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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이슈 책에서 세상의 지혜를

이시영 손자, 위안부 없다는 ‘반일종족주의’에 “팔레르모 의정서 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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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페이스북서 비판
한국일보

‘반일 종족주의’가 발간되면서 뜨거운 논쟁을 일으키고 있다. 사진은 지난 15일 서울 중구 광화문 교보문고. 안하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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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근대화론을 기반으로 한 책 ‘반일 종족주의’에 대해 공개 비판하는 목소리가 학계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독립운동가 이시영 선생의 손자인 이철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이영훈 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를 비롯한 공저자들의 주장을 조목조목 문제 삼았다.

위안부와 강제징용은 강제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책의 주장에 대해, 이 교수는 ‘인신매매(human trafficking)’에 관해 국제적 정의 내린 ‘팔레르모 의정서’를 들어 반박했다.

팔레르모 의정서는 인신매매의 정의를 '착취를 목적으로 위협, 무력행사, 강박, 납치, 사기, 기만, 권력남용 등을 통해 사람을 모집, 운송, 이송, 은닉 또는 인수하는 행위'(recruitment, transportation, receipt of persons by means of the threat, use of force, coercion, abduction, fraud, deception, the abuse of power for the purpose of exploitation)로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착취는 매춘이나 성적 착취, 강제노동, 노예제나 노예제와 유사한 관행, 장기 제거 등이 포함된다고 못박고 있다.

이 교수는 “(책은) 위안부와 노동력 강제동원에 대해, 사람을 그냥 폭력적으로 끌고 간 것이 아니라면 정당화된다는 믿음을 보여준다. 머리채를 잡아 끌거나 트럭에 싣고 가지 않았으니까 성노예, 강제동원은 없었다고 주장한다”며 이는 반인도적 범죄로서 간주되는 인신매매를 금지하는 팔레르모 의정서에 반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팔레르모의정서를 소개한 국내 언론 보도를 들어, 미국 정부 역시 이 의정서를 근거로 국내 관련법에 인신매매의 정의와 주체를 규정하고 있고, 대외정책을 담당하는 국무부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공식적으로 ‘인신매매’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밖에도 이 교수는 △종족주의 개념에 대한 학문적 논의가 없다는 점 △식민지 근대화 성장을 강조하면서 일제 식민지배가 정당화된다는 사고를 바탕에 깔고 있다는 점 등을 지적했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다음은 이 교수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 전문.

이영훈 외, 반일종족주의 을 읽은 소감을 두서 없이 말하자면,

(1) 민족 문제를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종족,” “종족주의”라는 개념을 어떻게 정의, 구사하고 있는지 궁금했는데, 역시 예상했던대로 세계 학계에서 통용되는 개념과 담론 및 국내 학계의 논의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없고, 그에 대한 초보적인 이해조차 있는지 의심스럽다. 여기서 말하는 종족은 ethnic group이 아니고 tribe로 이해되며 종족주의도 tribalism의 뜻으로 사용되는 것 같은데, 이는 한국인의 아이덴티티를 저급한 것으로 치부하기 위한 용어 선택일 뿐 그에 대한 어떤 정의나 개념적 지도 그리기를 하고 있지 않다. 그냥 구호적 차원에서 사용하는 말에 불과하다.

종족과 종족주의를 한국인의 집단심성의 기저를 이루는 샤머니즘과 연결시키면서, 종족주의를 “객관적 논변이 허용되지 않는 불변의 적대 감정,” “이웃 일본을 세세의 원수로 감각하는 적대 감정”으로 정의한다. 한국에는 자유롭고 독립적인 개인의 범주가 없기 때문에 서양에서 발흥한 민족주의와 다르다고 본다. 서양 민족주의가 그렇게 단순하고 한 마디로 정의되는 것인가? civitas에 대립하는 natio와 gens, polis와 demos에 대립하는 ethnos의 개념과 그것들의 역사적 진화, 그것을 소비하는 집단들의 상이한 관념들, 그것을 둘러싼 무수한 학문적 논의가 있음을 알고 있는지.

내가 대학 시절에 읽은 Hans Kohn의 민족주의론이 동유럽의 종족적(ethnic) 민족주의와 서유럽의 자유주의적 민족주의를 이분법적으로 대립시킨다는 이유로 현재의 민족주의 연구자들에게 배척당한다는 사실을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다. 한스 콘조차 배척당하는 터에 정치적 구호 수준의 말에 대해 논평을 할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다.

(2) 한국인의 특성으로 “거짓말”을 들고 있다. “한국인의 숨결엔 거짓말이 배여 있다고 합니다.” “제가 보기에 이 나라의 역사학이나 사회학은 거짓말의 온상입니다. 이 나라의 대학은 거짓말의 제조공장입니다.” “그들은[법관들은] 원고들의 거짓말일 가능성이 큰 주장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들 역시 어릴 적부터 거짓말의 교육을 받아 왔기 때문입니다.”

제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공론장에서 할 수 없는 말, 술자리에서나 하는 말을 하고 있다.

한국 사회학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는가. 특히 사회사 연구자들이 지난 20년간 발전시켜온 연구들을 충분히 음미했는지 의문이다.

(3) 토지기맥론, 혈연적 사고, 샤머니즘과 같은 한국인의 집단심성을 장기지속으로 규정하면서 브로델을 언급한다. 아날학파의 멍딸리떼 연구가 그런 식으로 이루어지는가?

(4) 주변적인 언설이나 학문적 언설이 아님이 분명한 것을 인용하면서 공격의 대상으로 삼는다. 조정래의 소설을 가지고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고 비난. 김영삼 정부 시절 쇠말뚝뽑기를 주류적 문화현상인 것처럼, 한국 문화는 이렇다는 식의 서술. 서경덕의 의욕에 찬 오버를 마치 주류 역사학계의 태도인 것처럼 조롱.

학계에서 그냥 어른으로 예우하는 분인 신용하 선생의 학설이 아직도 주류 역사학계를 지배하는 것처럼 전제하고 그것을 공격.

박경식의 연구를 비판한다. 박경식? 어느 시대의 연구자인가? 출판된지 45년이 넘은 저서이다. (내 반론은 박경식 연구의 한계를 인정할 뿐 그의 치열한 삶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다.)

(5) 한국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 전혀 근거 없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 주제 전문 연구자의 말을 들어보자.

(6) 위안부와 강제징용은 없었다고 하니 그 주제를 연구하는 사람들의 평가를 들어보자. 팩트에 대해서는 그렇다치고 그 주장에 담긴 관념을 보자면, 위안부와 노동력 강제동원에 대해, 사람을 그냥 폭력적으로 끌고 간 것이 아니라면 정당화된다는 믿음을 보여준다. 성노예, 강제동원을 그렇게 정의한 후, 머리채를 잡아끌거나 트럭에 싣고 가지 않았으니까 성노예, 강제동원은 없었다고 주장한다. 이는 오늘날 반인도적 범죄로서 간주되는 trafficking의 개념에 반한다. Human trafficking을 금지하는 팔레르모의정서를 보자.

팔레르모의정서(Protocol to Prevent, Suppress and Punish Trafficking in Persons Especially Women and Children, supplementing the United Nations Convention against Transnational Organized Crime)

제3조(Article 3)

For the purposes of this Protocol:

(a) "Trafficking in persons" shall mean the recruitment, transportation, transfer, harbouring or receipt of persons, by means of the threat or use of force or other forms of coercion, of abduction, of fraud, of deception, of the abuse of power or of a position of vulnerability or of the giving or receiving of payments or benefits to achieve the consent of a person having control over another person, for the purpose of exploitation. Exploitation shall include, at a minimum, the exploitation of the prostitution of others or other forms of sexual exploitation, forced labour or services, slavery or practices similar to slavery, servitude or the removal of organs;

(b) The consent of a victim of trafficking in persons to the intended exploitation set forth in subparagraph (a) of this article shall be irrelevant where any of the means set forth in subparagraph (a) have been used;

(c) The recruitment, transportation, transfer, harbouring or receipt of a child for the purpose of exploitation shall be considered "trafficking in persons" even if this does not involve any of the means set forth in subparagraph (a) of this article;

(d) "Child" shall mean person under eighteen years of age.

이를 소개하는 한 국내 언론보도를 보자.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인신매매'라고 표현한 것을 놓고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제사회에서 얘기하는 인신매매에는 국가가 개입된 강제매매가 포함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미국과 일본 등 159개국은 지난 2000년 채택한 일명 '팔레르모 의정서'를 각각 국내 관련법에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 의정서에는 인신매매의 정의를 '착취를 목적으로 위협이나 무력행사 그리고 강박과 납치 사기 또, 기만과 권력남용 등을 통해 사람을 모집하거나 운송 또는 은닉하고 인수하는 행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의정서는 '착취'는 매춘이나 성적 착취뿐 아니라 강제노동과 노예제나 노예제와 유사한 관행 그리고 장기 제거 등이 포함된다고 못박고 있습니다. 또 인신매매의 주체를 국가와 단체, 개인을 모두 포함하는 것으로 보고 있어 일본군 위안부는 팔레르모 의정서가 규정하는 인신매매 행위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미국 정부는 이 의정서를 근거로 국내 관련법에 인신매매의 정의와 주체를 규정하고 있으며, 대외정책을 담당하는 미국 국무부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공식으로 '인신매매'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7) 위안부는 매춘이었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음을 비교해보자. 세월호 관련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에 대해, “여성 대통령이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여성을 우습게 여기거나 비하하는 한국인의 집단 심성이 만들어낸 거짓말이었습니다.”

실력 있는 문화연구자에게 “대통령과 위안부”라는 제목의 담론분석을 의뢰하고 싶은 심정이다.

(8) 그렇다고 이 책에서 말하는 내용을 일소에 부쳐서는 안된다. 조선토지조사사업이 토지 수탈의 과정이 아니었다고 하는 것, 일제시대에 일정한 경제성장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친일 발언이라고 비난할 것은 아니다. 일본으로 쌀을 “수출”했다고 서술한 것을 문제 삼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를 문제삼아서는 안된다. “수출”은 중립적 개념이고, 사회과학적 서술은 중립적 개념을 사용하는 것이 당연하다.

조선토지조사사업이 최소한 민유지에서는 소유권 변동을 대량으로 가져오지 않았다는 주장은 이미 1980년대말과 90년대 배영순, 조석곤 등의 연구를 통해 어느 정도 설득력 있게 개진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실증적 반론이 별로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이영훈(경칭 생략)이 말하는 것처럼 중등 역사교과서는 그에 맞게 수정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나는 일제시대의 경제성장에 대한 김낙년의 연구 결과가 놀랍지 않다. 그것을 비판한답시고 “그 경제성장이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가”라고 묻는 것은 과학적 태도가 아니다. 의도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고 말 수는 없다.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에서 김낙년과 주익종은 일제시대 경제적 근대화와 성장이 이루어졌음을 주장하면서도 그것이 일제 지배를 정당화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반일종족주의 에 이르게 되면 그러한 조심스러움은 사라진다. 일제시대에 경제성장이 있었다면, 그리고 근대적 제도가 도입되었다면, 그것만으로 일제 지배는 정당화된다는 사고가 이 책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 이 책이 구역질난다는 조국의 비난에 대해 이영훈은 우리나라에 근대 민법이 언제 도입되었는지를 묻고 있다. 근대 민법이 도입된 것만으로 일제 지배를 긍정해야 한다는 황당한 논리를 개진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조야한 주장 때문에 그에 대한 반론 또한 조야하게 되는 것이다.

(9) 청구권협정에 대한 주익종의 분석에 대해서는 그 주제를 전공하는 학자의 말을 들어보자. 주익종은 일제 지배의 불법성을 전제로 청구권협정을 접근하는 태도를 근본적으로 반박하고 있는데, 일제 지배의 불법성 문제는 별도의 포스팅으로 다루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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