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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 (토)

[세상읽기]‘마을공동체 활성화’ 자율과 간섭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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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차는 왜 고장이 잦을까?

조지 애컬로프는 1970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정보의 비대칭’ 때문에 시장에서 질이 나쁜 물건 위주로 거래된다고 결론지었다. 판매자와 달리 구매자는 차의 특성이나 성능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 판매자가 매긴 가격이 합당한지 확인할 방도가 없어서 ‘뽑기 운’에 기대야 하는 구매자는 평균 가격 정도를 지불하려 할 것이다. 그 가격에 좋은 차를 팔 수는 없지만 나쁜 차를 파는 걸 마다할 이유가 없으니 결국 나쁜 차만 거래된다.

경향신문

이처럼 정보의 불균형이 존재하므로 합리적인 시장이 형성될 수 없다. 이런 상황을 연구하는 분야를 정보경제학이라고 하며, 이를 집대성한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2001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정보의 비대칭이 낳는 여러 문제 중에 대리인 딜레마가 있다. 본인·대리인 문제라고도 하는데, 분업을 기본으로 하는 현대사회에서 흔히 발생한다. 일을 맡기는 사람이 맡을 사람의 행태, 즉 얼마나 정성을 다하는지, 제대로 된 재료를 사용하는지 등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일을 맡기는 당사자의 편익이 제대로 실현되지 않는 비효율이 생긴다.

이런 문제는 경제활동뿐만 아니라 정치나 공공행정에서도 폭넓게 관찰된다. 정보의 우위를 지닌 정치가나 행정가의 경우 자칫 주민의 편익을 무시하는 도덕적 해이에 빠질 수도 있다. 대의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이다.

정치와 공공행정에서 발생하는 대리인 문제를 해소하고자 하는 주민 주도의 노력 중 하나가 참여민주주의이다. 적극적으로 정보의 공개를 요구하고 정책 결정에 참여하려는 행동이다. 주민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치를 실현하기도 한다. 사회운동의 일환으로 마을활동을 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할 것이다.

하지만 마을에는 매우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있다. 마을활동을 하는 이유도 다양하다. 참여민주주의나 주민자치의 실현은 수많은 마을의 욕구 중 하나일 뿐이다.

우리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되어 있다. 이른바 ‘행복추구권’ 또는 ‘자기결정권’에 대한 조항이다. 자기결정권이란 어떤 권력, 권위, 규범, 관습, 통념 등의 간섭 없이 자기 운명에 관하여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의적 권리를 말한다.

마을활동을 살펴보면 자기결정권의 발현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마을공동체 활성화에 대한 지원은 헌법에 따른 기본권 보장이다.

2012년 무렵 각 지자체에서 조례를 제정하여 마을공동체 활성화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주민의 자치요구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기 위한 의도가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중앙부처별로 각각 주민활동 지원사업을 벌임에 따라 지방행정도 실국별로 유사한 사업들이 복잡하게 얽히는 혼란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형식적으로나마 마을공동체 활성화라는 명칭으로 흩어져 있던 지원사업을 묶으려는 의도가 보이기도 한다. 귀찮고 어려운 일을 주민에게 떠넘기려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도 있다. 마을공동체 활성화를 행정의 연장으로 여기는 셈이다.

이런 인식은 중간지원조직에 대한 관리와 간섭을 통해 드러난다. 모 광역단체의 협치 담당 팀장이 중간지원조직의 활동가들을 모아놓고 “당신들은 공무원과 같으니 근태관리를 받는 게 당연하다. 모든 활동을 일일이 보고하라”고 일장훈시를 했다는 소문이 들린다. 그런 억압적인 분위기에서 마을공동체에 대한 제대로 된 지원이 가능할 리 없다. 중간지원조직의 수많은 활동 중에는 위탁받은 행정업무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주민자치나 자기결정권 실현이라는 주민의 염원도 실현해야 하는 매우 복잡하고 어렵고 헌신적인 활동도 중요하다. 마을에 대한 지원, 중간지원조직의 운영과 존폐에 대한 권한을 지닌 지방자치단체의 올바른 인식과 태도가 절실하다.

강세진 |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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