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경주박물관 '금성 남산과 헤이조쿄 동산' 학술대회
경주 남산 용장사지 삼층석탑 |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경주 월성(月城) 남쪽 남산에는 수많은 신라시대 절터와 석탑이 있다.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에서 '경주 남산'으로 검색하면 국보 1건과 보물 12건이 나온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2005년 발간한 서적에 따르면 문화유산이 686곳에 이른다. 남산에 분포하는 불교 유적은 대부분 계곡 주변에 분포한다.
경주 남산에 절터와 석탑, 불상이 유독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차순철 서라벌문화재연구원 조사단장은 국립경주박물관이 22일 개최하는 '금성(金城)의 남산(南山)과 헤이조쿄(平城京)의 동산(東山)' 학술대회에서 남산이 불국토(佛國土)가 된 연유를 분석해 발표한다.
헤이조쿄는 일본 나라시대인 8세기 무렵 수도였던 곳으로, 이번 학술대회는 경주 남산과 헤이조쿄 동산 불교 유적을 함께 고찰하기 위해 마련됐다.
21일 배포된 발제문에 따르면 차 단장은 "남산에 건립한 사찰 중 창건 시기가 이른 곳은 선방사지, 장창곡 제10사지, 전(傳) 신인사지 등으로 7세기 전반으로 추정된다"며 시간이 흐를수록 사찰 입지가 계곡 안쪽으로 올라가는 모습이 확인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경주 남산에 사찰이 건립된 원인으로는 기존 왕경 내 택지가 줄어들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며 "새롭게 불사를 할 수 있는 남산에 사찰을 건립하고 불탑을 봉헌한 일은 공양주 자신과 가족의 복을 비는 기원행위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차 단장은 9세기 무렵 남산에 조성된 석탑 사리기 명문을 보면 기복적 성격이 잘 나타나는데, 이는 사회 혼란 속에서 자신과 가족의 복을 구하고 극락왕생과 내세를 기원하는 마음이 컸음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이어 신라 경덕왕이 중국 당 대종을 위해 만든 만불산(萬佛山)에 관한 삼국유사 내용을 떠올려보면 남산이야말로 신라인이 생각한 불국토를 구현한 공간이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추정했다.
학술대회에서는 차 단장을 포함해 한국 학자 4명, 일본 학자 6명이 발표한다.
이용현 경주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왕경 내 백률사나 선도산 정상 마애삼존불은 왕실이 불교를 공인하고 권력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산물이지만, 왕경에서 떨어진 곳에 있는 단석산 신선사는 신라 육부 중 하나인 모량부의 성산(聖山)에 세운 지역세력 불교 신앙 거점이었다고 주장했다.
또 남동신 서울대 교수는 경주 불국사가 석가모니 귀향 설법을 바탕으로 삼고, 당대 중국 왕궁 건축을 차용해 조성했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다나카 도시아키(田中俊明) 전 시가현립대 교수는 백제시대 건축물 밀집 지역에서 보면 강 건너편에 자리한 부여 왕흥사에 대해 백제 왕실이 낙화암이 있는 부소산성에서 광대한 부지를 찾지 못해 선택한 입지라면서 "중국 남조와 북조의 여러 요소를 복합적으로 채용한 것 같다"고 밝혔다.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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