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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 (토)

’보내지 않는 편지’를 써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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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샘의 10대들♡마음 읽기】

소희(가명·18살)는 성격 좋고 명랑해서 친구가 많다. 하지만 친구들로부터 “속마음을 잘 모르겠다. 벽이 느껴진다”는 말을 듣곤 한다. 가까운 친구에게조차 속을 털어놓은 적이 없고, 힘들어도 힘들다는 말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소희는 부모님의 이혼 뒤 엄마와 살면서 항상 “아빠 없는 자식이라는 소리 듣지 않게 잘해야 한다”는 말을 들으며 컸다. 안 그래도 혼자서 어렵게 자신을 키우는 엄마에게 힘든 내색을 할 수 없었고, 밝고 씩씩한 모습만 보여주려고 애썼다. 그런데 요즘 혼자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서럽고 외로워서 눈물이 난다.

상담실에 찾아오는 아이들 중에는 소희처럼 자신의 부정적 감정을 표현하는 걸 어려워하고 본인의 감정을 애써 억압하는 아이들이 있다. 감정을 공격적으로 표출하는 것도 문제지만 감정을 억압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문제다.

억울함, 분노, 슬픔 등 부정적 감정을 속으로만 감추고 억제하면 결국 마음의 병이 된다. 소희의 경우도 우울감이 높았다. 아이들이 감정을 억누르고 있다면, 자신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표현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그런데 오랫동안 자신의 감정을 가둬왔던 경우에는 감정을 표현한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경우 필자가 종종 사용하는 방법이 있다. ‘보내지 않는 편지’다. 아이들에게 부정적 감정을 촉발한 대상에게 편지를 써보게 한다. 말 그대로 정해진 상대방에게 편지를 쓰지만 실제로는 보내지 않는다. 그래서 좀 더 자유롭게 자신의 감정과 속마음을 표현할 수 있다. (어떤 아이는 평소 하지 않는 욕이나 거친 말을 쓰기도 한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상대방에게 하고 싶은 말, 못했던 말을 모두 털어놓으면 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감정의 정화를 경험하고, 내 감정을 좀 더 명확하게 정리하고 이해할 수 있다. 간혹 보내지 않는 편지를 다시 정제된 언어로 수정해서 실제로 대상에게 보내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다 쓴 뒤 편지를 찢어버리거나 폐기하면서 자신의 부정적 감정도 함께 처리하는 의식을 거친다. 이 과정을 거친 뒤 아이들은 실제 행동으로 옮길 때, 상대방에게 오히려 공격적이지 않은 정리된 말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다. 소희는 엄마에게 보내지 않는 편지를 쓴 뒤 “답답한 감정이 많이 해소되었고 엄마에 대한 복잡한 마음도 정리되었다”고 했다.

아이들이 자기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중요하다. 간혹 양육자 중에는 어려서부터 말대꾸하면 버릇없다거나, 울거나 화내면 안 된다고 혼내는 경우가 있다. 자기 생각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습관은 어려서부터 길러줘야 한다. 그렇지 못한 경우, 가정 밖에서 우리 아이들은 제대로 자신을 표현하지 못한 채 억울한 감정만 쌓다가 언젠가 부정적인 방식으로 폭발할 수도 있다. 부정적 감정의 안전한 처리는 건강한 몸과 마음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글에서 소개한 사례는 내담자 보호를 위하여 상담 내용을 재구성했음을 밝힙니다.

이정희 청소년상담사·전문상담사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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