이 주위 국가들과 일대일 관계를 맺는 방식이었지만, 지금은 아시아 국가 간의 여러 연합체로 이뤄진 형태를 띠고 있다”며 “그렇다고 미국이 아시아를 조용히 빠져나갈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말했다.
◇미국, 새로운 동아시아 질서를 꿈꾸는가=리처드 맥그레거 지음. 송예슬 옮김. 메디치미디어 펴냄. 568쪽/2만9000원.
김고금평 기자 dann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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