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대부는 이윤을 추구할 수 없고 상업은 천한 신분이나 종사하는 일로 여겨졌다. 조선 시대에 감히 ‘돈’을 얘기하는 것은 명문 집안의 자손일수록 더럽고 추한 대화일 뿐이다. 이런 풍토에 과감한 도발을 한 이가 있었으니, 영조와 정조 시대의 지식인 이재운이 그 주인공.
그는 누구나 부를 추구하는 것이 하늘이 준 자연스러운 욕망이고 생업에 기꺼이 뛰어들어 가난에서 벗어나는 것이 벼슬보다 낫다는 주장을 과감히 펼쳤다. 가난이 미덕이고 안빈낙도가 미학인 조선 시대와 정면으로 대결하는 셈이다.
그가 쓴 ‘해동화식전’은 18세기 조선의 유일무이한 재테크 서적이다. ‘병세재언록’을 쓴 영·정조 시대 작가 이규상이 “요사이 연암 박지원이 기굴한 명가로 일컬어지나 ‘해동화식전’에 견주면 대우가 난삽하고 기괴하여 손색이 있다”고 평가할 만큼 이 작품은 세련된 묘사와 다채로운 수사의 힘을 과시한다.
책은 유학이 내세우는 경제관을 완전히 뒤집는다. 군자는 의로움, 소인은 이익을 추구한다는 논리는 군자도 이익을 추구하고 소인도 의로울 수 있다는 주장으로 바뀌고 “부란 사람이면 누구나 좋아하는 맛 좋은 생선회나 구운 고기와 같은 것”이라고 강조한다.
나아가 가난하고 어진 삶이란 허위에 불과하다고 지적하면서 부유해야 너그럽고 어질 수 있다는 새로운 도덕관까지 제시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부의 방법은 무엇일까. 그는 생업의 귀천을 묻지 말고 전심전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밑천이 적을수록 “남이 하나 하면 나는 백을 하고”, 농사든 소 도살이든 국밥 장사든 천대받는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고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부를 구하라”고 조언한다.
책엔 9편의 상인 열전이 실렸다. 국제무역과 대부업으로 거부가 된 청년, 자린고비 전설의 주인공, 신묘한 경영술로 집안을 다시 일으킨 부인, 글공부를 그만두고 농사에 힘쓰며 이웃을 구제해 큰 부자가 된 양반 등 각양각색의 주인공들이 자기만의 부의 철학을 소개한다.
이들 중엔 출중한 경영전략을 드러낸 이도 있고 근면과 성실로 부를 일군 사람도 있다. 저자는 “애써 부를 일군 사람들이야말로 존경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과감하고 급진적인 주장을 펼친 이 책은 조선 후기 중상주의적 경제론이 만개하는 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해동화식전=이재운 지음. 안대회 옮김. 휴머니스트 펴냄. 260쪽/1만5000원.
김고금평 기자 dann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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