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은 근현대사에서 롤러코스터 진폭이 가장 컸던 도시다. 1899년 문을 연 항구는 일제강점기 쌀의 최대 반출로였고, 만경 들녘의 미곡을 옮긴 전군가도(전주~군산)는 최초의 포장도로였다. 강제징용 노동자와 일본군 위안부도 실어낸 눈물의 항구는 해방 후 오랜 세월 인천항과 부산항의 뒷전으로 밀렸다. 롤러코스터는 1996년 대우차(GM대우)가 세워지며 다시 위로 향했다. 2008년엔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가 들어섰다. 부동산 가격 상승률이 전국 최고를 찍은 때다. 잔업·특근을 하는 20~40대 젊은 노동자들과 돈이 넘치는 도시. 일제의 적산가옥과 ‘전국구 맛집’까지 즐비한 군산은 관광지로도 떴다. 한때 날던 도시는 지금 빌딩의 4분의 1이 비고, 젊은이는 떠나고, 물산과 물동이 끊긴 자칭 ‘죽은 도시’가 됐다. 조선소가 문 닫은 2017년, 자동차 공장이 떠난 2018년 2단계 충격파가 드리워진 뒤다.
지난달 24~25일 군산에선 숙의형 대토론회가 열렸다. 노동자가 임금을 덜 받고 지자체가 복지를 더하는 ‘광주형’, 세금을 깎아주는 ‘구미형’에 이은 ‘군산형 일자리’가 화두였다. 전기차 클러스터로 가려는 군산형은 대기업이 아닌 중견·중소기업이 주축이고, 노사교섭도 지역단위로 해보려는 첫길이다. 주부는 “먹튀 대기업의 트라우마”를 말했고, 고교생 입에선 “정규직 많은 일터”가 앞섰다. 배·자동차의 2~4차 하청기지로 살다 벼랑에 선 도시의 아픔이었다. 일본과의 경제전쟁 후 정부가 소재·부품·장비 기지로 키우려는 곳은 중소기업이다. “난 꿈이 있어요~”로 시작하는 인순이의 노래 ‘거위의 꿈’이 일제 수탈사가 배어 있는 군산 거리에서 무르익길 기다린다.
이기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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