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대통령 대화 메시지에도 끝내 외면한 日…냉각기 지속할 듯
한일관계 냉각 (PG) |
(서울=연합뉴스) 현혜란 기자 = 일본의 전략물자 수출심사 우대국 명단인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조치의 시행을 사흘 앞둔 25일 경제분야에서 시작된 한일갈등이 안보분야로 번지는 모양새다.
한국 정부는 지난 22일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을 연장하지 않기로 결정한 데 이어 사흘만인 이날부터 이틀간 '동해 영토수호훈련'으로 명명한 독도 방어훈련에 들어갔다.
이 훈련은 연례적으로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에 한일갈등과는 무관하다는 게 한국 정부의 입장이지만, 외교가에서는 점점 꼬여가는 한일관계를 보여주는 단면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한일관계가 나쁘지 않았어도 이번 훈련은 예정대로 치러졌겠지만, 훈련 규모를 예년보다 축소하거나 외부에 훈련 내용을 공개하지 않는 등 일본을 덜 자극하는 방향으로 수위를 조절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한국군은 매년 두 차례씩 독도 방어훈련을 벌여왔다. 올해는 지난 6월에 이 훈련을 시행할 계획이었으나 한일관계에 미칠 파장을 고려해 훈련 시점을 미뤄왔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훈련에 참여하는 전력 규모는 지난해보다 2배로 확대됐으며, 사상 처음으로 이지스함인 세종대왕함(7천600t급)을 포함해 해군 제7기동전단 전력과 육군 특전사들이 참가했다.
한국 정부가 지소미아를 종료한 데 이어 곧바로 대대적인 독도 방어훈련에 나선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5일 광복절 경축사 등 여러 계기에 일본에 대화의 손길을 내밀었음에도 일본 측이 끝내 응하지 않자 더는 배려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의 경축사 이후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 외무상은 지난 21일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한중일 외교장관 회의를 계기로 양자 회담을 했으나 입장차이를 좁히는 데 실패했다.
한국 정부는 지난 6월 강제징용 배상판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과 일본 기업이 공동기금을 조성하는 '1+1' 방안을 제안한 이후 이를 토대로 여러 방안을 논의해보자고 제안해왔으나, 일본 측은 이를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혀온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지난 23일 "그간 일본의 지도층은 기존 주장만을 반복하면서 대화에 전혀 진지하게 임하지 않은 채 우리가 국제법을 일방적으로 위반한 만큼 우리가 먼저 시정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요구하기만 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한국 정부가 지난달 두 차례 일본에 고위급 특사를 파견했고, 이달 초에는 주일대사가 일본 측 총리실 고위급 인사를 통해 협의를 시도했으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는 "일본이 한국을 '안보상 이유로 신뢰할 수 없는 국가'라고 억지 주장을 늘어놓는 와중에도 한국은 대화 채널 복원에 정성을 기울여 왔다"며 "일본이 원칙만 고수한 채 대화에 전혀 응하지 않은 것이 한국 측이 다시 강경하게 나오게 된 배경"이라고 말했다.
한국 정부의 잇단 안보 조치는 일본이 백색국가 제외를 통해 한국의 대표적 수출품목인 반도체 산업의 급소를 찌르고 들어왔듯이 안보 측면에서 일격을 가하려는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한일 갈등이 지속하는 상황에서 미국의 중재에 기대를 걸어온 한국 정부가 안보 문제로 판을 흔들어 한미일 군사협력을 중시하는 미국에 이 문제의 심각성을 부각하려는 의도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한국과 일본이 대화할 기회는 여럿 있지만, 해법을 모색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다음 달 하순에는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 총회를 계기로 한일 외교장관이 다시 만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이달 방콕과 베이징에서 이뤄진 한일 외교장관 회담이 아무런 소득 없이 끝났다는 점에서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을 전망이다.
10월 22일 예정된 나루히토(德仁) 일왕 즉위식에 특사를 파견하면서 양국 갈등을 해소할 실마리를 마련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지만, 한일 양국이 강대강 대치를 이어가는 상황에서 유의미한 결과를 끌어낼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시각에 무게가 실린다.
runran@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