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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 (토)

출국해야 퇴직금 받는 이주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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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 실태 조사 결과

절반 넘게 계산법 교육 못 받거나 잔여퇴직금 존재 몰라

불법체류 막는다며 ‘퇴직 후 2주 내 지급’ 내국인과 차별

이주노동자는 대개 공항에서 퇴직금을 받는다. 출국의 증거로 공항의 은행에서 비행기표 사본을 제출해야 돈이 나오기 때문이다. 정부는 2014년부터 불법체류를 방지한다며 이주노동자에 대한 퇴직금 지급 제도를 이같이 변경했다. 그러나 대다수 이주노동자들은 복잡한 퇴직금 제도와 까다로운 수령 절차에 부딪혀 이마저도 제대로 찾아가지 못하고 있다.

네팔에서 온 20대 노동자 ㄱ씨는 지난 2월28일, 4년10개월 만에 귀국길에 올랐다. ㄱ씨는 귀국 당일 공항을 일찍 찾는다면 무리 없이 출국만기보험금을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출국만기보험금은 이주노동자의 퇴직금 명목으로 사업주가 매달 통상임금의 8.3% 이상을 적립해 뒀다가 이주노동자 출국 후 2주 이내에 지급하는 돈이다. 한국말이 서툰 ㄱ씨는 지역고용센터와 은행 등을 수차례 방문해 비행기표 사본, 출국예정사실 확인서, 거래외국환은행 지정신청서, 보험금신청서 등 6종의 서류를 분주히 준비했다. 하지만 정작 공항 은행은 출국만기보험금 지급을 거절했다. ㄱ씨가 거래한 은행이 이름 철자를 잘못 기입해 거래외국환은행 지정 등록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 이유였다. ㄱ씨는 거래 은행의 응답을 기다리다 결국 비행기를 놓쳤다. 다음날 출국으로 비행기표를 바꿔 출국만기보험금을 재차 신청했지만, 출국예정일이 하루 지났다는 이유로 끝내 수령하지 못했다. ㄱ씨는 귀국한 뒤에야 국내 이주노동단체의 도움을 받아 퇴직금을 수령할 수 있었다.

이주노동자에게 퇴직금 수령은 잘 모르는 일이거나, 알아도 힘든 일이다.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이주노동자 차별철폐와 인권·노동권 실현을 위한 공동행동, 이주인권연대는 12일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국내 체류 이주노동자 71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퇴직금 수령 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들 중 퇴직금 계산법을 알고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34.1%에 그쳤다. 입국 전에 퇴직금 계산법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고 응답한 사람은 34.0%였고, 교육을 받았지만 잘 모른다고 응답한 사람도 25.1%에 달했다. 퇴직금 계산법을 알고 있다고 응답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간단한 퇴직금 계산 문제를 냈을 때 정답을 맞힌 사람은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이주노동자에게는 출국만기보험금 이외에도 ‘잔여퇴직금’이라 부르는 또 다른 퇴직금이 있다. 최종 3개월간 이주노동자 평균 임금에 근무기간을 곱해 실제 퇴직금을 산정하는데, 여기서 출국만기보험금을 제외한 것이 잔여퇴직금이 된다. 실태조사 결과 잔여퇴직금의 존재를 알고 있는 사람은 42.7%에 불과했다.

잔여퇴직금의 존재를 알아도 사업주로부터 이를 온전히 받아내는 과정은 만만치 않다. 한 푼이라도 덜 주려는 사업주를 상대로 고용노동부 진정과 민사소송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류지호 의정부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상담팀장은 “사업주들이 갖가지 명목으로 잔여퇴직금에서 이를 빼려고 한다”며 “요즘엔 이주노동자 출국 전 3개월간 주 40시간만 딱 일을 시켜서 실제 퇴직금 자체를 줄이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퇴직 후 2주 내에 퇴직금을 수령하는 국내 노동자와 달리 출국 후 2주 내에 퇴직금을 수령하도록 하다보니 미수령 출국만기보험금의 규모도 해마다 늘고 있다. 지난해까지 이주노동자가 찾아가지 않은 출국만기보험금과 귀국비용보험금은 총 112억여원에 달했다.

우삼열 아산이주노동자센터 소장은 “퇴직금 출국 후 수령제도는 노동자로서 보호받아야 할 권리를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유보하고 빼앗는 것”이라며 “비인간적이고 잔인하다는 지적이 계속되는데도 정부는 불법체류 방지를 이유로 없애지 않겠다고 한다”고 지적했다.

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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