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현의 정세토크] 평행선 달리는 북미, 회담 이뤄질까
덧붙여 이날 진행된 정세토크는 정 전 장관이 민주평통 수석부의장 임명이 되기 전에 예정됐던 일정이었습니다. 따라서 정 전 장관은 수석부의장 내정자 자격이 아닌 한반도 문제에 대한 전문가 자격으로 인터뷰에 응했음을 알려드립니다.
북한이 지난 7월 25일 단거리 탄도 미사일 발사를 시작으로 8월 10일까지 모두 다섯차례의 미사일 및 방사포를 발사하며 한미 연합 군사 훈련과 남한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특히 권정근 북한 외무성 미국담당국장은 청와대와 국방부 장관 등을 거론하며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냈다.
북한의 이같은 행태에 대해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대미 협상을 맡은 리용호 외무상과 최선희 외무성 부상 등 이른바 북한의 대미 협상팀이 매우 초조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북미 간 실무협상을 위한 물밑접촉이 북한이 원하는 대로 진도가 나가지 않다 보니 굉장히 심사가 뒤틀린 것 같다"고 진단했다.
정 전 장관은 "미국에서는 낮은 단계에서 북미 간 실무협상을 하고 이후에 고위급회담에서 정상회담 의제를 논의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 같다. 이렇게 되면 그동안 북한이 생각했던 이른바 '톱 다운' 방식으로 한 번에 모든 것을 끝내려는 접근법은 현실적으로 어려워진 것"이라며 이 역시 북한의 대미 협상팀에 상당한 스트레스를 줬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4월 12일 최고인민회의 계기 시정연설에서 미국이 셈법을 바꾸면 정상회담을 한 번쯤 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게 북한의 생각인데 중간에 고위급회담이 끼워져 버렸으니, 리용호는 이거 제대로 못 풀면 김영철 통전부장과 같은 처지로 몰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 전 장관은 최근 북한의 행태가 우선 미국과 대화를 하고 이후에 남한과 이야기하겠다는 이른바 북한 식의 '선미후남'(先美後南)의 의도가 있다면서도 "문제는 북한 입장에서 이른바 '선미'도 잘 안되고 있다는 것"이라며 "미국의 조급함을 끌어내기 위해 미사일을 쏴대는 것도 있다. 이것이 미국의 셈법을 바꾸는 촉매제가 될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그는 북미 양측이 평행선을 달리게 되면 한국이 중재 역할을 할 수밖에 없지 않냐는 지적에 "북한이 자꾸 '새로운 길'을 이야기하는데, 실제 자신들이 그러한 길로 가면 어떤 보복과 제재를 받을지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그렇게 해서 북한이 불이익을 받으면 김정은의 리더십은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된다. 따라서 북한은 우리에게 자신들이 새로운 길을 가지 않도록 미국을 설득해 달라고 해야 할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정 전 장관은 "북한이 남한에 험한 말을 쏟아내서 정작 필요한 때 남한이 끼어들지 못하는 상황이 됐을 때 자신들이 받게 될 불이익,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의 변심을 걱정해야 한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인터뷰는 14일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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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 북한이 지난 7월 말부터 총 다섯 차례에 걸쳐 미사일과 방사포 등 발사체를 쐈습니다. 그러면서 남한에 대해 노골적인 비난에 나섰는데요. 북한이 지금 이러한 행태를 보이는 속내는 무엇일까요?
정세현 : 지난 6월에도 남한에 대해 가시 돋힌 말을 했던 권정근 북한 외무성 미국 국장이 또 다시 험한 단어를 쓰면서 남한을 비난했죠. 이걸 보고 북한에서 대미 협상을 맡은 리용호 외무상과 최선희 외무성 부상 등 이른바 대미 협상팀이 매우 초조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북미 간 실무협상을 위한 물밑접촉이 북한이 원하는 대로 진도가 나가지 않다 보니 굉장히 심사가 뒤틀린 것 같습니다. 그 화풀이를 남한에 하는 것 같아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붙들어 놓기 위해 친서를 보냈습니다. 정상 간 관계는 유지되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실무 선에서 미국을 움직일 묘수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리용호나 최선희도 답답할 겁니다.
미국에서는 낮은 단계에서 북미 간 실무협상을 하고 이후에 고위급회담에서 정상회담 의제를 논의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되면 그동안 북한이 생각했던 이른바 '톱 다운' 방식으로 한 번에 모든 것을 끝내려는 접근법은 현실적으로 어려워진 것이라 볼 수 있는데요. 이 역시 북한 대미 협상팀에 상당한 스트레스를 줬을 겁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4월 12일 최고인민회의 계기 시정연설에서 미국이 셈법을 바꾸면 정상회담을 한 번쯤 해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게 북한의 생각인데 중간에 고위급회담이 끼워져 버렸으니, 리용호는 이거 제대로 못 풀면 김영철 통전부장과 같은 처지로 몰릴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김 위원장이 미국, 남한과 협상 초기에 이 사안을 김영철 부장에 맡겨 놓았기 때문에 김 위원장과 김 부장의 생각이 비슷할 탠데요. 그런데 이걸 리용호라는 정통 외교관이 맡아서 하려다 보니 최고지도자의 생각과 맞지 않는 측면이 있게 되는 것이죠. 리 외무상 입장에서는 최고지도자의 생각을 바꾸는 것도 어려운데, 자신들에 대해 선행동을 요구하는 미국의 생각은 더더욱 바꾸기 어렵다는 점을 절감하고 있을 겁니다.
북한 내부의 인사 변동 문제도 최근 북한의 태도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2월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실시된 통일전선부에 대한 검열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8월 말까지 검열이 이어질 것이라는 이야기도 들려옵니다.
물론 4월 서훈 국정원장과 장금철 신임 통전부장이 만나긴 했지만 여전히 전임인 김영철이 노동당 부위원장에 있는 상황입니다. 통전부장이 노동당 내에서 부위원장 정도의 직책을 가지고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발언권 내지 영향력의 차이가 큽니다. 그러니까 장금철도 쉽게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죠.
한편으로는 전시작전권 반환하고도 연계가 있어 보입니다. 전작권이 우리한테 있으면 북한이 도발했을 때 말 그대로 '원점 타격'도 할 수 있기 때문에 전작권이 남한에 완전히 넘어오면 북한이 불안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미국은 한반도에서 확전을 막기 위해 우리를 많이 말렸습니다. 그동안은 전작권이 없었기 때문에 말만 했지만 전작권이 넘어오면 이제 실제 행동을 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만약 우리가 독자적 행동을 할 수 있으면 북한은 우리를 건드리기 어려워집니다. 그렇게 되면 북한은 우리를 두려워할 수밖에 없죠. 이것도 북한의 연이은 미사일과 방사포 발사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입니다.
프레시안 : 결국 미사일 시험과 남한에 대한 비난 배경에는 우선 미국과 대화를 하고 이후에 남한과 이야기하겠다는 이른바 북한 식의 '선미후남'(先美後南)의 의도가 있는 건가요?
정세현 : 그렇다고 봅니다. 그런데 문제는 북한 입장에서 이른바 '선미'도 잘 안되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미국의 조급함을 끌어내기 위해 쏴대는 것도 있습니다. 이것이 미국의 셈법을 바꾸는 촉매제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죠.
그런데 미국은 북한의 발사에 대해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눈치입니다. 개의치 않는다고 말할 정도니까요. 미국이 이러는 이유는 북한의 단거리 탄도 미사일 발사를 유엔 안보리의 제재 결의 위반 문제로 끌고 가면 회담 판이 아예 깨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대목에서 북한은 좀 속상한 측면도 있을 겁니다. 나름대로 미국에 대해 압박을 하려고 미사일을 발사한 이유도 있었을텐데 이게 제대로 먹혀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북한은 이같은 행위에 대해 겉으로는 한미 연합 군사 훈련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실제로 훈련에 대한 대응보다는 미국이 태도를 바꾸길 바라는 마음이 더 클 겁니다. 그런데 미국이 계속 무시하고 있는 셈이죠.
물론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남한을 상대로는 협상 카드가 될 수 있습니다. 일단 북미 협상이 본격화됐을 때 남북 군비 군축 문제도 자연스럽게 의제에 올라오게 될텐데, 그 때가서 협상력을 키우는 측면이 있고요. 또 남북 간 재래식 전력이 현저하게 차이나기 때문에 거기에 대비해서 미사일을 만들어 놓으면서 남한에 대한 억지력을 키우는 의도도 있어 보입니다.
▲ 지난 11일 북한은 관영매체인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10일 함경남도 함흥에서 "김정은 동지께서 새 무기의 시험사격을 지도하셨다"고 보도했다. 사진은 통신이 공개한 발사체 장면.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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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 그런데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8월 하순 즈음에는 북한과 실무협상이 가능할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정세현 :북한이 미사일이나 방사포로 미국을 자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존 입장을 가지고 가겠다는 겁니다. 즉 북한 표현대로 하자면 '셈법'을 바꿀 생각이 없다는 겁니다.
프레시안 : 미국이 바로 정상회담으로 직행하는 것이 아닌, 고위급회담을 염두에 두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정세현 :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끼리 만나서 풀 생각이 있는데 실무 차원에서 별로 그럴 생각이 없는 것 같습니다. 미국 실무관료들은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톱다운 방식으로 밀어붙이면 지난해 6월 12일 이뤄진 1차 북미 정상회담처럼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당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지난 6월 30일 판문점에서의 회동도 북미 정상 간 톱다운 식으로 정해졌고 실무진들은 이후에 지시사항만 이행한 것이기 때문에, '이건 대체 뭔가' 라는 생각을 가졌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실무진들이 오히려 6월 30일 이후에 톱다운 방식은 곤란하다고 생각하고 이걸 막는 방법으로 중간에 고위급회담을 한 번 하고 넘어가는 안을 만들었을 수 있습니다. 즉 트럼프 대통령에게 선택지를 주면 안되겠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시기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 준비도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러다보니 일단 폼페이오 장관에게 현 상황을 맡기게 됐을 겁니다. 또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주러시아 미국 대사로 갈 수 있다는 보도도 나오던데요. 그러면 북미 실무진 간 협상은 더 어려워질 수도 있습니다.
또 트럼프가 재선에 도전하는 대통령이지만 첫 번째 임기(4년)로 보자면 반환점을 넘어서지 않았습니까? 일종의 레임덕이 왔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관료들은 관료주의적으로 대처하면서 북한이 자신들의 페이스에 끌려들어오면 자기들 업적으로 포장할 수 있고, 끌려들어오지 않더라도 나쁜 결과는 아니라고 생각할 겁니다.
프레시안 : 미국 입장에서 북미 간 협상에서 별다른 성과 없이 올해가 마무리되어도 괜찮은 걸까요?
정세현 : 미국의 관료들이야 나쁠 것 없죠. 또 이들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돼있는 싱크탱크, 그리고 이 싱크탱크와 연결돼있는 군산복합체는 북한에 협상 실패의 책임을 떠넘길 수 있는 상황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무기 시장만 유지된다면 나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좋은 겁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내년 대선에서 북한 문제를 외교적 업적으로 내세워야 하니까 좀 아쉬울 수는 있습니다. 물론 다른 카드를 내놓고 업적이라고 자평할 수도 있고요.
북한, 핵 미사일 시험 재개하나
프레시안 : 미국이 고위급회담을 고집하면 북한은 끝까지 협상에 임하지 않을까요?
정세현 : 북한은 정상에서의 톱다운 방식이 아닌 고위급 회담이 진행된다면 결국 그 결말이 뻔하다고 생각할 겁니다. 1994년 제네바 합의, 2005년 9.19 공동성명처럼 화려한 수사는 있을 수 있지만 북한의 선행동, 즉 북한의 비핵화부터 요구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6.12 싱가포르의 추억'이 있는 북한은 도저히 이런 안은 받을 수가 없죠.
그래서 사실상 내용적으로는 미국이 하자는 대로 가면서도 북한이 체면은 지킬 수 있는 명분을 미국이 북한에 줘야 합니다. 그러려면 중간에서 한국의 역할이 중요할 수밖에 없어지죠.
프레시안 : 미국과 협상이 안되면 북한은 그동안 중단했던 핵실험이나 중장거리 미사일 발사 등을 감행하게 될까요?
정세현 : 북한이 어느 선까지 행동했을 때 미국이 몸이 달아 협상에 나올 건지는 알 수 없죠. 자칫 잘못하다가는 더 강한 압박과 제재가 가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 2016년 7차 당 대회 때 약속했던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은 물거품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김 위원장이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될 수도 있다"고 매우 완곡하게 표현한 이른바 '새로운 길'은 사실 어떻게 보면 미국에 '우리가 제발 그 쪽으로 가지 않게 해달라'라고 요청한 것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게는 북한의 이러한 메시지가 '협상에 서두를 필요가 없구나'라는 생각을 확고하게 다져준 요인이 됐을 수도 있죠.
프레시안 : 이번달 안으로 북미 간 협상은 이뤄질까요?
정세현 : 한미 연합 군사 훈련이 20일에 끝나는데, 그렇게 훈련을 비난해놓고 끝나고 바로 다음날 실무협상을 할 수는 없을 겁니다. 외형적으로 미사일이나 방사포 모두 훈련에 대한 불만이라고 자신들이 노골적으로 언급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빨라도 8월 말이나 9월 초는 돼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리용호 외무상 등 북한의 대미 협상팀은 미국이 고집하고 있는 고위급회담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겁니다. 미국 말대로 했다가 완전히 올가미 쓰게 되면 리용호에게는 책임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야 일이 잘못되면 물러나면 그만이지만 북한은 다르지 않습니까.
▲ 지난 6월 30일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에서 만나 사실상의 회담을 가졌다. ⓒAE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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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 그런데 상황이 이렇게까지 왔으면 북한도 어느 정도 승부를 걸어봐야 하는 것 아닌가요?
정세현 : 그것도 신뢰가 있어야 가능한 겁니다. 한국이 미국에 할 말을 했던 선례들이 좀 있는데 이건 한미 동맹이라는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었습니다. 전혀 신뢰가 없는 사이에서는 이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신뢰가 없는 상황에서 잘못 승부를 걸었다가 자칫하면 파멸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또 북한은 미국에 비해 절대적 약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강자는 자신의 뜻대로 안되면 상대를 압박하면 되지만 약자는 그렇게 할 수가 없죠. 결국 약자인 북한과 강자인 미국이 일대일로 만나는 모양새를 유지하면서 협상을 해야하기 때문에 서로 신뢰를 확인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런 상태에서는 북한이 미국을 상대로 모험이나 승부를 걸 수 있는 상황은 아닙니다. '새로운 길' 언급도 잘못하면 자신들이 죽을 수도 있기 때문에 상당히 완곡하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한 것입니다.
프레시안 : 북미가 계속 이렇게 평행선을 달리면 한국이 어느 정도 중재 역할을 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정세현 : 사실 지금은 북한이 한국에 중재 역할을 부탁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통전부가 슬그머니 나서서 한국이 티안나게 미국에 잘 이야기해서 태도 좀 바꾸게 해달라고 해야죠.
북한이 자꾸 새로운 길 이야기하는데, 실제 자신들이 그러한 길로 가면 어떤 보복과 제재를 받을지 스스로도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북한이 불이익을 받으면 김정은의 리더십은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됩니다. 따라서 북한은 우리에게 자신들이 새로운 길을 가지 않도록 미국을 설득해 달라고 해야 할 상황입니다.
북한이 남한에 험한 말 쏟아내서 정작 필요한 때 남한이 끼어들지 못하는 상황이 됐을 때 자신들이 받게 될 불이익,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의 변심을 걱정해야 합니다. 만약 상황이 이렇게 돼버리면 권정근 국장도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습니다. 책임져야 하니까요.
급변하는 국제 정세, 한국의 살길은
프레시안 : 그런가하면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가 상당히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미중 무역 전쟁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고 한일 간 경제 분쟁에 중국과 러시아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적잖은 위기로 다가오고 있는데, 앞으로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까요?
정세현 : 한반도 주변 상황이 쉽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어느 정도 상황은 정리될테고 각각의 문제들이 가닥을 잡게 될텐데요. 문제들이 정리되는 과정에서 우리가 얼마나 역할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패권을 지키기 위해 현재와 같은 혼란을 원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미국이 지금 세계 곳곳에서 판을 벌여 놓은 것이 있기 때문에 어느 하나 확실하게 정리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긴 합니다.
일단 미국은 한일 군사 정보 보호 협정(GSOMIA)로 한미일 삼각 동맹을 묶어 놓으려고 했는데 한국에 대한 일본의 수출 규제 문제 때문에 이 역시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고 있습니다.
또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인도-태평양 전략'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우리뿐만 아니라 일본과 독일 등 동맹국들에게 재정적인 부담을 지우게 하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중국의 굴기 때문에 동아시아에서 패권을 유지하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미 오바마 정부 때도 재정 절벽에 부딪힌 바 있습니다. 미국 혼자 힘으로 현재의 군사력을 유지해서 동아시아에 영향력을 행사하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죠.
또 중국은 성장 속도가 예전보다 느려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경제 성장 국면입니다. 유라시아 전체를 자신의 영향력 하에 놓으려는 '일대일로' 전략도 여전히 진행 중이고요. 미국은 여기서 '일대'를 막기 위해 한미일 삼각 군사 동맹을 중시하고 있고 '일로'를 막기 위해 '인도-태평양 전략'을 사용하는 건데 여기서 자신들이 모두 비용을 부담할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 추진력도 일정 부분 떨어질 수밖에 없죠.
여기에 일본의 경우 지금 현재 아베 정부가 하는 행태가 일본의 권위와 위상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번 사안을 계기로 일본은 발언권이 상당히 약화될 겁니다.
결국 중국을 무한정 압박할 수 없는 미국과 스스로 영향력을 떨어뜨리고 있는 일본의 현 상황을 감안했을 때 현 상황에서 동아시아는 '새 판 짜기' 국면으로 접어들 가능성이 높습니다. 여기서 한국의 역할은 결코 작지 않을 겁니다.
북미 회담이 지금과 같이 교착 상태에만 머물게 되면 북한도 '선미후남'의 순서를 바꿔서 남한과 관계 개선을 타진하고 이를 통해 자신들의 생존 전략을 수정할 수도 있습니다. 일단 남한과 잘 지내서 살아남겠다는 전략이죠. '선미후남'이 '선남후미'로 바뀔 수도 있는 겁니다.
프레시안 : 미국이 아시아 지역에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하겠다고 하는데요. 여기에는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좋을까요?
정세현 : 이 미사일 배치는 중국에 대한 견제조치입니다. 너무 뻔한 이야기죠. 절대 우리가 나서서 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드야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구실로 배치했지만, 중거리 미사일은 북한을 구실로 끌어들일 수도 없습니다. 만약 반도에 가져다 놓으면 이건 완전한 중국 견제용이거든요. 우리처럼 경제적으로 중국에 의존도가 높은 나라가 중국을 견제할 미사일을 가져다 놓는 것만은 피해야 합니다.
기자 : 이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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