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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1 (월)

[정태춘의 붓으로 쓰는 노래]팔월 밭둑 뽕나무, 숨이 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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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팔월 밭둑 뽕나무 | 450×470㎜ | 초배지에 먹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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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촌의 늙은 내외

가랑비 좀 뿌린다고 고추밭 고랑에서 나오지 않는다

장대비 좀 쏟아져라 푹푹 찌는 마른장마

경향신문

원주 남한강변의 펜션은 그 마을의 수익 사업의 일환으로 지어졌는데 찾아오는 손님이 없어 오랫동안 비어 있었다.

그래서 내게 기회가 온 것이었다. 장기 임대. 난 저렴한 작업 공간(사실은 스스로의 유배 공간?)을 얻었고 마을은 건물 관리자를 얻은 셈이었다. 그러나 내가 봄여름 건물 주위의 무성한 풀들을 감당하는 일은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예초기를 마련해서 직접 풀을 베고 치우기도 하지만 자주 가 있지 못할 때에는 감당키 어려울 만큼 자라 있어서 돈을 내고 마을에 부탁해야 했다. 그러면 이장이 직접 오거나 마을 노인회장님과 총무님이 오기도 했다. 이장은 좀 젊은 분이지만 회장님과 총무님은 나보다 훨씬 더 연세가 많은 분들이다. 돈 때문이 아니고 사람이 없다는 거였다. 그런데 참 마음 편치 않은 것은 푹푹 찌는 더위에 그분들이 힘들여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이었다. 그런 방식으로 남의 노동을 산다는 일이었다. 이것이 윤리적인가….

노인회장님 내외분은 펜션 옆 그분들의 고추밭에서 자주 마주쳤었다.

정태춘 싱어송라이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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