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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 (토)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 교육 생태계 복원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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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선임연구원

5년 전 1차 평가 때도 성적 미달

10년 동안 ‘입시명문’ 단물만 빨아

되레 소송 내며 “평가 부당” 억지

입시 앞두고 수험생 혼란 키워

교육부, 고교체제 개편 소극적

특권학교 폐지해 정상화 나서야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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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자율형 사립고에 대한 재지정 취소를 단행하고 있다. 자사고들은 이에 소송으로 맞섰다. 대학 입시를 코앞에 둔 상황에서 수험생들의 혼란이 불가피하다. 이런 사태는 이미 예견된 상황이었다. 지난 9일 오후 한겨레신문사에서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김은정 선임연구원과 함께 이 사태를 진단하고 해결책을 찾아봤다.

― 올해 들어 전국의 자율형 사립고 재지정 취소가 잇따르고 있는데 어떻게 봐야 할까?

“올해 평가 대상인 24개 자사고 중 10곳이 재지정이 취소되어 일반고 전환이 결정되었고, 14곳은 자사고로 재지정되었다. 서울의 경우 이번에 재지정 취소된 8개 학교 중 7곳은 2014년 1기 재지정 평가에서도 이미 서울교육청으로부터 ‘지정취소’ 또는 ‘지정취소 2년 유예’라는 기준 미달의 성적표를 받았던 학교들이다. 이들 학교가 지난 10년간 꾸준히 자사고로서의 지정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음을 입증하는 것이고 재지정 취소 처분에 대해 변명의 여지가 없는 상황이다.”

■ 당국-현장 갈등 점점 커져

― 탈락한 학교들은 평가의 부당성을 제기하면서 소송을 내는 등 당국과 현장 간의 갈등이 커지고 있다.

“이번 평가지표를 보면, 학교운영과 교육과정 운영 항목의 배점이 강화됐다. 자사고가 원래 지정 목적에 충실했는지를 집중적으로 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 자사고는 자신들에게 불리한 평가 기준이니 수정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자사고 스스로 가장 중요한 지정 목적에 충실하게 운영하지 않았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자사고들은 학생·학부모 만족도나 다양한 진로·인성 프로그램 편성 운영 등에서 배점이 낮아졌다고 주장한다. 이것들은 재정 및 시설 여건이나 만족도와 함께 자사고가 그동안 높은 점수를 받았던 영역이다. 하지만 자사고의 지정 목적에 적합한 평가라는 목적에 비교해볼 때 핵심기준은 아니며, 비교적 점수 획득이 쉬운 지표이므로 그 영향력이 감소한 것은 정당한 변화로 보아야 한다.

자사고들은 사회적 배려 대상자를 뽑는 사회통합전형도 외면하고 있다. 법으로 규정된 비율을 지키지 않고 있으며, 법적 의무가 없다며 한 명도 선발하지 않은 곳도 있다. 그런데 서울 자사고들은 이런 사회통합전형 비율의 배점이 높아 평가 기준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교육기관으로서 사회적 책무를 망각한 처사라고 생각된다.”

― 상산고의 경우는 교육부가 취소 부동의를 했다. 오히려 논란을 키운 게 아닌가?

“교육부의 결정은 아쉬웠다. 재지정 평가지표는 2018년에 교육부와 모든 시·도교육청이 공동으로 개발한 것이다. 그러므로 교육부와 교육청이 적어도 ‘형식적 요건’에 대해서는 사실상 이미 합의한 지표라 보는 것이 타당하다. 교육부가 몰랐거나 예측할 수 없었던 부분이 아님에도 상산고의 경우 평가지표 항목을 문제 삼으며 전북교육청의 지정 취소 결정에 교육부가 동의하지 않았다.

또한 자사고의 운영 성과 평가는 법적 의무 사항이며, 무엇보다 각 시·도교육감의 고유 권한에 해당한다. 정부는 2017년 자사고·외고·국제고의 지정 및 지정 취소에 대해 교육부가 가진 동의권을 폐지하고, 그 권한을 온전히 시·도교육감에게 부여하겠다고까지 밝혔다. 이런 정부가 전북교육청의 과정과 결정을 존중하지 않고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부동의’라는 결정을 내린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 내년엔 자사고 외에 특목고까지 재평가 예정인데.

“외고와 국제고의 설립 목적은 어학 인재와 국제인재 양성이지만 상위권 학생들의 대학 진학을 위한 입시 명문고가 됐다. 자사고와 함께 교육의 기회 평등과 사다리 기능을 저해하고 있다. 설립 취지가 무색해진 만큼 이들 학교에 제공된 우선 선발권 및 교육과정 자율권 등 특혜를 축소해 서열화된 고교체계를 변화시켜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재지정 평가를 통해 자사고·외고·국제고를 일반고로 전환하겠다는 정부 정책엔 한계가 있었다. 처음부터 재지정 평가와 고교체제 개편을 위한 일반고 전환은 분리해야 했다. 평가를 통과한 학교라고 해서 실패한 자사고 정책의 예외가 아니기 때문이다.”

― 고교 진학을 앞둔 중학생들, 특히 자사고를 목표로 해온 학생들은 진로 선택에 극심한 혼란이 우려되는데.

“학생과 학부모가 혼란을 느끼지 않도록 정책적 배려가 절실한 것은 분명하다. 이 부분은 자사고 정책 도입 초기에도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2, 3학년은 졸업할 때까지 자사고 학생 신분을 그대로 유지한다. 1학년 신입생부터 일반고로 입학하게 된다. 자사고에서 일반고로 전환한 후에 교육과정 다양화는 물론이고 진학 실적도 상승했던 서울 미림여고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 살아남은 자사고는 명문고가 되고, 강남 8학군도 부활할 것이라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사실상 그렇지 않을 것으로 본다. 이미 수능 중심의 대학 입시에서 내신 성적이 함께 고려되는 수시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 내신의 부담을 감수하면서 애써 강남 8학군이나 교육 특구로 이동하는 비율은 생각보다 많지 않을 것이다. 일반고 내 서열이 다시 등장하거나 이로 인한 교육 양극화 현상이 다소 나타난다 하더라도 적어도 자사고로 인한 계층적 서열화 문제만큼 심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8학군 부활 주장’과 같은 비본질적인 논의로 서열화된 고교체제 문제의 본질이 가려지지 않아야 할 것이다.”

― 자사고를 폐지하는 것이 교육을 정상화하는 길인가?

“자사고를 일반고로 전환한다고 해서 일반고가 당장 좋아지겠냐고 한다. 일반고가 부실하기 때문에 자사고를 선택하는 것이라고도 강변한다. 그러나 이는 자사고 유지를 위한 프레임에 불과하다. 자사고 정책 이후 일반고가 이렇게나 어려워졌다. 일반고 질 저하에는 자사고 정책이 기여한 바가 가장 크다. 일반고가 개선될 때까지 자사고를 그냥 두자고 하기에는 자사고가 우리 고교체제에 특히 일반고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이 너무 막대하다. 자사고가 없어진다고 일반고가 당장 좋아지지는 않지만 이 구조를 그대로 두고는 일반고 역량 강화를 이야기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은 기본적인 교육 생태계의 복원이다.”

■ 고교체제 개편, 정부 결단 필요

―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고교체제 개편은 정부의 몫이다. 유감스럽게도 이 중대한 과제를 앞두고 정부의 적극적인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당초 계획한 2018년 고교체제 개편안은 2020년 하반기로 미뤄진 상황이다. 사회적 합의를 통해 고교체제 개편을 하고, 국가교육회의를 통해 결정하겠다고는 하지만 자사고를 일반고로 전환한 그 자리에 무엇을 채울 것인가에 대한 청사진을 정작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자사고·외고·국제고의 지위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 그 근거가 있다. 시행령의 근거 조항(제90조, 제91조)을 삭제하고, 모든 학교의 신입생을 일반고 학생으로 선발하는 방안을 제안한다. 불공정한 출발선의 차이를 교정하여 평등한 기회가 주어지는 ‘모든 학교가 특별해지는’ 고교체제 개선을 위한 정부의 좀 더 근본적인 결단이 필요하다.”

김학준 선임기자 kimh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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