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순·박차정·조애순·제주해녀들 등 투쟁사 조명
일제 강점기에 독립투사들은 온 몸을 던져 조국 독립과 해방을 위해 싸웠다. 안중근, 윤봉길, 김좌진, 이범석, 손병희, 백범 김구 등등. 이들은 1910년 대한제국 멸망 때부터 1945년 광복에 이르기까지 잃어버린 자유와 나라를 찾고자 기꺼이 목숨을 바쳤다.
독립을 위해 활동한 이들을 떠올려 보면 대부분이 남성이다. 여성이라면 어린 시절부터 교과서나 위인전에서 대한 유관순이 먼저 떠오른다.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공훈록에 기록된 독립운동가 수는 1만5천454명. 이 가운데 여성은 431명에 그친다. 많은 여성 독립운동가가 기록되지도 못한 채 잊혀 버린 것이다.
최초 여성 의병 지도자 윤희순과 '안사람 의병가' |
1931년 약산 김원봉(오른쪽)과 결혼한 박차정 |
저술가 신영란 씨의 신간 '지워지고 잊혀진 여성독립군열전'은 남성 못지않게 국내외에서 치열하게 항일 투쟁을 했으나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기억에서 잊히고 기록에서 사라진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찬찬히 들여다봤다. 저자는 책을 집필하기 위해 공식 사료뿐 아니라 이들의 생애가 담긴 각종 비공식 자료, 신문기사, 다큐멘터리 등을 두루 탐색했다.
제1부 '총칼에 맞서 싸운 여전사' 편에서는 노랫말 '안사람 의병가'로 일본군 간담을 서늘케 한 최초의 여성 의병장 윤희순을 비롯해 일본군의 제1표적이 됐던 중국 곤륜산의 여전사 박차정, 만삭의 몸으로 평양경찰서에 폭탄을 내던진 안경신, 이범석의 든든한 동지이자 유능한 참모였던 김마리아, 악명 높은 서대문형무소에서 만세운동을 주동한 어윤희의 투쟁사를 다뤘다.
제2부 '후방의 애국혼'은 우리말과 글로써 민족혼을 일깨운 조애실, 일제 심장부에 폭탄을 터뜨리겠다는 일념으로 조선 최초의 여성 비행사가 된 권기옥, 도산 안창호와 더불어 교육으로 애국 청년을 양성코자 했던 조신성, 목숨을 내놓고 독립운동가 남편의 조력자 역할을 한 이애라의 삶을 조명했다. 독립운동가들의 든든한 경제적 지원자였던 왕재덕과 송죽비밀결사단 초대 회장을 지낸 김경희도 만난다.
제3부 '이름 없는 불꽃으로 타오를지라도'는 차별받고 멸시받았지만 나라를 위해 의연히 목숨을 바쳤던 해주·수원·진주 기생들의 투쟁사와 함께 제주 항일운동에 앞장선 무명 제주 해녀 1만7천여 명의 항일운동에 대해 들려준다.
제주 해녀항일운동을 재연하는 해녀들(지난 1월 12일 제주시 구좌읍) |
하지만 이들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한 역사적 조명과 평가는 미흡하기 짝이 없었다.
예컨대 의병장 윤희순에게는 5개 등급의 건국훈장 중 가장 낮은 애족장이 추서됐다. 곤륜산 전투에서 입은 총상의 후유증으로 1944년에 세상을 떠난 박차정은 1995년이 돼서야 건국훈장 독립장의 수여자로 이름을 올렸다. 이에 대해 저자는 "일제의 총칼에 맞서 싸우기는커녕 전장에 나가본 적도 없는 이승만이 건국 사상 최초로 최고 등급인 대한민국장을 스스로에게 수여한 사실을 떠올리면 씁쓸하지 않을 수 없다"고 안타까워한다.
제주 해녀들의 항쟁 역시 제대로 조명받고 있지 못하다. 지금까지 독립유공자로 등록된 인원은 고작 11명. 1995년 '제주 해녀 항일운동 기념사업위원회'가 결성되면서 부춘화, 김옥련, 부덕량 해녀들에게 대한민국 건국포장이 추서되고 강관순, 김성오 등 혁우동맹 관련 인사 4명도 독립유공자로 추서됐으나 김계석, 고차동의 서훈은 3.1운동 100주년인 올해에도 이뤄지지 못했다.
저자는 "이 책에 수록된 여성독립운동가들은 나 같은 소시민이 백 번 죽었다 깨어나도 감히 흉내도 내지 못할 삶을 살다 갔다"며 "친일반역자들에게 '왜냐'고 묻는 것만큼 허망한 물음이 없는 것처럼 독립운동에 헌신한 이들의 생애를 두고 이유를 묻는 것 또한 무의미한 질문일지 모르나 이번 책이 그분들의 숭고한 희생을 다시 한번 되짚어 보고 그 이름을 기억하게 하는 작은 단초라도 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고 말했다.
초록비책공방. 274쪽. 1만6천원.
지워지고 잊혀진 여성독립군열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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